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스토리] 사유(思惟)
국보 83호와 국보 78호를 아십니까. 아신다면 잘 구별할 줄 아십니까. 1962년 12월 같은 날에 국보로 지정된 이들의 명칭은 둘 다 '금동반가사유상(金銅半跏思惟像)'입니다.
반쪽자리 가부좌를 튼 채 오른손을 얼굴에 대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 거의 똑같은 이 두 반가사유상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국보 83호는 단순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체 표현과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코·입의 표현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품으로서의 완벽한 주조 기술을 보여줍니다.
반면 국보 78호는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자세, 아름다운 옷주름, 명상에 잠긴 듯한 오묘한 얼굴 등으로 보아 한국적 보살상을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6세기 중엽이나 그 직후의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국보 83호는 그 높이가 93.5cm로 금동으로 만든 반가사유상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큽니다. 국보 78호는 높이가 이보다 13cm가량 작은 80cm입니다.
국보 83호가 연꽃 모양을 한 연화관을 쓰고 있는 반면 국보 78호는 좀 더 화려한 탑형 모관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국보 78호는 금동일월식삼산관반가사유상(金銅日月飾三山冠半跏思惟像), 국보 83호는 금동연화관반가사유상(金銅蓮華冠半跏思惟像)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혼자 바위에 앉아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받치고 앉아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에는 고요와 평안과 잔잔한 미소가 스며 있습니다. 반면 로댕의 '생각하는사람'에는 그러한 고요와 평안한 미소가 없습니다. 그저 무거운 고요가 감돌고 있을뿐 굳어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에는 어디에도 거리낌없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데, '생각하는 사람'에는 무애(無碍)의 미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철학자 아스퍼스가 '반가사유상'을 보고 그토록 격찬한 이유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사물의 아름다움이 거리낌이 없을 때 우리는 감동을 받습니다.
'사유상(思惟像)'이란 '생각하는 상' 즉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 입니다. 불상이 대개 평평한 바닥에 다리를 꼬아서 앉는 방식을 취하는데, 반가사유상은 의자에 않는다는 점이 매우 독특합니다.
'반가(半跏)'라는 것은 '반가부좌(半跏趺坐'를 줄인 말입니다. 다리를 완전히 꼬아서 두 발바닥이 다 무릎 위로 올라오도록 앉는 것을 結跏趺坐(결가부좌), 혹은 온가부좌라 하고, 한쪽 발바닥만 반대쪽 무릎 위로 올라오도록 앉는 것을 반가부좌라 합니다.
그래서 반가사유상이란 '반가부좌의 자세로 생각에 잠긴 모습'이란 뜻이 됩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으니 반가사유상이야말로 불교를 나타내주는 상징적인 조각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줄기의 갈대일 뿐이다…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파스칼의 유고집 ‘팡세’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힘의 논리로 따지면 맹수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맹수를 지배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인간은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려 깊게 이치를 따지고 본능이 아닌 이성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똑똑히 기억하십시오. 비록 지금 갈대처럼 흔들리지만 당신은 세상에 당당히 뿌리내린 위대한 분이라는 것을, 온화한 반가사유상이라는 사실을, 가장 존귀한 천상천하유아족돈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고기와 껌처럼 고독은 꼭꼭 씹어야 제맛이지만, 외로움은 씹지 않고 음료와 약처럼 눈깜박하는 순간 바로 넘겨야 합니다.
외로움은 '버려짐'이며 고독은 '버림'입니다. 외로움이 '고통'이라면 고독은 '즐김'입니다. 외로움은 '생김'이며 고독은 '만듦'인 까닭입니다.
지금, 의자에 앉지 않은, 반가사유상 모습을 하고서 갈대를 바라보면서 종종 흔들거리며 살고 있는 내 모습과 그림자를 떠올려봅니다. /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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