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유백영이 다음달 1일부터 13일까지 전주 서학동사진미술관에서 개인전 '삶, 바다'를 갖는다. 뜨거운 여름, 무언가를 찾아 혹은 누구과의 행복한 추억을 위해 길을 나선 사람들이 도심 한 복판에서 유백영의 바다를 만날 예정이다.
일출과 일몰에서 시작한 아름다운 바다 이야기는 만선의 기쁨을 담은 어부의 인생을 거쳐 항구의 역사를 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 그런 바다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부는 고기를 많이 잡으면 만선가를 부르지만 고기들은 깊은 통곡으로 한숨을 짓는 것이 아닌가. 매일 같은 자리에서 바지락을 캐는 아낙 옆에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새의 마음, 만선을 위해 가장을 바다로 보내야 하는 아내의 마음, 남들처럼 와이셔츠를 입고 책상에 앉아 일하기를 바랐건만 결국은 바다로 돌아온 나이 든 아들을 보는 노부부의 시각, 오와 열을 맞추어 촘촘히 도열한 고깃배 사이를 지나야 하는 물고기들의 목숨을 건 움직임, 아름답게만 보이는 항구의 높은 건물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죽는 새들의 모습 등. 그런 의도로 바뀌어 다시 잡은 작품의 주제는 아름다운 바다에서 치열한 삶의 무게로 바뀌었다.
작품 '어부들의 노래'는 내가 부르는 기쁨의 노래는 너의 통곡이 된다. 찰랑이는 은빛 바다는 이별의 세레모니다. 참으로 눈시울이 다 뜨겁다. 우리네 삶은 김삿갓과 같지는 않을까.'방랑'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항변한 작품이다. 이 작은 노를 저어 갈 수 있는 그곳은 어디일까? 질퍽거리는 땅, 높은 하늘, 무거운 머리 위, 슬픈 바다는 '무녀도'를 잉태했다. 내가 어느 순간 거기에 가 있으니 '감옥'은 아닐까. 나는 어제도 걸었고 오늘도 걷고 있고 내일도 걸을 것이다. 때문에 인생은 늘 새로운 도화지에 그려나가는 '스케치'이다. 물질은 누구에게는 삶의 무게가 되고 누구에게는 생존의 무게가 된다. '삶의 무게'란 작품의 실제다. '삶, 바다'같은 우리네 인생.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늘 그 자리에서 당신은 백합을 캐고 나는 갯지렁이를 잡는다. 삶은 늘 그렇다.
사진가는 한국사진작가협회 공모전 입상을 시작으로 40여 년간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2001년부터 한국소리문화전당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해 왔으며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그는 수상도 참 많이 했다. 전북예총 공로패, 전주시 예술상, 전라북도 사진대전 대상과 대한민국 법원의 날 수상까지. 전주시 기네스에 등재되기도 했고 전주세계소리축제와 전북도립국악원을 주제로 한 사진전도 개최했다. 공연 사진의 주 무대였던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는 개관 5주년과 10주년에 이어 20주년에 그의 기록사진전이 열렸다.
이번 작품의 주제는 '삶, 바다'이다. ‘나’의 시각만이 아닌 ‘나와 너’의 시각으로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백하게 담아내고 있다. 모든 사진작가들이 다 그렇듯 그 역시 ‘자연’을 주제로 한 사진으로 입문했다. 하지만 무대 위 인생에 매료되어 이십여 년 넘게 공연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러면서 예술가들과 다양한 연을 맺어왔다. 연로한 무형문화재를 찾아가 기록하는 작업 역시 지속하고 있는데, 이분들 중 상당수가 돌아가셨다. 어디 사람뿐이랴. 공소, 오래된 기차역, 방조제 그리고 최근 새롭게 청사를 이전한 전주지방법원까지 그에게는 그 모든 것들이 기록의 대상이자 여행지이다. 이번 전시는 그가 작가의 시각이 아닌, 타자의 시각으로 본 바다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누구는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인생을 즐겁게 여행하고 있다. 길이 있으면 가고, 멈추어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돌아와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런 느린 여행을 하고 있다. 그 여행의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다 그에게는 피사체가 되고 친구가 된다. 단순히 사진의 대상이 아닌, 같이 밥을 먹고 고민을 들어주고 인생의 방향을 서로 이야기하다 뜻이 맞으면 같은 방향으로 여행하기도 한다. 그에게 있어 인생은 느리게 관조하듯 걸어가며 여행하는 것이다. 사진은 그런 여행의 동반자이다.
그는 오랜 시간을 물질하는 늙은 어부를 바라보며 어부의 시각으로 바다를 보았다. 만선의 기쁨을 싣고 돌아오는 배를 바라보았으나 갈매기와 물고기에 감정을 이입해보기도 했다. 낡고 폐기된 호스선이나 김 양식장 지지대, 그리고 오래되어 방치된 그물들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즐겁지 않으려고 했고 치열하고 투쟁적이며 심지어는 전투력을 만랩으로 끌어올려 바다를 보려고도 했다. 그러나 결국은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그가 수년간 노력하여 출력한 사진들은 여전히 ‘바다’ 그 자체였을뿐이다. 아무리 보완하고 글을 덧붙인들 사족일뿐이다. 너의 길은 어디로 이어졌는가? 당신의 삶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생존과 동행이란 화두 속에 당신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전투적으로 고민하고 치열한 시각으로 잡아낸 작품들이 스무 개 이상 나왔다. 그러나 전시 직전까지의 치열한 고민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전주부채문화관 이향미 관장은 "최종적으로 나온 작가의 작품들은 그런 수년간 작가의 고민과 기획자의 의도와는 약간 다르게 다가왔다. 그냥 바다 그 자체였을 뿐이다. 유백영의 카메라가 잡아낸 바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넓고 안온하고 평화롭다. 기획은 실패했지만 작품은 지극히 아름답다"고 했다. 모든 판단은 오로지 관객들에게 내맡긴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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