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 제14회 세계서예비엔날레 '전북서예 유산의 길을 따라' 답사 전문 가이드로 활동(9. 24, 10.14, 10.21)
제14회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22일부터 다음달 22일까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북예술회관 등 전북 14개 시·군에서‘생동(生動)’을 주제로 열린다.
‘생동’을 주제로 펼치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생명에 대한 서예인들의 사색과 실험이 지속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지구촌에 K-서예의 새바람을 일으켜 우주자연의 활기를 북돋우고, 조화롭고 안정된 사회를 이룩하는 초석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번 비엔날레는 개막행사, 전시행사, 학술대회 등 6개 부문 38개 행사가 열린다. 국내외 20개국에서 참여 작가만 3,263명, 출품작은 2,321점에 이른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가 올해로 14회를 맞이한다. 작가와 관람객의 소통을 추구하며, 다양한 장르와의 융복합을 통하여 서예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와 예술이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오늘날 문화자산은 무한한 가능성과 고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문화를 보존 계승하는 것만으로도 지역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고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된다.
이에 전북도는 고유의 문화자산이자 동아시아만의 독특한 문화인 서예의 바람을 일으켜 전 세계와 소통하며 서예발전의 중심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 세계서예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북 서예는 송재 송일중(1632∼1717), 창암 이삼만(1770∼1847), 석정 이정직(1841∼1916), 벽하 조주승(1854∼1903), 유재 송기면(1882∼1959), 설송 최규상(1891∼1956), 석당 고재봉(1913∼1966), 석전 황욱(1898∼1993), 강암 송성용(1913∼1999), 남정 최정균(1924∼2001), 여산 권갑석(1924-2008)선생 등 오래 전부터 탄탄한 지방 서단을 형성하여 중앙과 대등한 실력과 세력을 갖추었다. 세계서예비엔날레가 전북에서 열릴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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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 제14회 세계서예비엔날레 '전북서예 유산의 길을 따라' 답사를 안내한다.
이종근이 2023 세계서예비엔날레 '전북서예 유산의 길을 따라' 답사를 안내한다.
9월 24일은 고창 일대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10월 14일은 전주와 삼례, 10월 21일은 전주와 임실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열린다.
참가비는 무료, 비엔날레 차편 준비
*참여 문의는 최비호 010 7242 1272
김상우 010 2053 0895
이종근 010 5179 7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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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서예답사(9월 24일)
답사 코스:고창읍성 공북루→선운사→병바위(두암초당)
△고창읍성 공북루
고창읍성(사적 제145호) 북문 ‘공북루(拱北樓)’편액이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이 썼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김익두 교수의 ‘조선 명필 창암 이삼만 : 민족서도의 길을 열다’(문예원 발간, 255페이지)를 통해 이같이 드러난다. 편액엔 ‘신유하완영과객서(辛酉夏完營過客書)’라고 나온다. 편액에 기록된 신유년(辛酉年)은 창암의 나이 32세가 되던 1801년이므로 그의 현전 가장 초년의 작품인 만큼 무엇보다도 풋풋함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고 했다. 편액 말미의 ‘완영과객서(完營過客書)’는 ‘완영(완산으로 창암의 성씨 관향이 있는 곳이란 의미)’의 과객(나그네)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필자가 직접 '가람일기'를 찾아보니 1932년 8월 17일자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모양정(牟陽亭) 터를 밟어 보고 고창 읍내를 굽어보고 이삼만(李三晩) 글씨라는 공북루(拱北樓) 풍화루(豊和樓)도 쳐다보고 나려오다’
△이광사, 고창 선운사 ‘천왕문’과 ‘정와(靜窩)’ 글씨 남기다
조선 고유의 서체인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한 천하 명필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의 흔적이 곳곳마다 많다. 해남 대흥사 대웅전, 부안 내소사 대웅전, 고창 선운사 천왕문과 ‘정와(靜窩)’, 지리산 천은사 일주문, 강진 백련사 대웅전과 만경루가 모두 그의 글씨이다.
△염재 송태회, ‘호암실경도’와 ‘두암초당(斗巖草堂)’ 글씨 휘호하다
전남 화순 출신의 염재(念齋) 송태회(1872-1942)는 구한말 일본강점기 호남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 삼절(三絶)’로 불리웠다. 48세 때인 1920년 오산고등보통학교(1922년 고창고등보통학교로 개칭) 한문교사로 초빙, 조선어와 한문, 습자, 미술 등을 가르쳤다. 이때 호암(壺巖)의 실경을 그린 ‘호암실경도’가 전하고 있다. 그는 1928년 6월 상순에 ‘호암실경도’를 그렸다.
