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스토리] 아이들은 발가벗은 채로 천장에 매달려있는 천도복숭아를 따먹고 있다
-진환의 걸작 ‘천도와 아이들’
6월(이달)들어 여름 과일인 복숭아가 산지에서 출하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일부 지역에서 극조생 ‘천도계’(천도복숭아)를 중심으로 출하가 이뤄지고 있으며 6월 말~7월 초부터 ‘유모계’(털복숭아) 물량이 쏟아져 나올 예정입니다. 올해 산지의 전반적인 생육 상황은 봄 가뭄 외에 특이할 만한 변수는 없어 출하 물량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초반 시세는 양호한 상태지만, 출하 증가 추세에 맞춰 7월 장마와 무더위 등 날씨 영향에 따라 향후 시세와 수요 흐름이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여름 과일인 천도복숭아는 껍질이 매끄럽고, 붉은 빛깔에 새콤달콤 아삭한 맛이 특징입니다. 또 구연산, 사과산 등이 함유돼 초여름 덥고 습한 날씨로 떨어진 입맛과 기력을 돋우는 데 도움을 줍니다. 2020년 6월 18일 오후 전주 이희춘화백이 천도 복숭아를 따와 작업실을 이종근과 같이 방문한 이택구 갤러리한옥 관장에게 4개를 줍니다. 제가 이 가운데 2개를 먹어치웠습니다.
복숭아는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는데, 정조는 3천 송이의 복숭아꽃을 바친 것입니다. 3천이란 의미도 천도를 먹은 동방삭이 삼천갑자(三千甲子·1만8000년)를 살았으므로 무병장수를 비는 의미라고 합니다. 한지로 만든 복숭아꽃의 이름을 ‘효도화’로 명명하고 어버이날에 달아드리기로 한 것은 참으로 훌륭한 아이디어입니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투도도(偸桃圖)는 동방삭과 훔쳐온 복숭아를 담고 있지요. 보물 제1442호 일월반도도 병풍에도 천도 복숭아가 등장합니다.
각 4폭으로 구성된 2점의 대형 궁중 장식화 병풍으로 해와 달, 산, 물, 바위, 복숭아 나무 등을 소재로 하여 십장생도와 같은 의미를 나타낸 것으로 여겨지며, 특히 복숭아에 대한 길상 관념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에는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붉은 해와 흰 달, 한 개만 먹어도 천수를 누린다는 천도와 청록색의 바위산, 넘실거리는 물굽이, 억센 바위 등이 극채색 극세필로 그려져 있습니다. 해와 달과 산, 물결이 대칭으로 배치된 점은 그 소재와 상징성에서 어좌 뒤에 세워졌던 일월오봉병과도 유사하지요. 표현 시각과 기법에서 탁월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소재, 구도, 화법 등이 모두 뛰어난 작품입니다.
고궁박물관에 소장된 ‘일월반도도’(日月蟠桃圖)는 요즘의 울적함을 달래 줄 불로장생의 축원이 가득한 화려한 그림입니다. 인류는 순수한 감상용 그림을 그리기 훨씬 전부터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에 주술적인 기원이나 희망을 담았습니다.조선 후기에 성행한 민화는 복과 장수를 기원하는 문양이나 글자를 많이 그렸습니다.대표적인 것이 잘 알려진 십장생도(十長生圖)입니다. 장수를 비는 십장생에는 해·구름·산·물·바위·학·사슴·거북·소나무·불로초가 꼽히지만 조선 후기와 말기에는 대나무나 천도(天桃)복숭아가 추가된 그림도 많습니다.
해와 달, 산과 강, 천신을 믿는 신앙에 무속신앙, 중국의 도가적 상징이 결합된 것이 십장생도로 ‘일월반도도’는 새롭게 천도를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조선의 십장생도는 화려한 색을 써서 불로장생을 희구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을 나타냈습니다. 뜨거운 열망을 마치 색으로 웅변하는 듯 강한 인상을 줍니다.
흑백의 수묵화나 담채화 중심의 산수화에서는 보기 힘든 특징입니다. 그런데 그림의 채색 재료는 상당히 비쌌던 탓에 ‘민화’로 분류되는 십장생도를 민중의 그림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왕실, 고위 관료, 부잣집에서나 가질 수 있는 그림이라 조선 후기 200년 이상 세도가에서 각광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일월반도도’는 유행의 끝자락에 그려진 같은 계통의 그림입니다.
