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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76> 연중 차가운 물이 나와 '운수(雲水)' , 임실의 별호가 됐나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76> 연중 차가운 물이 나와 '운수(雲水)' , 임실의 별호가 됐나

전북 임실군은 조선 시대에 임실현이었다. 이 지역은 삼국 시대에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에 가까운 군사적 요충지였다. '운수(雲水)'는 임실현의 별호다. 임실현의 객사는 '운수관(雲水館)'이 있었고, 현의 읍지(邑誌: 읍을 단위로 하여 작성된 지리지)론 '운수지(雲水誌)'가 있었다.

이 지역의 향토문화유산 탐구가인 김진영(임실군 오수면) 씨에 의해 1675년에 제작된 필사본 '운수지'가 최근에 발견되면서 그 의미가 크다.

전남 지역에는 가장 오래된 읍지로 현재의 순천시인 옛날 승평부의 승평지(1618)가 있다. 전북 지역에서는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운수지(1675)가 가장 오래된 읍지로 인정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임실현의 별호인 '운수'의 유래가 명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임실현 관아 가까이에 운수정(雲水井)이 있어 이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이번에 발견된 운수지(1675)에 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임실현 관아 뒤쪽에 용요산(사요산)이 있다. 이 용요산 산정 서쪽에 운수정이 있어서 연중 맑고 차가운 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곳이 운수(雲水)의 기원인 것으로 밝혀졌다.

 ‘운수관’에 대해 기존 읍지는 ‘임실군 관아건물로 객사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1904년 ‘운수지’는 ‘봉황산 아래에 서북쪽을 뒤로하고 동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산을 등지고 시냇물에 가까이 다가서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필사본 ‘운수지’는 당시 임실현 객사 운수관의 규모와 구성, 운수정(雲水井)의 형국 등을 모형으로 제작할 정도로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임실현청 관아에 대한 구성과 규모의 내용 또한 매우 자세하게 나열하고 있다.

조선 시대에 임실은 완대로(完大路)인 전주와 남원의 중간 거점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주의 전라감영에 전라도 56개 군현에서 6개 고을씩 차례로 방문하여 공무 처리를 했다. 이때 여러 고을의 관원들이 임실현의 운수관에서 하룻밤 묶으며 전라감영에 들어갈 채비를 했다.

전라감영으로 향하는 관원들이 임실현의 운수관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하면 전라 감영에 점심 때쯤 도착했다. 관원들은 이곳에서 오후에 공무를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임실 지역은 조선 시대에 관원들의 중요한 이동 경로의 거점이었던 셈이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전주 경기전의 해마다 가을 제사에 천신할 때면, 전라감영에서 가까운 거리인 임실현은 천신할 물품을 조달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