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적으로 재담을 구연(口演)하는 직업인은 재담꾼이다. 사람들에게 허리가 부러지도록 웃음을 선사하고 그들로부터 금전을 받는 직업이다. 이들의 존재는 여러 문헌에 조금씩 나타나다가 18세기 들어 제법 그 수효가 늘어난다. 그렇다면 조선 후기 재담꾼으로 한 사람을 들라면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우선 조수삼(趙秀三)의 '추재기이(秋齋紀異)'에는 ‘설낭’(說囊), 즉 이야기 주머니라는 별명으로 불린 김옹(金翁)이 등장한다.
“이야기 주머니 김옹은 고담을 잘하여 듣는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배꼽을 잡는다. 그는 한 대목 한 대목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면 핵심을 꼭꼭 찔러서 이러쿵저러쿵 잘도 말한다. 말하는 재간이 뛰어나 귀신이 도와주듯 민첩하다. 그래서 우스개 이야기(滑稽)하는 사람들 가운데 우두머리라 할 만하다. 그 심중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또 모두가 세상을 가볍게 보고 풍속을 경계하는 말이다.”
고담을 잘한 김옹의 특징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모든 사람이 포복절도할 만큼 익살이 넘치는 우스개 이야기를 잘했고, 이야기는 단순한 우스개에 머물지 않고 주제가 선명하고 풍자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재담 예술계의 우두머리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이야기 주머니’는 그런 솜씨를 상징하는 별명으로 당시 사람들이 김옹을 부르는 말이거나 아니면 조수삼이 김옹을 지칭한 말이다. 이야기 주머니는 재미있는 고담을 많이 아는 사람을 지칭하는 ‘이야기 보따리’와 거의 유사한 의미이리라.
김옹을 한 시대의 대표적 재담꾼으로 자리매김하려 한 조수삼의 태도를 짐작할 만하다. 그렇다면 그가 장기로 삼은 레퍼토리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조수삼이 쓴 시에 담겨 있다.
'지혜는 진주처럼 둥글둥글
어면순은 골계담의 으뜸이다.
꾀꼬리와 따오기는 소란스레 소송을 걸더니
황새란 벼슬아치 판결(決訟, 결송)은 지극히 공정도 하다'
정읍 무성서원에 배향된 송세림(송세림(宋世琳)·1479-?)의 「어면순(어면순(禦眠楯))」(문학세계사 펴냄)이 그중 하나. '어면순'이란 '밀려오는 잠을 막는 방패'라는 뜻으로, 이 책은 점잖지 못한 이야기를 모아 기록한 소화집(笑話集)이다.
시의 전반부는 의미가 분명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후반부는 꾀꼬리와 따오기와 황새가 등장하는 ‘황새결송’이란 이야기가 틀림없다.
‘황새결송’은 평이한 사건의 서술에 그치지 않고 웃음을 동반하는 묘사와 대화체가 흥미롭게 전개되어, 재담꾼의 사설이 소설로 정착되었음을 추정할 만하다.
한편, 이 이야기는 <삼설기>(三說記)란 단편소설집에 들어 있다. 한 시골 부자가 뇌물을 받은 형조 관리로 인해 패할 리가 없는 소송에서 지고 난 뒤 풍자적으로 해본 이야기다. 꾀꼬리와 뻐꾸기와 따오기가 목소리 자랑을 하다가 황새에게 우열을 부탁했다. 당연히 질 수밖에 없는 따오기가 미리 황새에게 뇌물을 주어 꽥 소리를 지르고서도 일등이 되었다. 새의 우열 다툼을 통해 뇌물로 송사의 승패가 정해진다는 당시 사법제도의 비리를 풍자했다.
18~19세기 왈자 패거리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무숙이타령’에는 봄날 흥겹게 노는 곳에 당대 최고의 대중예술가들이 등장한다.
“노래 명창 황사진이, 가사 명창 백운학이, 이야기 일수 외무릅이, 거짓말 일수 허재순이, 거문고의 어진창이, 일금 일수 장계랑이, 퉁소 일수 서계수며, 장고 일수 김창옥이, 젓대 일수 박보안이, 피리 일수 □(원본 확인 불가)오랑이, 해금 일수 홍일등이, 선소리의 송흥록이 모흥갑이 다 가 있구나.”
18세기 말엽부터 19세기 전반기에 활동한 각 분야의 명인들이 줄줄이 나온다. 모두가 실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송흥록·모흥갑이 판소리 명창으로 유명한 것을 비롯해 박보안을 비롯한 음악가는 당대의 각 악기 명인으로 유명하다. 그 가운데 재담꾼으로는 외무릅과 허재순이 등장한다. 외무릅은 이야기의 최고수로 끼어 있다.
익살을 섞어가며 재치 있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인 재담은 고담(古談) 또는 덕담(德談), 신소리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재담은 말재간이 좋은 사람이 흥미 삼아 말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문적 직업으로 하나의 공연예술로 정착돼 인기를 누렸다. 재담은 20세기 들어와서도 재담과 만담(漫談)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가 수십 년 전부터 개그나 코미디로 변신을 거듭했다. 직업적 대중예술로서 인기를 누린 재담은 한 사람이 대중 앞에 등장해 공연하거나, 고객의 초빙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 즐겁게 함으로써 대가를 받는 식이었다. 지금은 그 존재 의의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100년 전에는 매우 인기 있는 대중예술의 하나로 도시공간에서 흔하게 공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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