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문화 스토리] 펀펀(FUN FUN)한 부채 바람 소리에 살랑살랑 잠이 옵니다.
-권섭의 둥근 부채 이야기
오늘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이 나와 소개할까 합니다. 권섭(權燮, 1671~1759)의 '옥소산록(玉所散錄)'에 나오는 둥근 부채 이야기입니다.
'내가 둥근 부채의 표면에 '한 번 부치니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다시 부치니 밝은 달이 따오르네. 세 번 부치니 모기와 피리가 사라지고, 네 번 부치니 나의 집안이 맑아지네. 때때로 천 번 만 번 부치면 인간 세상과 바깥 세상 모두 텅 비어 아무것도 없으리'라고 했다.
권혁(權爀, 1694~1759)이 이를 보고 말하기를, '밝은 달이 떠오른다(明月出)'라는 표현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했으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뒷날, 찾아왔을 때 태종 대왕의 시를 내어 보여주니 웃으면서 말하기를 '태종의 시 또한 좋지 않는가' 했다.
뒷날 또 왔을 때에 당나라 시인의 시를 내어 보이니, 웃으면서 말하기를 '과연 옛 사람도 이렇게 썼다'라고 했다.
내가 또한 웃으면서 나무라기를,
'한 번 부치면 바람이 불어오고 다시 부치면 달이 떠오를 뿐 바람은 불어오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한 번 부치고 두 번 부치고 세 번 부치고 네 번 부치고 천 번 만 번 부치는 동안에 맑은 바람이 불어오고 밝은 달이 떠오르며, 모기 파리가 사라지고 나의 집안이 맑아져서 인간 세상과 바깥 세상이 모두 텅 비어 어떤 물건도 없게 된다는 말이다' 라고 했다'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인 ‘부치다’의 동사 ‘부’와 말채, 파리채, 뜰채 등과 같은 손잡이 막대를 뜻하는 ‘채’라는 명사의 합성어인 부채는 ‘손으로 바람을 일으킨다’는 낭만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선풍기와 에어컨, PVC 싸구려 부채에 자리를 빼앗긴 존재로 우리의 부채를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손 안에서 펼쳐지는 산수화와 눈앞에서 맞닿은 태극의 의미를 품고 마음 더위를 식히는 예술 작품으로서 우리의 부채를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이번 여름 옛 선비들의 풍류가 묻어나는 부채를 들고서, 명산대천을 유람해 볼 것을 권합니다.
국토와 산천의 아름다움, 그리고 역사를 노래한 선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명산의 기억들을 정리한 기행문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옛 선비들의 기상까지 이어받는다면 금상첨화이고.
오늘, 펀펀(FUN FUN)한 부채 바람소리에 살랑살랑 잠이 옵니다,
저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강풍보다는, 있는 듯 없는 듯한 미풍을 천성적으로 좋아합니다.
부채를 선물하며 지인들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챙겨주었던 먼 옛날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무더운 오늘입니다.
ㅡㅡㅡㅡ
사진은 전북도 문화재 선자장 방화선선생과 그의 제자 이정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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