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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소동도의 삶, 익산 학맥, 기호유학의 범위에 편입 초기 모습 보여줘




김창호 원광대 한문교육과 교수가 근역한문학회 ‘한문학논집’ 67집에 발표한 ‘소동도의 삶과 시세계’를 통해 소동도의 삶, 조선 전기 이후 익산 학맥, 기호유학의 범위에 편입 초기 모습이 잘 드러난다.
익산출신 문인 소동도(1592~1671)의 삶과 시세계를 해명햇다 지역 학맥에 있어서 소동도는 소세양(蘇世讓)과 조선 후기 인물군(人物群) 사이에서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된다. 그의 수학 과정과 교유는 곧 조선 전기 이후 익산 학맥이 기호유학(畿湖儒學)의 범위에 편입되어가는 초기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세계는 세기 전반 격변의 시기에 중앙 정계로부터 떨어져 있던 문인들의 대응과 지향 설정의 일단을 보여준다. 소동도는 지역 사회와 관련된 정치적 사건을 보면서 출처(出處)에 따른 가치기준을 확립했다.
그의 시에는 충심을 다하는 관리와 평온한 향촌 생활을 즐기는 촌노(村老)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출처의 구도 내에서 향촌은 때로는 생(生)의 의지가 충만한 공간의 모습을 띤다. 다른 차원에서 향촌은 기자(箕子)의 전통이 이어지는 문명지(文明地)이자 친족 간의 정이 살아있는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바로 이같은 점에서 소동도에게 있어 향촌은 관념성을 넘어 일종의 구심력(求心力)이 작용하는 공간의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소동도의 시세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시대의 풍파 속에서 수분(隨分)의 삶을 지향했다. 그 향촌을 휩쓴 정치적 파란을 보며 성장했고 암운이 드리운 시대 현실을 체험했다. 이 과정에서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때의 . 평온한 일상은 곧 정치적 사건이나 전란으로 인한 불안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다. 그런데 전체의 시에서 평온한 일상의 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는 수분(隨分)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가치기준이 확립된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삶의 형태이다. 강개한충신이자 엄정한 관리가 역할의 책임을 벗어나서는 언제든지 농사 이야기나 나누는 평범한 촌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일상의 흥취와 향촌을 향한 구심성(求心性)이다 그는 향촌의 생활에서 세상과의 심리적 거리를 확보하고 참된 한가함을 누린다. 그 한가함의 실질은 ‘산야를 소요하는 흥취(興趣)’와 ‘고금의 글들에서 얻는 정신적 열락(悅樂)’이다. 그는 이러한 생활 속에서 생기발랄함을 표출하는 등 생의 의지로 충만해 있기도 하다. 향촌 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하지 않은 시인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소동도 시에서의 향촌의 의미는 남다르다. 향촌이라는 공간은 몇 가지 층위에서 그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향촌은 의(義)라는 가치기준에 따라 선택 가능한 무욕의 공간이며 오랜 , 역사의 문명지로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공간이며 친족 , 간의 위안과 공감이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동도의 삶은 그간 논의되지 않았던 조선 전기 이후 익산 학맥이 기호유학의 범위에 편입되어가는 초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시는 세기 전반 격변의 와중에서 중앙 정계로부터 떨어져 있던 문인들의 대응과 지향 설정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소동도에 대한 접근은 한 개인을 넘어 새롭게 몇 가지 문제의식을 가지게 한다. 당대의 정치적 사건이 지역 지성계에 미쳤던 영향 마한 ‘ 사람’이라는 말에 담긴 지역 전통에 대한 지역 유자들의 인식 익산유학과 기호유학의 접촉과 학맥형성 등은 본고에서 시도됐으나 동시기 다른 자료에 대한 탐구를 통해 보충될 필요가 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