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작업실사람들

전주 갤러리 한옥 양청문 서각명인 초대전,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그림 편지'

날카로운 조각칼과 망치가 한땀 한땀 나무를 파낸다. 숨을 죽인 채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도 아랑곳이 없다.
양청문 서각(書刻)명인(대한민국 현판서각 명인 635호 · 대한민국 대한명인 전북지회 부지회장)이 7일부터 14일까지 전주향교 앞 갤러리 한옥서 초대전을 갖는다.
이 자리는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그림 편지'를 부제로 꾸려진다.
양명인은 느티나무로 음각한 6점의 풍경을, 손자 손녀는 크레파스, 수채화, 양화로 담아낸 그림 20여 점을 선보인다.
양명인은 조각달, 계곡, 숲 등을 조각칼·망치로 한땀 한땀 새겼다.손자는 이희재 군(12살)으로 군산풍문초 5학년, 손녀는 이수현 양(8살)으로 이번에 군산풍문초 1학년이 된다.  희재 군은 제7회 가천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은상(전주방송 JTV사장상)과 군산소방서 포스터 그리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현 양은 제7회 새만금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특선(부안군수상)을 받았다. 이들의 아버지는 이상민, 어머니는 양지윤으로 군산서 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가 밤하늘의 조각달을 바라본 게 언제였든가. 오래 전 여행지에서 바라봤던 기억만 맴돈다. 대도시에서의 삶은, 달을 차분히 헤아려볼 여유도 주지않은채 팍팍하게 치닫는다. 이런 우리들에게  양명인이 속삭인다. 오늘도 말없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을 바라보며, 마음에 품었던 환상을 다시 꿈꿔보라고.
서각은 어떠한 재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재료 선택이 중요하다. 이는 서각만이 갖고 있는 물성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이다. 양명인은 목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재료의 속성 자체를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론으로 나무를 응용하고 있다. 나무를 소재로 나타난 조형은 순수성을 메시지로 재발견하여 나타내고 형태는 또 하나의 상징적 기호를 갖는다. 형태를 기호와 단순한 의미전달체로 본다는 것은 형태에 압축된 다양한 의미의 미니멀리즘적인 가치를 뜻한다. 이러한 형태는 상상의 세계에서 연장되고 퍼져 나가는데, 양명인은 내면의 세계를 시각적 형태로 또 다른 조형으로 표현, 나타낸다.
하나하나 작은 픽셀이 모여 탄생한 모습들은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차가움이 아닌,고된 노동의 과정에서 느껴지는 편안함과 고요함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지루하게 반복되는 과정과 지난한 노동과정 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반쯤은 무의식적인 상태로 방기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는 엄정한 반복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 화면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고 최소한의 우연한 계기마저도 들어설 자리가 없을 것 같다. 
 이같은 과정들을 통해 얻어진 큐브와 픽셀은 여전히 수고로운 과정을 거친 작가만의 시간성과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게 된다. 작가에게 있어서 작품의 제작 과정은 그것에 대한 결과만큼이나 중요하다. 기교보다는 감동을 표현하려고 의도하는 작가에게 있어 더욱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표피가 아닌 그 속에 내재된 정신성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형상들이 서로 순간적으로 이루는 인연의 띠처럼 씨줄과 날줄로 연결되어 있다. 작은 조각이 빼곡히 모여 덩어리를 이루는 것은 태고의 시원으로부터 꼭꼭 간직한 내밀한 이야기를 외부에 펼쳐서 오롯이 전달하고자 하는 우주적 고리와 소통의 의미이기도 하며, 새로운 미래의 어떤 순간을 위한 기억공작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각각의 조각은 일정한 크기의 면적 단위로 그룹을 이루며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화면 혹은 공간 차원으로 존재하며, 전체적 인상은 달과 우주 탄생의 비밀을 집적한 거대한 기록 보관소의 단면 같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에는 새로운 별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끊임없이 유동하고 순환한다는 이치를 보여주고자 함이다. 물론   자연을 편안하게 보게 만드는 매력이 배어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집적된 덩어리 안에는 별을 통해 우주의 모든 생장 정보를 응축하고 동시에 미래의 커다란 성장을 함축하고 미시적이며 거시적인 우주에의 경배를 생명의 탄생인 자궁을 소우주로 인식하여 고스란히 작품에 농축시키고자하는 그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달과 숲, 계곡의 형상을 통해 바라보고자 하는 시간성, 물질성, 질료의 개념은 시대적, 문화적, 개념적 측면을 강하게 제시하는 순환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양명인이 제시하는 초승달은 천문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소우주가 있고 이를 빅뱅으로 합쳐진 커다란 생명공간으로 작용한다. 결국 그가 다루는 나무들로 탄생한 별은 우리가 그동안 듣지 못했던, 인간 본연의 삶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의 신호일 수도 있다. 그의 달은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나무의 원초적 촉각과 안온한 시각을 선사하는 원초적 그리움을 품고 있는 대상이다. 그러니 작가의 달은 고유한 한 생명체가 지닌 모든 것들이 자기 내부에서 발아하는 온갖 것들과 닮아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달을 통한 공간의 확장은 결과적으로 진정 여행할만한 다원적 세계를 만든다. 오히려 이것을 구체적인 이야기와 형상으로 풀어내지 않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더 크고 보편적인 의미로 다가갈 수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각자의 인생에서 무의식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심연의 깊이를 마주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거울처럼 마음을 반영하는 이미지로 투영되어 다양한 해석으로 발화되는 것이다. 우주의 순환적 질서와 그 순환적 궤도에 남겨지는 흔적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연작은 우주의 움직임이자 우리의 생명과 삶, 그리고 작가 이효문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나무 음각 사이의 틈은, 돌담이나 나무에서 느끼는 시골의 정겨운 풍경처럼 포근하다.
배경으로서의 하늘은 대다수의 작품에서 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어두운 구름이 아니라 밝은 구름이다. 변화무쌍한 구름의 이미지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느티나무의 이미지와 유사하다. 빛의 작용으로 인해 상상을 초월하는 갖가지 신비한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극적인 시각적인 질서를 만들어낸다. 나무의 문양과 구름의 이미지는 새삼 자연이 만들어내는 조형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준다.
그는 느티나무와 구름의 조화를 통해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리라.
느티나무의 그 독특한 형태적인 이미지에 국한하지 않는 조형의 묘미를 보여주는 셈이다. 여기에는 실제를 방불케 하는 극적인 사실 묘사가 선행되고 있다. 물상의 형태 및 색깔을 실제처럼 재현하는 극렬한 사실성은 타고난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한 재현적인 기술만으로는 리얼리티, 즉 사실성을 표현하기 어렵다. 느티나무를 현실적인 공간에서 보고 있는 듯싶은 착각은 다름 아닌 생명의 기운을 꿰뚫는 정확한 눈과 타고난 미적 감수성에 기인한다.
아무튼 그는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느티나무라는 나무를 통해 조형 세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명쾌하게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사실 이면에 인간 삶을 대비시키는 은유법은 나무그림 한 작품에서 새삼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담겨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양명인은 “가족은 같이 살아야 가족이고, 몸과 몸이 부대끼고 얼굴의 표정을 보고 자주 만나고 자주 함께 음식도 먹고 해야 가까워 질 수 있고 측은함과 함께 이해심이 생긴다. 하지만 현대의 가족들은 떨어져 살아할 사정이 적지 않다”며 “손주와 손녀가 이번 자리를 계기로 개인적 소질을 더욱 더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고 했다./이종근기자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