‘두암초당(斗巖草堂)’은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아산초등학교 뒷편, 영모정 뒷산에 있는 일제 강점기 초당으로 호암 변성온(1530∼1614)과 인천 변성진(1549∼1623) 형제가 만년에 머물렀던 곳이다. 하서 김인후에게 가르침을 받고 퇴계 이황과 교류한 호암의 인품이 마치 곡식을 되는 말(斗)같이, 저울추같이 평평하여 치우치지 않았다고 ‘두암’이란 이름을 붙였다 한다. 중앙의 반석처럼 넓은 바위는 반암(盤巖)이다. 송태회가 호암(병바위)를 자주 찾아 즐겼음은 그의 문집에 실린 호암을 다녀와 쓴 시 ‘자호암귀로봉우(自壺巖歸路逢雨)’를 통해 알 수 있다.현재 그가 쓴 ‘두암초당’ 현판이 걸려 있다. ‘두암초당상량문’에는 “용공부자 2486년 을해 3월 24일 임자 임신 진시 상량 자좌 구(龍孔夫子 2486년 乙亥 3月 24日 壬子 壬申 辰時 上樑 子坐 龜)”이라 쓰여 있다. 한편 ‘고창고등보통학교 부근 풍경’은 고창고보 양태승교장이 대구 계성학교 부교장으로 떠나게 되자 긴 감사의 글과 함께 그려준 것이다. 건물이 있는 오른편 배경 숲 속에 향교를 그리고 왼편으로는 송림(松林)을 사생했다. 화폭의 맨 우측에는 높은 산(성산)을 그리고, 그 옆에 ‘고창고등보통학교 부근 풍경’이라 쓴 후 설립자 양태승을 위해 모양성 아래 우사에서 1928년 가을에 그렸다(高敞高等普通學校附近風景, 戊辰秋日爲梁泰承君寫牟陽城下寓舍 念齋宋泰會)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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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서예답사(10월 14일)
답사 코스:전주 객사→한벽당→비비정→호산서원
△전주객사
중국 주지번(朱之蕃)이 전주 객사의 ‘전주 풍패지관(豊沛之館, 보물)’이란 현판 글씨를 썼다고 전한다. ‘풍패(豊沛)’는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태어난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전주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이며, 황제의 고향을 의미한다. 이는 초서체의 호방하고 힘찬 필체로, 가로 4.6m, 세로 1.7m의 크기다. 객사는 왕권을 상징하는 읍성 내 건물 배치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좌묘우사, 左廟右社), 전주의 한 중심에 조선왕조의 발원지임을 뜻하는 거대한 편액을 설치했다는 것은 그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 이 현판은 필자가 국내에서 본 현판 글씨 가운데 가장 크기가 큰 글씨인 듯 싶다. 북한에 있는 것으로는 평양 금수산에 있는 ‘을밀대(乙密臺)’ 현판 글씨가 아주 크다고 전해진다. 이 편액은 전체적인 장법과 음양의 조화가 서로 어우러진 명품 글씨다. 편액에 대해 오래된 읍지엔 다음과 같은 사실이 기록됐다. ‘명나라 학사인 난우 주지번은 풍패지관이라는 넉 자를 써서 편액하다’
△한벽당
승암산 기슭 절벽을 깎아 세운 한벽당(전북 유형문화재)은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최담(崔霮)이 태종 1404년에 지은 건물이다. 누각 아래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데, 바위에 부딪쳐 흰 옥처럼 흩어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다고 하여 ‘한벽당’이란 이름을 붙였다. ‘한벽청연(寒碧晴煙)’은 ‘완산8경’의 하나로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나 수 많은 선비들이 찾았다. 한벽당으로 오르는 돌계단에서 마주보는 ‘한벽당’ 편액은 낙관이 보이지 않는다. 행서임에는 분명하지만 조선시대를 풍미한 조맹부체와 흡사하다. '전라북도금석문대계 6(증보판)'은 이를 쓴 사람이 농천(農泉) 이병희(李丙熙)라고 했다. ‘농천(農泉) 이병희지인(李氏丙熙之印)’으로 판독됐다. 그는 근대 명필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서예가로, 화순 임대정 원림 수륜대와 강릉 선교장 활래정의 주련을 휘호한 바 있다. 누각 안쪽 편액은 김예산(金禮山)의 친필로 9세에 썼다는 ‘의섬김예산구세근서(義城金禮山九歲謹書)’의 낙관이 있다. 강쪽 편액은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의 친필이다. 또한 한벽정 동편의 요월대(邀月臺) 편액은 석전(石田) 황욱(黃旭)의 친필이다.
