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스토리] 문학 속의 들꽃
꽃을 ‘보는 감상법’은 사람마다 모두 제각각입니다.
산수유는 노랗게 물든 색깔에, 벚꽃은 꽃보다는 그 규모에 눈길이 가는 법이요, 국화는 아찔한 향기가 특징인 반면 장미는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모양에 앞서 향기가 다가오는 꽃도, 빛깔에 눈길이 가는 꽃도 있을 때란.
생명의 빛을 뿜어내는 신록의 기운들.
그 생명의 잎사귀가 드리운 그늘 아래.
쉬는 이들도 새롭고, 시간 또한 푸릅니다.
땅엔 붉은 진달래, 등불처럼 반짝입니다.
법흥사터 한쪽 커다란 귀룽나무에 연둣빛이 한창입니다. 가지가 퍼진 만큼 넓게 드리운 그늘에 오가는 이들이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데크 계단으로 오르다 그 풍경을 굽어봅니다. 귀룽나무도 푸르고 사람도 푸릅니다. 그곳에서 쉬는 사람들의 시간도 푸르게 흘러갈 것 같습니다.
물오른 신록과 빨간 진달래꽃이 어울린 계단을 지나 올라온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공중에선 연둣빛 잎이 반짝이고 땅에선 붉은 진달래가 빛납니다. 이 길에선 자꾸 멈춰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숲속도 숲밖도 온통 연둣빛 신록으로 빛났습니다.
최명희의 '혼불'에는 왜 여뀌가 자주 등장할까요. 소설의 배경은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의 노봉마을입니다.
남원을 가로지르는 강은 요천(蓼川)이고, ‘요’자가 ‘여뀌 요’자라는 것을 알면서 그 궁금증이 풀렸습이다. 소설에서 여뀌와 늘 함께 등장하는 명아주도 어디에나 흔하디 흔한 잡초 중 하나입니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는 74세의 괴테가 19세의 울리케를 사랑한 이야기를 연상시킵니다.
'은교'에서 은교를 묘사할 때 쇠별꽃으로 표현됩니다. 만경강 철교 거대한 교각 바로 위 무너져 내리다 만 콘크리트 더미에 이전에 보이지 않던 꽃송이 하나가 피어 있었습니다.
“꽃 이름이 뭔지 아니?”
난생 처음 보는 듯한, 해바라기를 축소해 놓은 모양의 동전만 한 들꽃이었습니다.
윤흥길의 '기억 속의 들꽃' 에 등장하는 ‘쥐바라숭꽃’이라는, 세상에 없는 이름을 가진 이 작은 들꽃은 명선이에게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거대한 교각 바로 위, 무너져 내리다 만 콘크리트 더미에 이전에 보이지 않던 꽃송이 하나가 피어 있었다. 바람을 타고 온 꽃씨 한 알이 교각 위에 두껍게 쌓인 먼지 속에 어느새 뿌리를 내린 모양이었다'
결론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 없는 꽃입니다.
쌓인 먼지에 뿌리 내리는 쥐바라숭꽃은 전쟁 중에 홀로 강인하게 살아가는 명선이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명선이 머리에서 꽃이 떨어지는 것은 명선이가 곧 죽을 것임을 암시합니다.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의 이미지로 장미를 택한 것은 흔한 꽃이어서가 아닐 터입니다. 최고의 꽃인 장미에 비유해 엄마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냅니다.
양귀자의 소설 '한계령'에서 작가인 여주인공은 25년 만에 고향 친구 박은자의 전화를 받습니다.
은자는 부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미나 박’으로 나름 성공했다며 꼭 한번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그 마음을 진달래를 통해 절묘하게 담았습니다.
은자로 보이는 여가수가 부르는 노래는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이었습니다. 여주인공은 노래를 들으며 큰오빠의 지친 뒷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흘립니다.
은희경의 '새의 선물'엔 사과꽃이 열두 살 소녀의 풋사랑을 상징하는 꽃으로 나옵니다.
'가슴이 설레는 걸 보면 진정 나는 사랑에 빠진 모양이다. 과수원이 가까워질수록 꽃향기가 진해진다. 사과꽃 냄새다'
초록색 안개에 싸인 과수원의 사과나무꽃은 황혼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남자의 실루엣과 함께 이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필자는 허석이 그리우면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풋사과가 매달린 과수원길을 한없이 걷습니다. 풋사랑이라 당연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바람을 맞으며 익어가는 과실들을 자세히 보면서 향기를 꼭 맡아봐야겠습니다. 새삼 꽃은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문학은 꽃의 빛깔과 향기를 더욱 더 진하게 만들고 나를 성숙하게 만드는 존재로 다가서는 존재입니다.
http://www.sjbnews.com/news/news.php?code=li_news_2019&number=66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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