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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39> 이리8경과 만경강, 그리고 융희교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39> 이리8경과 만경강, 그리고 융희교

목천포 북쪽 십리 10여 가구의 한적한 시골마을 '솝리'가 이리(裡里·속마을)로 바뀐 것은 호남선 철도가 놓인 뒤였다. 1912년 호남·군산선 개통과 함께 익산군청과 우편소, 헌병분대 등이 금마에서 역 주변으로 옮겨왔고, 익산중앙초등교 전신인 익산공립소학교도 그해 세워졌다.
옛날에 '이리(裡里)'를 우리말로 '솝리'라고 불렀는데(공식 지명은 아니었음) 일제강점기 한자 지명 정책으로 순우리말인 '솝리'를 한자로 의역하는 과정에서 즉 '감춰진 마을' 이라는 한자 '속 리(裏)'자와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자 '속 리(裏)'자와 동일한 한자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리(裡里)의 '이(裡)'자도 '속 이(裡)'자로 같이 쓰이다 보니 '속 리(裏)' 자보다는 '속 이(裡)'자가 쓰기에 편리하여 '속 이(裡)'자에다 '마을 리(里)'를 더하여 '이리(裡里)'라는 지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사람과 물자가 폭주하는 솝리 일대는 1931년 읍으로 승격했고, 같은 해 이리로의 공식 개명도 이뤄졌다. 1947년 시(당시는 부)로 승격한 이리는 고속도로 개통 이전 승객 3위의 국내 철도 요충이었고 1995년 익산군을 통합, 익산시로 이름을 환원하며 인구 33만의 호남 3위권 도시가 됐다.
익산의 성장동력 익산역이 문을 연 것은 호남선 강경~익산(27.2㎞) 구간과 군산선(24.7㎞)이 동시 개통된 1912년 3월 6일이었다. 
만경강과 금강 사이에 위치한 이리(里)는 과거 전라북도 북서부의 행정구역이자 현 익산시의 중심 시가지로, 현재는 지명으로 과거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1912년 호남선철도가 개통되며 이리역이 설립되었을 때, 이리는 전북 교통의 요충지이자 발전된 도시로 그위세를 떨쳤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근대 식민지의 쓰라린 기억이 서린 장소이기도 하다. 전북학총서 권 11‘호남보고 이리안내(지은이 야마시타 에이지, 역주 해설 양은용)’는 과거의 이리와 현재의 익산을 톺아보기 위한 귀한 자료다. 근대문화유산 연구 및 보호가 주목받는 지금, 당대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그 첫 발자국이 되어야 한다. ‘호남보고 이리안내’는 지배와 수탈의 고통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의병투쟁과 저항이 계속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 야마시타 에이지를 비롯한 일본인들이 '폭도'로 기록한 우리의 의인들을 향후 전북 의병 연구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다.
예로부터 '이리팔경(裡里八景)'이 있었다고 한다.  
요교(腰橋)의 낙안(落雁), 배산(山)의 모설(暮雪), 남당(南堂)의 야우(夜雨), 수월(水月)의 추월(秋月), 만경강(萬境江)의 융희교(隆熙橋), 만경강의 주선(舟帆), 사강(事崗)
의 청람(晴嵐), 이리(里)의 효종(曉鐘)이 바로 그것이다.

한때 이리팔경에 꼽혔던 '만경강 융희교(萬頃江 隆熙橋)', '만경강 범선(萬頃江 帆船)'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이른 아침 시내에서 내려다보는 목천포 동자포에 몰려든 돗단배와 융희다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만경강 건너 맑게 갠 하늘에 아득히 보이는 안개 띠 두른 모악산과 구성산의 그윽한 풍경을 그려 본다.
융희교는 남개(木川浦)에 있었던 만경강 최초의 다리였다. 1908년 군산-전주 신작로가 개통되면서 설치된 다리다.
1909년 10월 만경강 대장포에 세천교, 1912년 10월 고잔 마을 앞에 만경강 철도교, 1914년 11월 삼례 비비정 옆에 경전북부선 만경강철교가 개통됐다. 그러므로 융희교가 만경강의 첫 다리임이 분명하다.
'이리팔경에 부쳐(寄裡里八景)'는 고아쿠산인(向岳散人)이 쓴 시가 전한다. '아침에 비치는 융희교를 건너 오고 가는데 완산(完山)을 저멀리 바라보니 맑은 하늘 한가롭구나'
융희교는 적어도 30년 이상 전주 이리 군산 고베 오사카의 쌀 고속도로의 핵심 다리로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융희교가 있던 만경강은 한동안 강줄기로 남아있다가 언제부터인가는 잡종지 빈터로 남거나 집이나 창고가 들어섰지만 옛 만경강의 흔적을 일부 희미하게 남기고 있다.
'이리의 종소리' 시도 궁금증을 더한다.'긴 밤도 짧은 밤도 꿈 속에서 꿈을 꾸는 잠자리, 사랑하는 이에게 새벽을 알리는 이리의 종소리' 이리의 종을 만들어 세상을 깨우치는 목탁이 되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 1913년 이리 융희교 사진. (출처: 전북충남지주뇌지. 1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