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북스토리

이세종열사

5·18 민주화운동 44주년을 맞아 '모두의 오월, 하나 되는 오월'이라는 표제로 전북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17일 전북대에서는 5·18 첫 희생자로 공식 인정된 전북대 이세종 열사 추모식과 학술 세미나가 잇따라 개최된다. 또 이달 말까지 이 열사의 유품을 포함한 5·18 민중항쟁 사진 전시회와 영화제, 기념식 등도 이어질 예정이다.
1980년 5월 18일 새벽에 숨진 전북대생 이세종 열사가 5·18 민주화운동의 첫 희생자로 공식 인정됐다. 44년만이다. 최근들어 5·18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 발표에 따라 지난 1980년 5월 당시 최초 희생자가 '전북대생 이세종'으로 공식 확인됐다.
5·18민주화운동 최초 희생자는 그동안 청각장애인 제화공인 김경철 씨로 알려졌지만,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5·18민주화운동 사망 사건'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최초 희생자는 이세종 씨(당시 20세)다. 전북대 농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던 이 씨는 5월 18일 오전 1시 40분께 숨졌다. 17일 전북대 제1학생회관에서 ‘비상계엄 철폐 및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중 18일 낮 12시부터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계엄군이 교내로 진입하자 학생회관 옥상으로 달아났다. 이후 18일 오전 6시께 학생회관 옆에서 온몸이 피투성이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이 씨의 사인을 '단순 추락사'로 봤다.
하지만 5·18 항쟁 종료 후 계엄사령부는 5월 31일 주요 일간지를 통해서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 사망자 현황을 처음 발표했다. 다만 이 명단에는 사망자가 대부분 광주로만 한정돼 있어 오류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자 명단이 당시 검시 대상자만을 대상으로 해 이 씨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군은 전투교육사령부에 이 열사가 도피를 위해 보안등에 매달려 있다가 추락한 사고로 보고했다. 조사위는 이 열사의 폭행 과정을 목격한 학생들의 진술과 1999년 국립 5·18민주묘지로 이장 당시 희생자의 두개골에 큰 구멍이 나 있다는 가족의 진술, 부검의 소견 등을 종합할 때 계엄군의 구타로 추락 전 이미 심각한 수준의 상처를 입었다고 판단했다. 당시 부검의는 조사위에 '두개골 골절 등 주요 사인 이외에도 상당한 타박상이 존재했는데, 이것은 옥상에서의 추락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나타날 수 없는 흔적이 분명하다'고 진술했다.
이 열사의 모교인 전북대와 전라고, 고향인 김제에 추모비가 세워져 있고 올부턴 전북대와 전라고 총동창회에서 매년 '이세종 열사 장학금'을 수여하기로 했다. 추모사업이 외형적으로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전북은 물론이고 전 국민, 또 다음 세대에 이 열사를 알릴 수 있도록 의미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열사에 대한 사료 확보와 자료집 정리, 평전 편찬, 기념공원 조성 등으로 추모 사업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고 이세종 열사의 5·18 민주화운동 ‘첫 사망자’ 공식 인정을 환영한다, 전북은 민주당의 심장이자, 동학농민혁명, 4·19혁명의 효시가 된 4·4 시위, 5·18 최초 희생자 이세종 열사의 혼이 깃든 민주화운동의 성지다./이종근(문화교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