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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스미의 미술산책

<새전북신문 연재물> [김스미의 미술산책] 〈11〉 왕희맹의 ‘천리강산도’

달 뜨고 산이 깊고 물이 푸르다. 틀림없이 빼어난 경치다. 이런 전망을 바라보고 살 수 있는 건 보통 팔자가 아니다.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거나 불가에서는 전생에 쌓은 공덕이 많은 거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뷰(view)에 살고 뷰를 확보하기 위해 돈도 아끼지 않는다. 우주라는 신비한 지구에서 선택적으로 태어난 인간이다. 역사에 점 하나 못 찍는 범부로 살아도 하나뿐인 귀한 존재이니 잘 살다 가는 것이 의무다. 그래서 한순간이라도 사는 것처럼 살고 싶은 로망이다. 그런 속마음을 풍경으로 그린 작품이 있어 보는 즐거움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중국 북송 시대 천재 화가였던 왕희맹(王希孟, 1096-1119)의 청록산수화 ‘천리강산도’를 보소. 세로 51.5cm, 가로는 거의 12미터에 달한다. 이 그림은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요. 풍경은 신선이 사는 곳이다. 18세에 그림 하나 그리고 스물셋에 요절했으니 왕희맹은 천리강산도 때문에 태어났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프로그램은 해독하기 쉽지 않다.
송나라 휘종 조 길이 궁정 화원 학생인 그의 뛰어난 자질을 알아보고 직접 가르쳤다. 전수 후 작업기간 여섯 달 만에 천하의 명작 천리강산도가 탄생한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영상으로 유명해진 중국 10대 명화 중 하나다.
대자연의 수려하고 웅장한 기개와 사람들 사는 모습이 사실적이다. 현세인지 천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판타스틱한 풍광이다. 끝없이 펼쳐진 신비한 청록의 산과 계곡,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장강에 뜬 배, 사공의 정취가 여유롭다.
중국 미술사의 초기 산수화는 산의 윤곽과 나무 몇 그루 그리는데 그쳤다. 물(水)의 표현이 다른 물상에 비해 어렵기 때문이다. 열여덟 왕희맹은 어떤 생각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작가는 경험을 배경으로 삶의 철학을 실어 작품을 완성한다.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이룬 이 작품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물레방아와 긴 다리, 노새를 몰고 가는 사람, 호수와 정자, 나무와 새, 바다인 듯 강물의 수평선이 한없이 펼쳐진다. 중국 사람 스케일이 제일이라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왕희맹은 아름다운 색감을 위해 녹송석이나 공작석, 주사 등 독성재료로 사용하여 광물질에 중독됐거나 과로사했다는 뒷담화다. 그의 그림을 모사한 장대천 작가의 천리강산도가 소더비 홍콩에서 595억 원에 낙찰됐다. 왕희맹의 작품은 물질로 환산할 수 없는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예술의 길은 장강의 물결만큼 길고도 멀다. 목숨 걸고 그림 공부한다고 끝이 아니다. 핏속에 흐르는 우주의 신비와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인파가 그림을 그리려는 꿈을 안고 도전한다. 시작의 언저리에서 고민하다 끝나는 게 부지기수다. 프로라고 다르겠는가? 먹고사는 무게의 하중까지 더해 더욱 힘들다. 자기 예술의 현주소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가 드물다. 그러나 예술을 사랑하고 그 그늘에서 놀다 보면 삶의 풍요로움은 배가 된다. 깨달음이라는 단어가 있다.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부대끼며 알게 되는 괴로움도 큰 공부다. 그러나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되는 것은 자연에 기대는 것이다. 요즘 산수유와 매화를 보러 가는 상춘객이 도로를 가득 메운다. 세상살이에 지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는 걸음이다. 신선이 따로 있는가? 산이 넉넉하고, 강물은 흐르고, 꽃잎 날리는 나무 사이를 거닐면 천국이다. 천리강산도를 보고 있는 지금이 행복한 시절이다. /화가 김스미

 

<천리강산도(千里江山圖)> 일부, 북송, 비단에 채색, 51.5x1191.5cm, 베이징 고궁박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