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듯 모를 듯 모호함이 예술작품의 신비감을 높인다. 무엇을 그렸을까? 주제는 뭘까?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울 때 대략 난감에 빠진다. 종교도 미술적 표현의 진부한 주제가 되었다. 사진 기술의 발달은 자연 풍광을 정확히 렌즈에 담았다. 이제 미술은 형체를 떠나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을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의 진화를 고민했다. 다양한 추상미술의 탄생이다. 19세기 서양의 추상미술은 사물이나 풍경의 재현과 의미 전달이라는 서사적 기능의 그림에서 점, 선, 면, 색채 등 조형 요소의 표현만으로 아름다움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다.
단순한 것이 아름답다. 삶도 미니멀리즘이 대세다. 소유의 덫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종이 인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움과 채움의 관계에서 수평과 수직의 평형이 주는 미완의 정체성이 원인이다. 이 딜레마를 해결해 준 데 스테일 회화의 거장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의 작품은 너무 멋지다.
창의적 추상성이 특징인 신조형주의 양식을 창안한 몬드리안은 네덜란드 태생이다. 파리로, 뉴욕으로, 생활의 변화가 작품에 투영되었다. 사실주의 고향 풍경을 그리던 그가 빨강, 파랑, 노랑 삼원색과 흰색 배경, 수평과 수직의 검은 선, 강렬한 대비의 구성 시리즈 작품은 당시엔 파격이었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동안 암스테르담에 고립됐다. 정신적 압박감과 전쟁의 참혹함으로 차가운 이성의 주체적 현실에 대한 철학이 담긴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감수성을 배경으로 사회환경과 문화에 영향받는다.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는 몬드리안의 뉴욕 망명 후 작품이다. 수직의 마천루와 재즈가 흐르는 뉴욕의 매력은 피안의 세계였다. 조지 벤슨의 This Masquerade(가면무도회)처럼 달콤하고 로맨틱하다. 당장 보따리 싸서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작품이다. 검은 선도 없다. 노란색이 주는 경쾌함이 나그네의 꿈처럼 자유롭다. 정신세계와 물질세계의 합일이다.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고 감각으로 그린, 오랜 시간 공들여 붓 자국도 남기지 않는 완벽성도 변했다. 대각선 논쟁으로 친구와 결별했던 그가 캔버스를 마름모로 구성하기도 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영원한 것도 없다. 나이 들어 알게 되는 만고의 진리다.
보편적인 평등의 추구라는 거대 담론을 명료하게 단순화시킨 그의 작품은 파장이 대단했다. 몬드리안 구성 패턴은 이브 생로랑 의상과 건축양식, 각종 그래픽디자인에 응용됐다. 100 미터 전방에서 ‘누구 그림이다’라고 알게 되면 작가는 이미 월드 스타다.
단순함의 균형과 순수함의 본질을 예술로 승화시킨 몬드리안의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이 문제가 화두다. 중도 혹은 중용이라는 동양철학의 뿌리와 같은 맥락이다. 2500년 된 음양오행 사상의 질서도 결국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다. 형평성이 흐트러지면 인간은 극도의 긴장 상황에 놓인다. 이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기분 좋아지고 어떤 장소에 가면 편안하다. 인간이 살기 위해 무의식적 평형을 유지하는 본능을 작동하기 때문이다. 몬드리안의 말년 작품도 초기 그림에 비해 편안하다. 만나면 따듯해지는 사람은 자주 만나야 한다. 진한 감동이 오는 그림을 보면 얼른 지갑을 열고 값을 지불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예술가를 존중하는 방법이다. 이것이 삶의 균형, 즉 나의 행복한 일상을 업그레이드하는 탁월한 선택이다./화가 김스미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 1942-43, 캔버스에 유채, 127x127cm, 뉴욕, 근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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