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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좁은목, 초록바위, 숲정이 등 전주 3대 바람통


[인문학 스토리] 보랏빛 별망울과 바람에 흔들리는 너를 사랑하련다

-좁은목, 초록바위, 숲정이 등 전주 3대 바람통

어쩌면 전주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의 도시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미지를 구성하는 많은 상징들, 예컨대 맛, 소리, 전통, 예향 등은 한결같이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전주는 보이지 않는 상징들을 ‘보이는 어떤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노력에 호응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그 내면 속에 훨씬 더 치열하고 능동적인 투쟁을 담고 있기 마련입니다. 상처받은 세월 속에서 도시는 그 깊은 속살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결코 버릴 수 없는 꽃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도시의 상징임에 분명하므로 코드 속에 숨어있는 숫자를 알면, 한옥마을이, 전주가 훨씬 더 잘 보입니다.

▲3대 바람통

좁은목 등 3대 바람통이란 세 곳의 바람 길목 또는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곳, 등골이 시원한 곳을 가리킵니다.

△ 좁은목

한벽당에서 남관쪽으로 물길을 따라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는 바위 밑을 가리킵니다.

‘도조인지 익조인지 환조인지, 아무튼 이태조 웃할아버지는 소싯적 전주천 한벽당 돌아 병풍바위 밑에 소낙비를 피하다가 그 바위 무너지는 순간에 빠져나와 목숨을 구했답니다. 저고리도 벗어던지고 빠져나왔습니다만, 피하지 못한 동네 아이들은 그 자리에 다 죽고 말았답니다. (중략)물통 밀어대면서들 웃고 그럽니다만 바윗돌에 깔리는 모습이, 살겠다고 웃통 벗고 도망치는 모습이, 푸른 연기 속으로 아른거리고 그럽니다’

진동규시인의 ‘좁은목 약수를 마십니다’란 시입니다. 춘향로에 자리한 좁은목은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장 이정란이 곰치를 넘어 이곳으로 진격해오는 왜군을 합공작전으로 물리쳐 전주성을 지켜낸 곳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주에서 남원으로 나가는 주요 관문이며, 물맛이 좋기로 유명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약수터 바로 옆에 1987년 10월 전주중앙로타리클럽이 세운 네 가지 표준(진실한가, 모두에게 공평한가, 선의와 우정을 더하게 하는가, 모두에게 유익한가)이라는 빗돌이 보이며, 인근에 충경공 이정란의 공적을 기린 사당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전주시를 동서로 가로지른 도로를 충경로로 명명한 것 역시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함입니다. 이곳에서 약수물 한모금을 들어켜보니, 가슴을 쓸어 내리는 싸한 청량감으로 인해 기운생동을 느껴봅니다.

△초록바위

초록바위는 한벽당 자락에 부딪친 전주천 물줄기가 전주부성을 타고 서진하다가 남부시장 천변에 다다르면 공수내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합수하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부는 바람은 흑석골과 곤지산에서 불어와 선선함을 선사하지만 조선시대 죄인을 수장하거나 처형한 뒤 초록바위 산 정상에 메달아 두었기 때문에 등골이 오싹한 한기를 느끼는 곳이기도 합니다.

△숲정이

‘우리는 다 같이 천주를 위하여 순교자가 되기를 맹세하고 철석같이 굳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나의 애정은 다른 감옥에 갇힌 남편 요한(유중철)에게로 끊임없이 달려만 갔습니다. 10월 9일 나의 시동생이 끌려 나갔습니다. 얼마 후에 남편과 그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나는 천주를 믿음으로써 목숨을 바치겠다고 확실히 말했습니다. 형리는 나의 정강이를 때리고 수갑을 채워 옥에 가뒀습니다. 내가 순교자가 된다면 모든 나의 죄는 없어지고 천 배나 만 배나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는 복(福) 안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이순이 루갈다의 ‘옥중편지’중>’

숲정이는 완주군의 삼례 앞 한내, 가래여울 그리고 쪽구름이(반월동), 가련평(가련산 밑), 사평(서신동) 들녘을 타고 불어오는 서북풍의 바람이 닫는 곳으로 현 동국해성아파트 일대를 가리킵니다. 이곳은 북쪽이 허한 기운을 돕기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으로 북서풍의 길목에 해당하기도 하지만, 조선시대 처형장으로 종종 서늘한 바람이 일기도 합니다.