4폭짜리 병풍 두 첩이 한 세트인 8폭의 ‘일월반도도’는 해와 달, 복숭아를 그린 단순한 구도에 선명한 색감이 두드러집니다. 전형적인 십장생도와 소재는 다르지만 분명 장수와 안녕을 기원하는 그림입니다. 명도 높은 청색과 녹색으로 그린 산과 바위, 넘실대는 물결은 궁궐 정전의 옥좌 뒤에 두는 ‘일월오봉도’를 연상시키비다. 작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선의 명운이 다해 가던 시기 궁정 화원들의 협동작품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림의 주인공인 반도(蟠桃), 즉 천도는 중국 신화에서 여선 서왕모(西王母)의 정원에서 자란다는 복숭아입니다. 쪼글쪼글 영겁의 주름이 진 나무 등걸과 탱글탱글한 생명의 복숭아가 절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신선은 없어도 삼천 년에 한 번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이 복숭아를 먹고 동방삭이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설화가 선연히 떠오릅니다.
화면의 깊이감도, 채색의 변화도 없는 정적인 공간은 시간이 멈춘, 장생의 염원을 은유합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은 생명의 덧없음을 상징합니다.
고창출신 진환(陳瓛, 1913-1951)은 1931년에 보성전문학교 상과(商科)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습니다. 1934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미술학교(日本美術学校) 양화과에 입학했으며, 재학 중에 신자연파협회전, 독립미술전 등에 꾸준히 출품했습니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와 같은 관전(官展)에는 출품하지 않았고, 1941년에 이중섭, 이쾌대 등과 함께 서양화가 단체인 ‘조선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여 활동했습니다. 1948년부터 홍익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민족주의 계열 화가인 진환(본명 진기용, 1913~1951)은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유학길에 올라 10년간 일본에서 수학했습니다. 1943년 귀국해 도쿄 유학생으로 조직된 ‘조선신미술가협회’의 전시에 ‘소’를 소재로 한 작품 3점을 출품해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상을 담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소[牛] 그림은 이중섭의 작품이 가장 잘 알려졌지만, 그보다 먼저 소를 그린 화가가 진환입니다. 남아 있는 진환의 작품 중 태반이 소를 그린 것이고, '소의 일기'에서는 소의 '힘차고도 온순한 맵시'를 예찬하기도 했습니다. 예전부터 이중섭이 진환이 그린 소를 보고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얘기가 있었는데, 진환평전에 따르면 이를 전면적으로 다룹니다.
황정수는 "소는 이중섭만 다룬 독특한 주제가 아니다. 당시 일본에선 소와 말을 그리는 게 유행이기도 했다. 진환은 고향 고창에서 경험한 향토성을 소에 많이 반영했다. 진환은 이중섭보다 먼저 유학한 세 살 많은 선배이자 동인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였다. 진환은 50년대 이전에 소를 그렸지만, 이중섭은 50년대 이후에 소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이중섭이 진환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황토색이 주조를 이루는 그의 작품은 자연주의적이고 향토적 서정성을 짙게 담아냈으며 대부분의 작품들이 소를 소재로한 것으로 민족의 현실을 반영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아동을 위한 그림 동요집을 제작하는 일에도 몰두하며, 다양한 작품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진환은 미술 전문가들에게도 상당히 낯선 이름입니다. 그는 망각 속에서 재평가의 기회를 기다리며 미술사에서조차 누락된 식민지시대의 서양화가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오히려 진환은 이중섭보다 먼저 소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려왔습니다.이중섭의 라는 작품과 진환의 이라는 작품을 비교해서 보면 많은 유사성이 보입니다.
1940년대 그린 ‘복숭아와 아이들(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 선보입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자연의 모습이 몽환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천도의 아이들’은 이중섭의 그림과 여러 면에서 닮았습니다. 근대미술사 연구자들이 이중섭과 진환의 영향관계에 대해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복사꽃은 이중섭 그림에서 자주 나오는 꽃입니다. 그의 그림에서 복사꽃은 무릉도원, 즉 낙원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이중섭은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쾌유를 비는 의미에서 천도복숭아를 그려 주었다고 합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온 은지화(銀紙畵) '도원(낙원의 가족)'에는 복숭아나무가 가득합니다. 남자는 큰 복숭아를 누워 있는 여인에게 선사하고 있습니다. 이중섭이 그림으로나마 아내에게 복숭아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현실에선 꽃과 익은 열매가 동시에 달리지 않겠지만 이중섭은 둘을 같이 그렸습니다.
복숭아하면 이중섭화백이 생각납니다. 어느 날 병석에 누워 있는 시인 구상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도화지에 그린 그림 한 장을 친구에게 주었는데, 거기에는 복숭아 속에서 한 동자가 청개구리와 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림을 주면서 그가 시인에게 말했습니다.
