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종근의 행복산책

[이종근의 행복산책2]눈내린 길 함부로 걷지 마라

[이종근의 행복산책2]눈내린 길 함부로 걷지 마라

'눈내린 길 함부로 걷지 마라: 산운집(지은이 이양연, 출판 소명출판)'은 담백한 시어, 뛰어난 발상과 감각, 산운 이양연의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나의 발자국은 뒷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라"

이 시는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애송하면서 서산대사(1520-1604)의 선시(禪詩)로 알려져 있는데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집'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산운 이양연(李亮淵,1771-1853)의 시집인 '임연당별집'에 실려있고, 장지연이 1918년 편찬한 '대동시선'에도 이양연의 작품이라고 되어있다. 앞 시대의 '청허집'에는 없고 뒷세대의 '임연당별집'에 수록되었기 때문에 서산대사의 작품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기록의 중요함을 느낀다.

'답설(踏雪)’의 시가 아닌 ‘야설(野雪)’로 확인된 이 시는 서산대사나 김구 선생의 시로 알려져 있으나 와전된 것이다. 산운의 이 두 편의 시는 내용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다.

이양연은 조선 후기에 활약했던 뛰어난 시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진숙(晉叔)이며, 호는 임연재(臨淵齋)ㆍ산운(山雲)이다. 평생 변변찮은 벼슬에도 오르지 못하고 삶을 마감했다. 그의 시는 200여 편에 불과하지만 조선의 어떤 시인보다 우수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주로 5언 절구와 5언 고시에 특장을 보인다. 전고(典故)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 담백한 시어를 써서 뛰어난 발상과 감각으로 새로운 시세계를 구축했다.

전통적 한시의 자장(磁場)에서 벗어나 조선적인 한시를 구현했다는 데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양연의 시는 기본적으로 삶의 통찰에서 나온 비애와 우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조선적인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민요시와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날카로운 필치로 그려낸 민중시 등이 유명하다.

또, 유람을 즐겨했는데 역사적인 장소를 찾아 회고적이고 애상적인 기조로 그려냈다. 대중들에게는 서산대사의 시로 알려진 '야설(野雪)의 작가로 유명하다.

이 시를 읽으면 자세한 설명 없이도 깊은 울림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대표작인 이 시는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흰 눈이 천지를 뒤덮는 時點(시점)이 되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들판의 눈을 보면 제멋대로 달리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耳順(이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흰 눈밭을 보면 마음껏 달리다가 제멋대로 뒹굴고 싶은 것이 나만의 생각은 아닐 터이다

길이 있으면 가고 싶고 눈밭이 있으면 마음대로 달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거기에 도덕적 기준을 더하면 위와 같은 시가 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 서산대사의 선시로 잘못 알려진 한시​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덮인 들판을 밟아 갈때는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모름지기 오랑캐처럼 어지러이 가지 말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간 발자취는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마침내 뒷짓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


야설(野雪)​ - 이양연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눈을 뚫고 들판 길을 걸어가노니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어지럽게 함부로 걷지를 말자.
今朝我行跡(금조아행적) 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이 밟고 갈 길이 될 테니.


踏 --> 穿
​日 --> 朝
두글자만 다르다.​ 두글자가 바뀐 연유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의 전당시를 봐도 바뀐글자가 엄청 많다.
외워서 전해지던것을 문자로 기록하면서 바뀐것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