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션샤인 주인공처럼 '서도역으로 떠나는 가을소풍'
매일 전주로 통학하던 오라비. 이른 아침마다 행여 기차 시간에 늦을까, 어미가 차린 아침밥 먹는 둥 마는 둥 한술 뜨고 책가방 옆에 끼고 간이역으로 달려갔지. 서울 가서 돈 많이 벌어 오겠다던 아부지가 “왜 이렇게 기차가 늦냐”며 배웅 나선 가족들 앞에서 애꿎은 담배만 뻑뻑 피우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어떤 이에게는 낯선 세상으로 떠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던 문이던 시골 간이역. 기차는 떠난 지 오래다. 아니, 이제 영영 오지 않는다. 폐역 서도역 녹슨 선로에는 마을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시간만 아련하다.
지난 4일부터 5일까지 남원 서도역과 산동면 일대에서 '서도역으로 떠나는 가을 소풍'을 가졌다. 누구나 한번쯤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보고 싶은 욕구가 있지 않을까 하여 이번 가을여행 행사를 준비했다. 이번 행사는 서도역에서 5개 도와 10개의 민간단체가 공동으로 기획한 행사이다.
남원시 사매면 서도역으로 들어서자 시간이 멈춘 듯 옛 모습 그대로다. 세월이 묻어나는 빛바랜 역사 건물을 통과해 승강장으로 나서자 수령 50년은 너끈하게 넘은 듯, 성인 남자 몸통 두 배 굵기의 우람한 벚나무들이 선로를 따라 끊임없이 늘어섰다. 4월 초쯤 벚꽃 필 때 오면 연인들 얼굴이 온통 핑크로 물들 정도로 예쁠 것 같다. 마을 아이들에겐 소꿉장난하던 놀이터였겠지. 하루에 몇 차례만 서는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역무원과 숨바꼭질하는 풍경이 그려진다. 서도역(書道驛). 낡은 간판에 걸린 역 한자 이름이 아주 특이하다. 방향을 뜻하는 ‘서(西)’가 아니라 ‘글 서(書)’자이니 말이다. “참 신기하죠. 이 마을에 유명한 작가와 작품이 탄생할 것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 같네요”
최명희(1947∼1998년)의 대하소설 ‘혼불’은 수백 년을 이어왔지만 무너져 가는 남원 매안 이씨 종가 며느리 3대의 가족사를 통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집필에 무려 17년이나 걸렸다. 소설의 무대인 사매면 대신리 상신마을과 서도리 노봉마을은 작가의 고향으로 소설 주인공 청암부인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그려진다. 또 소설 속 효원이 대실에서 매안으로 시집오면서 내린 기차역이 바로 서도역이다. 주인공 강모도 서도역에서 전주로 통학한다.
역이 처음으로 문을 연 것은 1932년. 작가가 태어나기 15년 전이니 관광택시 기사의 너스레가 왠지 거짓부렁만은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서도역은 2002년 전라선 철도 이설로 인근에 새 역사가 지어지면서 폐역이 됐다. 지금은 영상촬영장으로 쓰이며 옛 추억을 되새길 뿐이다. 서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역사로 한때 사라질 뻔했지만 마을 사람들과 남원시가 힘을 합쳐 역사와 부지를 매입하면서 지켜냈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낡은 역사를 배경으로 선로 앞 벤치에 앉은 연인은 흐린 날씨 덕분에 영화에 등장하는 빛바랜 사진 속 주인공들 같다. 맑은 날보다 더 예스러운 사진을 얻을 수 있으니 날이 흐려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면서 연인들이 사랑의 추억을 남기는 명소가 됐다. 드라마 8회에서 구동매(유연석 역)가 철길에 앉아 한성으로 가려는 고애신(김태리)을 기다리던 장면이 서도역이다.
