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고산(南固山)의 호랑이 바위
옛날 남고산 중턱기슭엔 어느 가난한 부부가 슬하에 두남매를 두고 단
란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땔나무를 마
련하기 위하여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갔는데 여름철의 기나긴 해가 저
물었는데도 돌아오질 않았다. 어머니는 하지감자 네개를 쪄 놓고 남편
이 오면 네 식구가 한 개씩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달이 환하게 산
등에 떠올라 밤은 깊어 가는데도 아버지는 돌아오질 않았다. 어머니는
참다 못하여
"얘들아 아버지 것만 남겨놓고 먹고 자거라"
했다. 그러나 남매는,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라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딸은 꿈결에 아버지가 황소 만한 호랑이에 쫓겨 깊은 산중으로 날듯이
달아나고 있었다. 딸은 아버지를 외치며 쏜살같이 따라 갔더니 호랑이
는 산마루의 큰 바위에 버티고 앉아,
"어흥~ 잘 왔구나! 배가 고프니 너마저 잡아 먹어야 겠다"
라며 으르렁 댔다.
"우리 아버지를 해치면 안돼요. 대신 나를 잡아 먹으시오"
딸은 울며 애가 닳도록 애원 했다. 그러자 동생인 아들이 어느 새 뒤따
라 와서,
"호랑이님, 아버지나 누나를 해쳐서는 안 돼요. 대신 나를 잡아 먹으시
오"라고 애원하니 누나는 동생을 밀어 내면서,
"안 된다. 안돼!" 하고 서로 밀어 제쳤다.
그러자 호랑이 앞에서 정신을 차린 아버지가 아이들을 가로막더니,
"나는 어른이고 저 사람들은 어린 것이니, 해치지 말고 어서 나를 잡아
먹으시오"라고 했다. 그때 호랑이는 덥석 딸에게 달려들었다.
"우선 너부터 잡아 먹어야지. 어흥!"
그 순간 딸은 기절하다시피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니 꿈이었다.
아들도 깜짝 놀라 잠결에서 깨어나니 식은 땀을 흘리며 누나와 똑같은
꿈 이야기를 했다. 방 한 구석에는 면실유의 등잔불이 깜박 거리고, 바
가지 속엔 감자 네 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웬일인지 어머니가 보이
지 않았다. 남매는 벌떡일어나 뛰어 나아가니 어머니는 호랑이 앞에서
큰 절을 하며,
"호랑이님 부디 지아비 대신 나를 잡아먹고 지아비는 살려 주십시오"
산에는 달이 휘영청 밝은데 부엉이가 울고 있었다.
"나무 없어 부엉~, 쌀이 없어 부엉~"
그 때 산 꿩이 뇌까리는데,
"앞집에서 콩 한 되 뒷집에서 팥 한 되 그럭저럭 살자꾸나!"
이윽고 동이 틀 무렵 호랑이는, 새 하얀 머리와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
뜨린 산신령으로 변모하더니,
"너희들은 배가 고픈데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남매우애하고, 부부 화합
하니, 장차 너희 집안에 복을 내리겠노라"
하는 말을 남긴후에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호랑이 모습의 바윗돌만 여
명에 어른거렸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호랑이 바위라 불리었다. 기진맥
진한 아버지는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등잔불은 텅
빈 방을 지키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바가지 속에 있었던 감자 네
개는 간 곳이 없고 쌀이 그득히 담겨 있었다. 가족들은 산신령이 계시
한 말을 가슴 속에 간직하며 더욱 근면하고, 학업에 열심 하여 과거에
알성 급제를 하고, 자손도 불어나 영화를 누리며 살게 되었다.
- 류기수(전주시 완산구 전동 유산부인과 의사) -
옛날 남고산 중턱기슭엔 어느 가난한 부부가 슬하에 두남매를 두고 단
란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버지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땔나무를 마
련하기 위하여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갔는데 여름철의 기나긴 해가 저
물었는데도 돌아오질 않았다. 어머니는 하지감자 네개를 쪄 놓고 남편
이 오면 네 식구가 한 개씩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달이 환하게 산
등에 떠올라 밤은 깊어 가는데도 아버지는 돌아오질 않았다. 어머니는
참다 못하여
"얘들아 아버지 것만 남겨놓고 먹고 자거라"
했다. 그러나 남매는,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라는 말을 남기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딸은 꿈결에 아버지가 황소 만한 호랑이에 쫓겨 깊은 산중으로 날듯이
달아나고 있었다. 딸은 아버지를 외치며 쏜살같이 따라 갔더니 호랑이
는 산마루의 큰 바위에 버티고 앉아,
"어흥~ 잘 왔구나! 배가 고프니 너마저 잡아 먹어야 겠다"
라며 으르렁 댔다.
"우리 아버지를 해치면 안돼요. 대신 나를 잡아 먹으시오"
딸은 울며 애가 닳도록 애원 했다. 그러자 동생인 아들이 어느 새 뒤따
라 와서,
"호랑이님, 아버지나 누나를 해쳐서는 안 돼요. 대신 나를 잡아 먹으시
오"라고 애원하니 누나는 동생을 밀어 내면서,
"안 된다. 안돼!" 하고 서로 밀어 제쳤다.
그러자 호랑이 앞에서 정신을 차린 아버지가 아이들을 가로막더니,
"나는 어른이고 저 사람들은 어린 것이니, 해치지 말고 어서 나를 잡아
먹으시오"라고 했다. 그때 호랑이는 덥석 딸에게 달려들었다.
"우선 너부터 잡아 먹어야지. 어흥!"
그 순간 딸은 기절하다시피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니 꿈이었다.
아들도 깜짝 놀라 잠결에서 깨어나니 식은 땀을 흘리며 누나와 똑같은
꿈 이야기를 했다. 방 한 구석에는 면실유의 등잔불이 깜박 거리고, 바
가지 속엔 감자 네 개가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웬일인지 어머니가 보이
지 않았다. 남매는 벌떡일어나 뛰어 나아가니 어머니는 호랑이 앞에서
큰 절을 하며,
"호랑이님 부디 지아비 대신 나를 잡아먹고 지아비는 살려 주십시오"
산에는 달이 휘영청 밝은데 부엉이가 울고 있었다.
"나무 없어 부엉~, 쌀이 없어 부엉~"
그 때 산 꿩이 뇌까리는데,
"앞집에서 콩 한 되 뒷집에서 팥 한 되 그럭저럭 살자꾸나!"
이윽고 동이 틀 무렵 호랑이는, 새 하얀 머리와 하얀 수염을 길게 늘어
뜨린 산신령으로 변모하더니,
"너희들은 배가 고픈데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남매우애하고, 부부 화합
하니, 장차 너희 집안에 복을 내리겠노라"
하는 말을 남긴후에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호랑이 모습의 바윗돌만 여
명에 어른거렸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호랑이 바위라 불리었다. 기진맥
진한 아버지는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등잔불은 텅
빈 방을 지키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바가지 속에 있었던 감자 네
개는 간 곳이 없고 쌀이 그득히 담겨 있었다. 가족들은 산신령이 계시
한 말을 가슴 속에 간직하며 더욱 근면하고, 학업에 열심 하여 과거에
알성 급제를 하고, 자손도 불어나 영화를 누리며 살게 되었다.
- 류기수(전주시 완산구 전동 유산부인과 의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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