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구가 7일부터 10일까지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같은 기간에 열리는 2022군산아트쇼의 일환으로 갖는 전시다. 부스번호는 D23이다.
전시는 고향을 소재로 나무와 한지(순지 합성지)를 결합 시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나무라는 소재를 깎고 다듬고 10년 이상 해보면 사람의 감성을 표현하는 좋은 재료이고 사유의 대상이고 생성이자 소멸의 오브제이다. 광합성작용 대표적 대상인 나무는 사람한테는 온도 습도 조절뿐만 아니라 "숨"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그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광합성작용'은 인류의 커다란 혁명이었음이 틀림없다. 작가는 바로 이같은 나무에서 종이까지 경험적 순간을 탄화목(숯)으로 전이시키고, 바라보는 작품에 대한 기억을 한층 새롭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는 ' 내 고향은 시내에서 꼬불꼬불한 비포장길을 따라 25리 가끔오는 버스를타고 또걸어야 하는 고봉산 자락이다. 어릴 적 나는 항상 고향에서 시내가는것이 즐겁고 기대됐다. 대여섯 살 어린이에게 시골길은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었지만 나는 흔쾌히 시내 가는 길을 나섰다. 명분은 작은아버지에게 인사를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다"고 했다.
작가는 고향하면 2가지 생각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 첫 번째는 작은집에 가면 언제든지 시골에서 맛볼 수 없었던 슈퍼 음식을 먹으면서 보았던 장항이 보이는 view다ㆍ 두 번째는 작은아버지가 챙겨주시는 소소한 용돈이었다 “오메 조까 왔는가?” 항상 준비해 두었던 용돈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때마다 내 머리는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고 뿌리쳐야 한다고 배웠건만, 그 용돈을 단 한 번도 뿌리치지 못했다. 나는 그 용돈이 너무나 절실했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 하다고생각했다. 나는 작은집에 자주 가고 싶었지만 차마 눈치가 보여서 자주 가지는 못했고 했다.
작가에게 아버지는 항상 논에서 농약을 치고 있던 녹색 새마을 모자를 쓴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기억은 가을에 키가 나만큼 커버린 볏단을 헤치고 하염없이 논길을 걸어가던 기억과 추수가 끝난 빈 논에 무수하게 내려와 있던 참새들이 무리지어 ‘푸드득’ 날아오르던 풍경이다. 아버지는 늘 그 논에 계셨다. 뜨거운 여름에도 텅 빈 가을 논에도 항상 녹색 새마을 모자에 지게를 지고 계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또 언제나 술에 취해 계셨다. 작가는 그런 그곳이 이젠 그리워 시골의 풍경과 가끔 나와봤던 군산바다의 이미지를 작품으로 완성했다.
1964년 군산에서 출생한 이택구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이후 전주대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스위스, 프랑스, 서울, 전주 등 국·내외에서 13회의 개인전과 17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2021 탄소·예술 특별기획전 출품 작가로 선정되는 등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이종근기가
전시는 고향을 소재로 나무와 한지(순지 합성지)를 결합 시도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나무라는 소재를 깎고 다듬고 10년 이상 해보면 사람의 감성을 표현하는 좋은 재료이고 사유의 대상이고 생성이자 소멸의 오브제이다. 광합성작용 대표적 대상인 나무는 사람한테는 온도 습도 조절뿐만 아니라 "숨"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그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광합성작용'은 인류의 커다란 혁명이었음이 틀림없다. 작가는 바로 이같은 나무에서 종이까지 경험적 순간을 탄화목(숯)으로 전이시키고, 바라보는 작품에 대한 기억을 한층 새롭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는 ' 내 고향은 시내에서 꼬불꼬불한 비포장길을 따라 25리 가끔오는 버스를타고 또걸어야 하는 고봉산 자락이다. 어릴 적 나는 항상 고향에서 시내가는것이 즐겁고 기대됐다. 대여섯 살 어린이에게 시골길은 결코 만만한 길이 아니었지만 나는 흔쾌히 시내 가는 길을 나섰다. 명분은 작은아버지에게 인사를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다"고 했다.
작가는 고향하면 2가지 생각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 첫 번째는 작은집에 가면 언제든지 시골에서 맛볼 수 없었던 슈퍼 음식을 먹으면서 보았던 장항이 보이는 view다ㆍ 두 번째는 작은아버지가 챙겨주시는 소소한 용돈이었다 “오메 조까 왔는가?” 항상 준비해 두었던 용돈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때마다 내 머리는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고 뿌리쳐야 한다고 배웠건만, 그 용돈을 단 한 번도 뿌리치지 못했다. 나는 그 용돈이 너무나 절실했다. 우리 집은 너무 가난 하다고생각했다. 나는 작은집에 자주 가고 싶었지만 차마 눈치가 보여서 자주 가지는 못했고 했다.
작가에게 아버지는 항상 논에서 농약을 치고 있던 녹색 새마을 모자를 쓴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는 기억은 가을에 키가 나만큼 커버린 볏단을 헤치고 하염없이 논길을 걸어가던 기억과 추수가 끝난 빈 논에 무수하게 내려와 있던 참새들이 무리지어 ‘푸드득’ 날아오르던 풍경이다. 아버지는 늘 그 논에 계셨다. 뜨거운 여름에도 텅 빈 가을 논에도 항상 녹색 새마을 모자에 지게를 지고 계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또 언제나 술에 취해 계셨다. 작가는 그런 그곳이 이젠 그리워 시골의 풍경과 가끔 나와봤던 군산바다의 이미지를 작품으로 완성했다.
1964년 군산에서 출생한 이택구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이후 전주대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스위스, 프랑스, 서울, 전주 등 국·내외에서 13회의 개인전과 170여회의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2021 탄소·예술 특별기획전 출품 작가로 선정되는 등 작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이종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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