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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고창 대산 수박은 누가 처음 재배했나?





[인문학 스토리] 수박 한 입 베어 무니 진한 달콤함에 황토흙 냄새가 짙게 배어납니다

-고창 대산 수박은 누가 처음 재배했나?

고창 대산 수박은 산지를 개간한 후 물이 잘 빠져야 수박이 잘 자라는 황토 토양을 구비, 여기에서 자란 연유 때문에 다른 어느 곳과 비교할 수 없는 달콤함과 시원함이 배어 있습니다.

특히 서해 바다의 해풍이 알맞게 불고 높은 산이 없어 일조시간이 긴 수박의 생태와 맞는 것도 유명세를 부채질 한 요소입니다.

고창은 비산비야(非山非野)인 고창은 옛날부터 다양한 산물이 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종근이 연구한 바에 따르면 고창 대산 수박은 1979년 대산면 농협 조합원인 고재봉(高在奉)씨가 야산을 일군 3,000평의 밭에 처음으로 재배한 것을 기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1974년~1975년 사이 2년 동안 야산을 개발, 그 누군가의 농민에 의해 재배한 것이 시기적으로 앞섭니다.

이를 통해 43년째 대를 이어 수박농사를 짓는 신건승씨는 제1회 수박왕으로써 전북도지사선정 제1회 ‘명품수박장인’에 선정됐습니다.

따라서 고창군의 대표 작목으로써 수박은 전국비중 7.6%에 전북비중은 53.5%에 이릅니다.

대산면은 물론 인근의 공음면, 아산면, 고수면, 성내면 등도 대산 수박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아들딸이 세워준 고창 '갑술생 애향비' 기사가 보입니다.

'1934년 갑술(甲戌)생 개띠. 일제 강점기 태어나 빈궁 속에서 해방과 6·25전란을 겪으며 자식들에게 굶주림의 고리를 끊어준 세대다. '대산면 갑술생 갑계'는 이름처럼 전북 고창군 대산면의 1934년생 노년의 모임이다. 이 모임 계원들이 정성을 모아 대산면에 지난 10일 '애향비'를 세우고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아비들이 겪은 고난의 세월을 자식들이 알아줘 기쁘고, 앞으로도 할 일이 있어 더욱 행복합니다."

1970년대 초 고창에선 대단위 개간이 있었다. '비산비야(非山非野·산도 들도 아님)'의 터전, 끼니를 잇기 어렵던 이곳에 국가는 미국산 밀가루를 나눠주며 야산들을 개간케 했다.
대산면은 맨 먼저 개간을 시작, 발끝에 돌부리가 차이던 야산 1500여㏊를 1970~73년 기름진 밭으로 일궈냈다. 갑계 계원들은 당시 30대 후반으로 이 사업에 피땀을 쏟았다.

개간된 땅엔 무 배추, 그리고 땅콩·수박 농장이 조성됐다. 대산면은 고창 농업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매년 여름 국내 최고가를 자랑하는 고창수박은 바로 대산에서 시작됐다. 대산의 농업은 이들의 대를 이어 40~50대 '청년'들이 번영을 이루면서 매년 여름 '고창수박축제'도 열어왔다. 가난했던 대산은 고창 13개 면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4300명)를 기록하고 있다.

대산의 갑술생 동갑들은 1966년 32살 나이 때 32명으로 시작했다. 계원이 하나둘 세상을 뜨면서 그 수가 이제 그 절반인 18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자녀들이 모임에 합류하면서 '준회원'까지 계원 수가 100명을 넘는다.

애향비엔 '고향의 은혜로 살아왔으니, 죽는 날까지 고향에 보은하겠다'는 맹세를 새겼다. 이 비는 도시에 나간 계원 아들딸들이 보내온 돈으로 건립됐다. 모임은 비를 세우고 남은 돈 100만원을 면내 저소득층 100여가구의 '풍수해 보험료'로 기탁했다. 계원인 탁정현 전 대산농협장은 "터무니없이 작은 정성이지만 자녀들이 깊이 공감해줬고, 앞으로 돌아갈 날까지 고향을 지키면서 적은 뜻이나마 함께 모으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자녀들은 밤낮으로 삽과 곡괭이로 돌을 파헤치고 지게로 져 나르며 자신들을 길러낸 아버지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김정남 대산면장은 "그 기억이 힘이 되선지 갑계 계원 자녀 중엔 유난히 중소기업인, 중견공무원, 대학교수 등 견실한 사회 중진들이 많다"며 "어르신 모두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지역을 이끌어 주시면서 노년의 귀감이 되고 있다"고 했다.

