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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전라관찰사 이석형, 한국판 히포크라테스 선서 '의원정심(醫員正心) 규제(規制)'

전라관찰사 이석형, 한국판 히포크라테스 선서 '의원정심(醫員正心) 규제(規制)'

 
 조선 초기의 공신인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 1415-1477)에 관한 문서이었다. 그 친구 김수온(金守溫)의 시문집 
'식우집(拭疣集) 에 실린 이야기로 다음은 간략한 내용이다.

'이석형 공이 전라감사로 부임하여 민정을 살필 때였다. 강진에 있는 만덕사에 잠시 머물렀는데 환자 가족들이 벌이는 소동을 알게 되었다. 보성지방에 장덕(張德)이라는 의원이 있는데 환자가 와도 소홀히 대하며 권력자 가족만 정성들여 돌보아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다는 거였다. 또한 병 치료에 과다한 돈을 요구하여 치부하는 등 민폐가 많아 관가에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이미 결탁되어 있어 오히려 불리한 처사를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공은 장덕 의원의 죄상을 가려 공정히 처리한 바 있다.
그 후 이석형 공이 대사헌(大司憲)에 오르게 되자 의원들이 꼭 지켜야 할 도리를 심사숙고하여 '의원정심(醫員正心) 규제(規制)'라는 강령을 만들어 왕의 윤허를 받은 후 공포하였다. 훗날 팔도(八道) 도례찰사(都禮擦使)가 되어 전국을 순회하며 많은 의원들을 직접 훈시 교화했다.

의원정심 규제(醫員正心 規制)

1. 醫者不怠硏究深思熟考勿爲失數之至
의자는 부지런히 연구하고 심사숙고하여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2. 醫員夫患者何條件貧富高下莫論無差別待遇診療最先誠實爲主

의원은 조건이나 빈부고하로 환자를 차별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진료해야 한다.

3. 醫術仁術也慈惠濟衆非商道勿犯蓄財之道

의술은 인술이다. 그러므로 자혜로운 마음으로 모든 백성들에게 베풀고, 장사를 하거나 축재의 방법으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4. 醫道正直診療中病原因愆過秘密保障一切他方不許發說

의도는 정직이다. 그러나 진료 중에 일게 된 병의 원인 등 환자의 부끄러운 것은 발설하지 말고 비밀을 지켜야 한다.

5. 醫學者世間之尊敬人恒時以聖心對人不爲驕慢治療聘資不許他方利用

의학자는 교만하지 말고 성스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여 세간의 존경을 받도록 해야 하고, 치료를 빙자하여 다른 것에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야말로 한국판 (히포크라테스 선서)인 셈이이다. 두 강령을 비교해 보면 놀랍게도 거의 비슷하고, `인류 봉사', `양심과 품위', `비밀 엄수', `환자의 지위 불문'과 `의학 지식의 사용' 같은 항목은 동일하다.

'의원정심 규제'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규정을 의자(醫者), 의원(醫員), 의술(醫術), 의도(醫道), 의학자(醫學者) 별로 항목을 구분하여 만든 것이다. 우선 의료인을 의자, 의원, 의학자로 분류했다. 의자는 하급의 의사이지만 공부와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아 환자 진료 시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의사라면 반드시 누구나 충분한 지식과 기술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 단계 위인 의원은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치료해 주어야 한다. 가장 높은 단계인 의학자는 존경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聖스러운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고, 치료를 이익의 방법으로 이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분류는 또한 의사가 성숙해지면서 점차 발전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의술과 의도에 관한 표현도 의미심장하다. 우선 `의술은 인술이다.' 인술이니 근본적으로 베푸는 행위이다. 실제 진료행위에서 뿐만 아니라 마음가짐과 태도에서도 다른 사람 보다 훌륭하고 능력이 있어야 베풀 수 있다. 따라서 의사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건하고 남에게 줄 여유가 있어야 한다. 두 번 째로 `의도는 정직'이라고 했다. 놀랍도록 의학의 정곡을 꿰뚫는 정의이다. 물론 사이비 치료 등으로 환자를 현혹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나는 다른 뜻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미완의 세계에서 헤매고 있는 의료진료와 의학연구을 발전시키려면 정직이라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우리가 현재의 상황을 가식없이 있는 그대로 기술해야 미래에 이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해결할 수가 있다. 그러나 환자의 비밀은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런 태도가 어디 의학의 길에서만 필요하겠는가? 모든 길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의미일 것이다. 규정의 순서로 보아 의원이 인술과 의도를 갖추어야 의학자가 될 수 있다.

우연히도 이석형 공의 집터가 현재 서울의대 학생 기숙사 자리이다. 공은 젊을 때 진사, 초시, 중시, 삼장의 과거에 거듭 장원급제를 해 세상을 놀라게 한 수재였다. 집현전 직제학, 춘추관, 관찰사, 한성부윤, 대사헌, 팔도 도례찰사 등을 역임했고, '고려사(高麗史)'편찬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학문 뿐 아니라 글씨와 그림에도 능하고 온유한 성품에 재산도 많아 부족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이석형 공이 집 뜰에 연못을 파고 있는데 김수온 공이 찾아와, 물이 많이 차면 물도랑이 열려 적정 수위를 유지하는 연못을 만들어 주었다. 부족한 것이 없는 공에게 “넘치지 않게 살라”고 경계하는 의미였다. 소박한 정자도 만들어 계일정(戒溢亭)이라 하였다. 넘치는 것을 경계하는 계일정신은 공의 생활신조가 되어 명예와 권력, 재물과 복을 얻는데 과다하지 않도록 늘 주의하였단다. 이런 가훈으로 후손에서 8명의 대제학과 9명의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나와 연안 이씨는 명문가가 되었다.

김수온은 저한과 문과에 같이 급제한 동료이면서도 학문과 벼슬에서 좋은 경쟁자였다. 수재인 이석형은 학문적 능력과 사상적 깊이로 '의원정심 규제'를 만들었고 김수온의 문집에 실려 오늘날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식우집' 원본에 수록되었다는 이 내용이 현재 소장본에는 누락되어 있고 아직 확인못해 학문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문득 생각해 본다. 이석형 공의 생가 터에 훗날 의과대학과 병원이 세워져 의학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진료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기막힌 인연인가! '의원정심 규제'에 에 있는 공의 기본이념을 실행하여 인연을 완성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문헌고증인 의학역사학적 숙제를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