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종 '선시(扇詩)’
태종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당 태종 같은 현군으로 추앙받기도 하고, 살육을 통해 왕권을 차지한 군왕이라고 은밀하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의외로 태종은 시정(詩情)이 있었다. 한시를 잘 짓지는 않았으나, 시적 정서는 풍부했다. 아마도 즉위하기 이전에 어느 해 여름인가 태종은 손수 대나무를 깎아 둥근 부채를 만들고 한시를 지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형식으로 노래
<열성어제>에 실린 ‘영단선(詠團扇)’이라는 제목의 시. 성현의 <용재총화>와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전했으니, 사대부들 사이에 회자되었던 듯하다. <용재총화>에서는 제목을 ‘선시(扇詩)’라고 했다.
바람 선선한 평상에 기대어 있을 때는
밝은 달이 그립고
달빛 밝은 마루의 읊조리는 곳에서는
맑은 바람 생각나기에
내 스스로 대나무 깎아
둥근 부채 만드니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이 손안에 있도다
風榻依時思朗月(풍탑의시사낭월)
月軒吟處想淸風(월헌음처상청풍)
自從削竹成團扇(자종삭죽성단선)
朗月淸風在掌中(낭월청풍재장중)
성현은 이 시를 평하여, 문사로서 대업을 이룬 이가 일찍이 없었고 제왕의 문장이 이처럼 교묘한 일도 역시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인의 경지에 있는 분만이 이렇게 사물을 끌어와 비유하면서 의취를 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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