숲정이는 옛 전주부성의 북쪽으로 툭터져 허하다고 해서 조선시대 전라관찰사 이서구가 1794년경 대규모 숲을 조성케 했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후 이곳을 숲정이로 불렀다고 하며 ‘숲머리’라고도 말합니다. 1866년의 병인박해는 5대 종교박해 사건의 하나로 가톨릭 신자 13명이 이곳에서 처형되는 사상 유례없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전주는 대표적인 천주교 순교지로 꼽히면서 성지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면 사람은 거칠어지고 무디어진다. 맑은 바람이 지나갈 여백이 없기 때문이다. - 법정스님

법정스님은 버리고 비우는 일은 지혜로운 삶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함께 사는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 몫을 더 차지하고 채우려고만 하기 때문에 갈등과 모순과 비리로 얽혀 있습니다.

바람은 오래된 친구 사이 같습니다.
힘든 날, 지친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괜찮아, 다시 일어나…’ 속삭인 것도 바람이었고
때로는 ‘교만하지 말라’며 매섭게 야단친 것도 바람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바람 불지 않는 인생은 없습니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뿌리를 더 깊숙이 내립니다.
꺾이지 말라고, 그렇게 단단히 버텨내라고,
그래서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 잎과 꽃을 피우라고 바람은 나무를 흔듭니다.


바로 그 바람 속에서 해와 달이 뜨고 지며 구름이 흐르고, 비와 이슬이 자라납니다.

내 안에서 바람은 햇볕처럼 따뜻했다가 때로는 심술궂게 굴면서 스러져 갔습니다. 무엇이든지 소유하고 채우려고만 하면 사람은 거칠어지고 무덤덤해집니다. 맑은 바람이 지나갈 마음의 여백, 그것이 우리에게는 간절히 필요합니다.

나이를 아주 많이 먹어도 맑은 바람을 가슴 속에 지니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외롭지 않게 늙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비의 흔적이 풀숲에 남아 초록이 더욱 짙습니다. 몫몫이 조성된 수변엔 사람이 주인인 것 같지만, 잠시 들러 여백의 은은한 바람 소리를 듣고 가는 객에 불과합니다.

계절 냄새 음미하려면 조용한 개으름이 좀 필요합니다. 내가 필요한 만큼 한가로움은 내 마음의 여백을 만들어가는 것.

물고기는 무장무애(無障無碍)와 자유자재의 상징입니다. 물고기가 맑은 연못에서 거리낌 없이 헤엄치며 돌아다니는 모습은 일체의 걸림이 없는 무장무애한 상태를 말합니다. 장자가 '어락(魚樂)'이라고 했던 바로 그 경지입니다. 아마도 원천적 자유를 누리는 물고기의 즐거움을 두고 이르는 말일 터입니다.

사람도 해변에 느긋하게 누워 푸른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야자수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태양의 강렬함을 느끼면 됩니다.
해질녘이면 황금색에서 주황색을 거쳐 자주색으로 느릿하게 변해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잔을 기울여도 봅니다. 혹은 새하얀 연기를 내뿜으면서 덜컹덜컹 움직이는 옛 기차에 몸을 맡긴 채 차창을 스치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이런 곳에서 시간은 느리게 흘러갑니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벗어난 우리에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느린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여백과 약간의 게으름뿐.

수없이 흔들림 속에도 피어난 산마루의 꽃들이 내 마음을 이끕니다. 산은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냅니다. 그리고 그 비워낸 여백에다 바람 소리를 키우고, 순백의 눈을 채워 넣습니다. 그 여백을 바라보는 것은 눈(眼)이지만 받아들이는 건 마음입니다.

산이 보여 주는 여백은 아름답습니다. 우리네 삶에도 그렇게 여백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숨통, 그 여백 그 작은 틈에서 사유(思惟)라는 가지가 뻗어나와 우리의 휘청거리는 정신을 다시 꼿꼿하게 일으켜 세웁니다.

세상만사 굳이 하지않아도 되는 일까지 신경쓰고 챙기면서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바, 맑은 바람이 지나갈 수 있는 당신의 여백을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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