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이야기 ] 익산 미륵사 목탑을 석탑보다 먼저 조성, 배수 위해 깬 돌과 흙으로 기초 다지다.
'백제 시대 최대 규모 사찰' 미륵사의 목탑지 기단 축조 방식이 확인됐다. 서원 석탑보다 중원 목탑 조성이 먼저 이뤄졌을 것이란 분석 결과도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 목탑지 보완 발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3월부터 추진 중인 익산 미륵사 목탑지 보완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시대 목탑지 기단 내․외부 축조공정의 순서와 방법, 중원 목탑과 서원 석탑의 축조 순서, 목탑의 평면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히 확인됐다.
이번 조사 대상인 목탑지는 1981년과 1994년 조사를 통해 잔존 양상과 하부구조의 특징이 확인된 바 있다. 다만 당시에는 잔존한 기단을 중심으로 현황을 확인하고, 탑지 중앙부에 한해 하강 조사가 이루어진 까닭에 목탑지의 전체 규모 및 내·외부 축조공정을 밝히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 보완조사는 향후 정비복원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기존에 조사하지 못했던 목탑지 내외부를 중심으로 평면조사와 탐색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목탑지 기단 내·외부 축조공정의 순서와 방법을 확인했다.
과거 지면을 정지한 다음 기단 최하부에 깬 돌과 흙을 쌓아 배수를 원활히 하고 기단 기초부를 단단히 다져 올렸다. 그 뒤 기초부 상부에는 외부 5~6단, 내부 2단의 석축을 안팎의 다진 흙과 함께 쌓아 올렸다. 석축 내부는 성질이 서로 다른 흙을 시루떡처럼 수평으로 다짐 쌓기 하여 기단부를 만들었고 외부는 경사지게 흙을 쌓아 주변부를 조성했다.
외부 탐색조사 과정에서는 중원 목탑과 서원 석탑의 축조 순서를 알 수 있는 근거를 확인했다. 서원 석탑의 경우, 대지조성층을 파고 기초부가 마련된 반면에 중원 목탑의 기초 터파기와 성토는 대지조성 이전에 이루어져 사역 중심인 목탑지를 중심으로 공간 배치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목탑의 평면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상하층 기단부의 굴광 흔적을 확인했다. 과거 목탑지의 유실이 심하여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번 확인으로 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확보했다.
이외에 북쪽 기단 일부에서는 후대에 개축되었을 가능성을 확인했다.
백제시대 최대 규모 사찰인 익산 미륵사지는 익산 왕궁리유적과 더불어 백제 무왕의 익산 경영을 보여주는 백제 핵심유적 중 하나이다. 미륵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삼국사기(三國史記)』등 사료와 미륵사지 석탑 출토 금제사리봉영기를 통해 창건과 관련된 내용이 전해지고 있어서 역사기록과 고고학자료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중요 유적이다.
익산 미륵사지 발굴조사는 1974년 동탑 조사를 시작으로 1994년까지 3차 15개년에 걸친 체계적인 조사와 2009년 석탑 기단부 발굴조사 등을 통해 백제시대 최대 규모의 사찰이었음이 규명됐다. 미륵사지는 다년간의 조사·연구를 거쳐 3원병렬식의 독특한 가람배치임이 밝혀졌고,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 7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3원병렬식 가람배치는 3개의 탑과 3개의 금당, 3개의 문이 회랑으로 구획되어 각각의 영역을 형성한 가람의 배치 형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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