△비비정과 호산서원
완주군은 비비정(도 문화재) 안내 표지석에서 ‘조선 선조 6년(1573)에 창주첨사(昌洲僉使) 최영길에 의해 창건됐고, 그 후 영조 28년(1752)에 전라관찰사 서명구에 의해 중건됐다. 현재 편액은 강암 송성용(1913-1999)이 쓴 것이고, 애초 송시열이 쓴 비비정 편액과 비비정기 원판은 현재 임실 비비정에 걸려 있다. 용맹한 장비(張飛)와 충성스럽고 효성이 극진했던 악비(岳飛)의 뒷글자 비(飛)를 따서 비비정(飛飛亭)이라고 했다. 바로 옆 호산서원은 만경강과 호남평야가 한눈에 보이는 아주 멋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호산서원 편액은 유재(裕齋) 송기면(1882~1956)이, 비비정 아래에 ’호산청파(湖山淸波)‘ 글씨는 석각으로 송시열이 썼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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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서예답사(10월 21일)
답사 코스:전주 오목대→임실 상이암→임실 정월리 강목마을
△전주 오목대
오목대(도기념물)는 고려 우왕 6년(1380년)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이성계가 개선길에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한제국 광무(光武) 4년(1900년)에 비석을 건립했는데, 태조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의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蹕遺址)‘라는 비문은 고종황제가 직접 쓴 친필을 새겼다. 현재 편액은 석전 황욱(1898~1993)이 썼다.
이목대(도기념물)는 이성계의 5대 할아버지인 목조(穆祖) 이안사(李安社)의 출생지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전주 이씨들은 이안사 때까지 줄곧 이곳에서 살다가, 함경도로 이사했다고 한다. 1900년, 이곳이 목조가 살았던 터임을 밝힌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라는 고종의 친필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이 비각은 당초 오목대의 동쪽 높은 대지 위에 있었는데, 도로 확장공사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임실 상이암
상이암은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85 성수산(聖壽山)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국사가 창건한 암자로, 선운사의 말사이다. 875년(헌강왕 1) 국사 도선(道詵)이 창건했고, 1394년(태조 3) 선사 각여(覺如)가 중수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 이곳에 와서 치성을 드리니 하늘에서 “앞으로 왕이 되리라”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절 이름을 상이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1894년 동학혁명으로 불타버린 것을 1909년 선사 대원(大圓)이 중건했다. 그 뒤 의병대장 이석용(李錫庸)이 이 절을 근거지로 삼고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므로, 왜병들에 의하여 다시 소실됐다가 그 뒤 중건되었지만, 6·25 때 다시 소각됐다. '상이암'은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찾아 다투는 지형으로 명당중의 명당이다. 태조 글씨로 전해지는 ’삼청동(三淸洞)‘이 있으며, 창암 이삼만이 쓴 ‘칠성각’ 편액이 전하고 있다.
△임실 정월리 강목마을
임실지역은 최성간의 비석을 포함, 비석 3개와 편액 3개 등 모두 6점이 있어 명실상부한 추사 금석문의 메카다. 비석으론 최성간묘비와 함께 정월리 김복규 정려비, 김기종 정려비가, 편액으론 양세정효작, 효덕연경지각, 귀로재가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김복규.김기종효자정려비 및 정판이 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정려비란 충신·효자·열녀 등의 언행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세우는 비이다. 임실 효충서원(정월리 강목마을) 내의 정려각 안에 서 있는 이 2기의 비는 조선 철종 때 사람인 김복규, 김기종 부자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김복규는 효심이 지극한 이로, 16세에 부친상을 당했지만 묘지를 정하지 못한 채 밤낮으로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 꿈에 나타난 도사가 일러준 대로 약을 구해 아버지께 다려드리니 다시 깨어나 천수를 누리게 됐다. 바로 이같은 그의 효행을 듣고 나라에서는 증 공조참판동지의금부사의 벼슬을 내려주었다. 아들 기종 역시 아버지에 대한 효가 지극하여 부모상을 당하자 3년간을 묘 옆에 초막을 짓고 살며 애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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