'미스터 션샤인 고애신처럼 따라하기'라는 주제는 이 드라마가 서도역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촬영 내용은 고애신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떠나는 장면이었다. 고애신은 대한독립을 위해 온 몸을 다 받친 생애였다. 이번 행사의 고광자, 장은순 공동대표는 구 서도역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했다고 말한다. 전국 각 지역에서 60여명은 단일 행사와 1박2일 행사로 참여했다. 가을소풍 프로그램으로 드레스코드가 지정됐다. 참여자는 고애신처럼 의상을 입어야 했고, 드라마속 고애신 대사를 외우고, 서도역 사진5장 SNS에 올리기였다. 참여자 커뮤니티방을 운영했다고 한다. 연일 대사외우기와 의상준비등으로 시끌벅적했고, 기획자와 참여자가 함께 준비한 가을소풍 행사였다. 이렇게 함께 행사를 만들어 더 뜻깊고 좋은 프로그램이었다고 참여한 사람들은 칭찬과 감동의 순간이었다고 자리을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행사는 1박 2일 동안 서도역과 산동면 상신마을 하늘모퉁이에서 진행됐다. 농가에서 준비한 로컬음식맛을 보고 마을을 소개했다.
현재 전국은 지역 소도시의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위기라는 큰 위기에 맞닫았다. 이에 소비인구 감소로 지역경제 순환이 원활하지 않다.'오도이촌'이라는 소비자의 욕구에 따라 정주권 이주보다 도심권, 타 지역과의 생활인구 관계망을 구축함으로써, 지역과 지역이 연대하며 존립해야 하는 공동체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연인들이 철길을 따라 걸었다. 철길 곳곳에 나무 의자가 놓인 포토존이 마련됐고 끝까지 가면 등나무터널을 만난다. 어둠 속에 섰지만 그들 앞으로 이어진 터널 밖은 영원히 계속될 사랑처럼 밝은 빛으로 찬란하다. 역광으로 예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돌아 나오는 길에 만나는 메타세쿼이아길이 서도역 최고의 뷰포인트. 두 갈래로 나뉘는 철길과 신호등, 터널을 이룬 메타세쿼이아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연인들의 뒷모습은 빈티지스러운 낭만적 풍경이다.
참여단체 가운데 패스파인더 김민희 대표는 남원지역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자원을 관광상품화 하고 관계인구 형성에 구체적인 관광상품은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고 있다. '컨티뉴 김병철' 대표는 이번 행사에 홍보포스터 제작을 맞았으며, 단아한 서도역을 담다. '고놈 TV '가 영상 및 사진 촬영 편집을 맡았다. 2023도 올해 남원시 영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업체이다 남원지역의 문화를 알리고, 크게는 우리나라 곳곳의 소소한 지역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알리고자 참여했다. 서도역 가을소풍 행사 영상도 영문으로 번역, 세계인에게 알리는 영상을 만들 계획이다.
고광자대표는 "지역 명소 서도역을 문화공간으로 재해석하고, 직접 대화하고, 경험하게 함으로써 마음과 사람을 잇는 지역 커뮤니티 기틀를 마련하고, 지역과 지역을 잇는 관계인구 네트워크 기틀을 마련하여, 문화와 공간, 사람을 연결하는 로컬여행 인프라 구축으로 서도역은 미스터 션샤인 촬영지 서도역 다움의 Culture Mix 문화공간 만들기에 충분한 문화 공간이다. 앞으로도 시즌별로 진행할 수 있는 문화와 공간콘텐츠를 활용한 여행 프로그램 개발 가능성 기대해본다"고 했다.
한편 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근처 노봉마을에는 최명희 작가의 집필실을 재현한 혼불문학관도 있어 함께 여행하기 좋다. 혼례식, 강모와 강실의 소꿉놀이, 액막이 연날리기, 청암부인 장례식, 춘복이 달맞이 장면 등 소설 속 장면이 디오라마로 전시돼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또 종가, 청호저수지, 달맞이공원, 노적봉 등 소설 속 실제 공간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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