“그 왜 무슨 병이든지 먹으면 낫는다는 천도복숭아 있잖아! 그걸 상(常: 시인의 이름)이 먹구 얼른 나으라고. 요 말씀이지” “이중섭의 인품은 천진(天眞) 바로 그것이었다”고 구상 시인은 추억했습니다. 천진이라는 말은 좋게 쓰면 성자와 같다는 것을, 나쁘게 쓰면 바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상 시인에게 있어서 이중섭은 전자에 가까웠던 모양입니다.
또다른 이야기도 전하고 있습니다.
시인 구상(1919~2004)과 ‘황소’ 그림의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는 동지였습니다. 어느 날 구상이 폐결핵으로 폐절단 수술을 받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약해진 탓인지 절친한 이중섭이 꼭 찾아와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평소 이중섭보다 교류가 적었던 지인들도 병문안을 와주었는데, 섭섭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이 친구가 무슨 사고라도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이중섭이 찾아왔다. 심술이 난 구상은 반가운 마음을 감추고 짐짓 부아가 난듯 말했습니다.
“자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 누구보다 자네가 제일 먼저 달려올 줄 알았네. 내가 얼마나 자네를 기다렸는지 아나?” 그러자 “자네한테 정말 미안하게 됐네. 빈손으로 올 수가 없어서” 하며 갖고 온 꾸러미를 풀어보니 천도복숭아 그림이 있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지 않던가. 그러니 자네도 이걸 먹고 어서 일어나게”
구상은 한동안 말을 잊었습니다. 과일 하나 사올 수 없었던 가난한 친구가 그림을 그려오느라 늦게 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구상 시인은 2004년 5월 1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도복숭아를 서재에 걸어 두고 평생을 함께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도반과 동지들 모두가 갈구하는 우정입니다. 그냥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요?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미로운 일인가요?
복숭아를 사다 줄 돈이 없어 이를 그려온
이중섭의 우정에 친구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아래는 이종근이 이를 통해 쓴 글입니다.
'이보게! 친구, 잘 있나.
설익은 전주 복숭아처럼 풋풋하고 순수한 그 마음 고이 간직한 네 모습보면서 파전에 탁주 한 사발하고 싶은 내 마음, 아는거니, 모르는거니.
이보게! 친구. 초의선사는 늙어감과 낡아감은 차이가 있다고 한 말을 기억하시는가.
“세상은 낡은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은 나이 들어 낡아가고 있으면서 늙어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늙어감은 금강석처럼 찬란하고 향기로운 무게를 더하면서 견고해지고 새로워지는 일이고 값진 일이지만, 낡아가고 있는 것은 썩어 소멸해가는 것이고 미망 속으로 떨어지는 것이고 냄새나고 추한 것이었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낡아지기만 하는 이들에게 서산대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네.
'이보게! 친구.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이보게! 친구. 좀 설치지 말고 미운 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리일랑 불평 일랑 하지를 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적당히 아는척, 어수룩하게,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할 때도 있다네.
이보게! 친구. 상대방을 이기려고만 하지 마소. 적당히 좀 져 주구려. 한걸음 양보 하는것, 그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비결이 아닐까 하네.
이보게! 친구.뭘 그리도 고민 하능가.
이리와 나와 함께 차나 한 잔 먹고 가소.
이보게! 친구. 차를 따르게
차는 나에게 반만 따르게
반은 그대의 정으로 채워주게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는 것이 도(道)가 아닌가.
이보게! 친구. 늙을 것인가, 낡을 것인가?'
진환의 '천도와 아이들’은 민화의 주요 상징들이 동심 가득한 화풍으로 표현돼 있습니다.하늘에는 봉황 두 마리가 물고기와 함께 날고 있고, 땅에는 꽃이 사람보다 더욱 크게 자라나있습니다. 아이들은 발가벗은 채로 천장에 매달려있는 듯한 천도복숭아를 따먹고 있습니다.
마포 위에 크레용으로 그려진 덕분에 매우 거친 느낌이 들며, 실제로 아이들이 낡은 삼베옷 위에 몰래 그린 듯한 착각도 들어 우리 민화의 풀뿌리같은 자생성을 고찰해 볼 수도 있습니다.