대산면 버스터미널 옆 남성제 경로당에서의 애향비 제막식엔 회원 18명 모두의 아들딸이 손자들과 함께 참석했다, 남편을 먼저 보냈지만 계원의 아내 4명도 모금과 제막 행사에 동참했다. 자녀들은 대산면 내 100여 노인들에게 '불낙탕'을 대접하면서 고향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당장 내달 벚꽃이 피면 1박2일로 부모들을 모시고 여행에 나서기로 했다'

고창대산청년회는 1991년 7월 퇴약볕 아래서 열린 ‘제1회 고창수박축제’(당시 이름은 대산수박축제)는 대성공. 청년회는 여세를 몰아 해마다 이 축제를 펼치며 고창수박 홍보와 농민소득 향상의 전령사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고창 수박 한 입 베어 무니 달콤한 물이 입 안 가득 고입니다. 아삭아삭, 진한 달콤함에 황토흙 냄새가 짙게 배어납니다.

땀을 많이 흘리는 요즘, 누가 권하지 않아도 저절로 수박에 손이 갑니다.

5,000원권 지폐에 수박이 그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5000원권의 인물초상은 율곡 이이 초상이 그대로 유지됐으며 앞면의 보조 소재는 창호무늬 바탕에 율곡의 탄생지인 오죽헌과 그곳에서 자라는 대나무가 그려졌습니다.

뒷면 소재는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8폭 초충도 병풍 가운데 수박그림과 맨드라미 그림을 그려넣었으며, 바탕그림은 조각보무늬를 사용했습니다. 이 도안은 신사임당의 초충도 병풍(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가운데 ‘수박과 맨드라미’ 그림으로 2006년부터 사용됐습니다.

초충도(草蟲圖, 나무와 벌레 그린 그림)엔 누구나 갖고 있는 세상살이의 소박한 욕망이 표현돼 있습니다.

가지·오이·수박을 그린 그림은 자손의 번성을 비는 마음을 담은 것들로, 씨앗이 아주 많은 채소들입니다.

5,000원권 지폐엔 수박뿐 아니라 맨드라미도 씨앗이 아주 많은데, 아이를 더 많이 낳자는 뜻을 담았다고 보면 좋겠습니다.

수박 한 통은 여러 사람을 불러 모으는 즉,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으로 콩 한쪽도 나눠 먹은 한국인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핵가족화로 가족 수가 줄어든 현대사회에선 한 통을 모두 먹기란 쉽지 않군요.

맛있는 수박, 좋은 수박은 두드려 보아 맑은 소리가 나고 줄무늬가 선명하며, 물에 넣었을 때 많이 뜨는 것일수록 싱싱합니다. 줄무늬가 많을수록 껍질이 얇아 과육이 풍부합니다. 껍질이 얇으면서 연한 연두색을 띠고 검은 줄무늬가 뚜렷한 것이 좋은 수박이예요.

색깔이 선명한 수박은 그만큼 햇살을 많이 받아 먹어 잘 익을수록 검은색과 초록색이 잘 구분됩니다.

화려한 무늬와 색감으로 자신을 뽐낼 줄 아는 감각, 이는 여름의 눈부신 태양을 보고 배운 게지요. 선명도가 높은 사람들이 매력 덩어리인 까닭은 수박처럼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그 다음은 줄무늬가 일정하게 쭉쭉 뻗어있는 수박을 선택해야 합니다.

줄무늬가 구불구불하지 않고 일자로 쭉쭉 뻗어있는 것으로 고르세요. 주체성없이, 우유부단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은 맛없는 수박과 같지는 않을런지요.

두들겼을때 소리가 영롱한 수박을 선택해야 마땅합니다. 말그대로 두들겼을때 맑은 소리가 나는 녀석을 선택하세요.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곧잘 말하는 지인은 한 통의 꿀수박이 아닐런지요.

'음식은 인심처럼 싱겁게
생활은 햇살처럼 둥글게
인생은 수박처럼 쿨하게'

사노라면 당신 앞, 잘 익은 수박 한 덩이가 되어 다가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언젠가는 꼭, 누군가에게, 간절한 부름을 받는 당신이 되길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