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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전두환과 3S정책

[새전북신문 온누리]전두환과 3S정책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별세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철권 통치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탄압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오자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분출했다. 그 해 5월 18일 비상계엄령을 확대해 김대중·김영삼 등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거나 연금했다. 국회도 폐쇄했다.

하지만 의료보험.산재보험의 적용 범위 확대 ,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및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유치 등을 추진, 전두환 정부의 공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5공화국 탄생과 함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이른바 ‘우민(愚民) 정책’으로 일컫는 전두환정권의 대표적인 ‘3S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3S는 스크린(screen) 스포츠(sport) 섹스(sex) 또는 스피드(speed)를 뜻한다.

당시 불안한 정치 문제로부터 국민의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 시행한 것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컬러TV 방송과 프로야구단 출범, 통금 해제 등이다.

컬러TV 방송을 중심으로한 스크린 정책은 국내 전자산업의 고도화 기반을 마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두환정권은 학생들이 거리에서, 공장에서, 농촌에서 국민들과 만나고 얘기하는 것을 막으려고 수배, 체포, 고문을 일삼았다. 동시에 그들은 민주화운동 세력과 국민의 연대, 곧 민주화운동의 확산을 막으려고 우민화 정책을 적극 추진해나갔다.

그 첫 시도인 ‘국풍 80’은 광주의 절규를 입막음하려는 졸렬한 처사였다. 이후 프로야구, 프로씨름이 시작됐고, 방송 영화 만화 음반 비디오 등 가용한 모든 매체를 동원해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그들이 군부독재정치에 무신경하게 만들려고 애썼다.

그러나 오늘 3S는 정보기술의 확산과 소비시장의 세계화에 따라 국가적 경쟁력, 최고의 상품성, 대중의 인기, 성공적 커리어 등을 상징하는 대명사들로 부상하고 있다. 잘나가는 운동선수, 연예인, 섹스산업 종사자의 몸값은 일반 봉급생활자들의 노동 가치를 무참하게 비웃는 수준이다.

이 시대는 단연 3S가 대중문화를 주도하는 사회를 예찬하고 있다. 그렇다면 군사독재의 터널을 빠져나온 오늘의 한국정치는 3S와 어떤 함수관계가 있는 것일까?/이종근

http://sjbnews.com/news/news.php?code=li_news&number=729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