폴 고갱의 가 연상되는 측면도 있어, 삶의 본질로서의 회귀에 대한 의미를 고민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제목에서 암시하고 있듯이 작품 속 이상향의 세계는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연상시킵니다. 무릉도원이라는 말은 도연명(陶淵明 중국의 시인 365년~427년))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나온 말입니다. ‘도화원기’의 내용을 보면 “민물고기 어부가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 오는 것을 발견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강 주변에 복사꽃이 만발하여 경치가 아름답고 향기롭기 그지없고, 복사꽃 향기에 취해 꽃잎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앞에 작은 산이 가로 막고 있다”고 했습니다. 계곡물이 솟아나는 수원지 근처에 작은 동굴이 있었고 그 동굴을 지나니 복사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고, 어부가 발견한 무릉도원 마을 사람들 또한 진(秦)나라 때 난을 피해 가족과 함께 피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부는 이미 지금의 시대가 한(漢)나라를 지나 위나라 진나라에 대해서도 몰랐으며 대략 500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전했으나 그 마을 사람들의 세상에 자신들의 마을이 알려지지 않기를 원했으며 그 이후 어부는 다시 그 마을을 찾으려 했으니 찾지 못했다는 내용입니다. 그 평화로운 마을이 바로 무릉도원입니다. 무릉도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세상의 담론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던 도연명 자신의 이상향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복숭아는 복(福)숭아입니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사람들은 복숭아에 대한 추억이 남다릅니다. 개울에서 물장구치다가 출출해지면 냇가에 흔한 돌복숭아 몇개 따서 허기진 배를 달래곤 했으니까요.
복숭아가 제철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장마 이후부터 더위가 한풀 꺾이는 처서까지의 복숭아를 최고로 쳤지요. 특히 물놀이 후 원두막에 앉아 복숭아 한입 베어 물면 신선이 부럽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오늘에서는.
발그레한 빛이 감도는 복숭아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예로부터 복숭아는 과육이 연하고 맛이 좋아 신선들이 먹는 과일로 여겨왔습니다. 제가 어릴 적 산 곳은 도연명이 말한 ‘무릉도원’도 복숭아나무가 가득한 마을이었습니다. 여름이면 과수원밭의 복숭아가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이 나무 저 나무에서 복숭아를 따서 한입 배워물면 입안가득 복숭아 물이 꿀같이 목구멍으로 줄줄 흘러들어갔지요.
그런데, 복숭아는 밤에 먹는 과일로도 유명할까요. 복숭아는 유난히 벌레가 많은 과일이기도 한데, 없이 살던 시절에는 벌레 먹은 부위를 모두 도려내기에는 손실이 컸죠. 벌레가 있는 줄 모르게 하려고 어른들은 밤에 먹기를 권했고, 더 나아가 ‘복숭아 벌레를 먹으면 예뻐진다’는 말로까지 비약된 것은 아닌가요,
비운의 사도세자는 젊은 나이에 홀로된 어머니 혜경궁홍씨가 환갑을 맞이하자 정조는 수원의 화성행궁에서 회갑잔치인 진찬연을 열어 드렸죠. 이때 어머니에게 한지로 만든 복숭아꽃을 헌화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예부터 노인의 잔치에 빠지지 않았던 게 복숭아입니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복숭아꽃을 바치거나 상 위에 복숭아가 담긴 바구니가 놓였지요. 복숭아꽃을 바치는 게 헌도(獻桃) 혹은 공도(供桃)입니다. 복숭아를 수(壽)로 여겼기에 헌수(獻壽) 혹은 공수(供壽)라고도 했습니다. 회갑 선물로 복숭아 그림을 주기도 합니다. 그림을 받는 사람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입니다.
복숭아는 사기(邪氣)를 물리치고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정조는 3,000 송이의 복숭아꽃을 바친 것입니다. 3,000이란 의미도 천도를 먹은 동방삭이 삼천갑자(三千甲子, 1만8000년)를 살았다고 믿으므로 무병장수를 비는 의미입니다.
롯데백화점 전주점 청과매장에 올해 첫 출하된 천도 복숭아는 껍질에 털이 없어 알러지가 있는 사람도 먹기 좋고, 비타민 등 영양분이 풍부하고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이라고 합니다.
더운 오늘, 아삭한 천도복숭아 복숭아 한 입 깨물면 열심히 달려오던 더위도 저 만치 달아나겠지요.
풋열매 뽀얀 털에 감싸여 햇살 안고 있는 듯한 미소를 보이는 복숭아가 당신같아 모처럼 웃어봅니다.
향긋함과 달콤한 과즙맛은 당신의 향기입니다.수줍은 새색시 모습같은 살결은 당신의 순수입니다.
발그레 탐스런 복숭아 황홀한 맛에 취하고 싶습니다. 동방삭처럼 형벌을 달게 받을지라도 묽게 익은 복숭아 한잎 꽉 물고 싶은 유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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