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천(가난하고 천함)을 팔고자 하여 권세 있는 집안에 들어가니 덤 없는 흥정을 누가 먼저 하자고 하리. 강산과 풍월을 달라고 하니 그건 그렇게 못하리’ 청구영언과 해동가요엔 남원에서 삶을 영위한 조찬한(趙纘韓, 1572~1631)의 시조 ‘빈천을 팔랴 하고’가 소개된다. 빈천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얻는 부귀영화는 차라리 빈천만도 못한 것이다. 더욱이 이 시조의 작가와 같이 강산풍월을 벗하여 그 속에서 지락을 누리고 있는 사람의 눈에는, 권세니 부귀니 하는 것은 한푼어치의 가치도 없는 것일 것이다. 작가는 짐짓 빈천을 팔려고 권세가의 집을 찾았다고 하나, 권세가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가를 다시 확인하려는 심정에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자연 속에서 청복(淸福)을 누리고 있는 자기의 생활이 어떤 권세가의 생활보다도 더 행복하다는 것을 자신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강산풍월을 달라고 하니 펄쩍 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리 못하리"하고 손을 저으며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자연에 귀의하여 사는 즐거움을 풍자적으로 나타낸 시조이다.
하필이면 강산풍월과 바꾸자고 하는데, 그것만은 안되겠다. 빈천을 못 팔망정 강산풍월을 넘겨 줄 수는 없다. 강산풍월만은 돈이나 권세와도 바꿀 수가 없다. 옛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풍월주인'이라고 불렀다. 빈천과 부귀영화, 권문세가에서 빈천을 사려고 할 리가 없다. 그러나 강산풍월만은 그도 가지고 싶었던 모양이다. 빈천을 안고 살아도 강산풍월이면 된다는 사람, 요즘에는 별로 없겠지만 지난날의 우리 선인들은 그것을 낙으로 삼았다.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복 받은 풍토가 그렇게 시킨 모양이다. 조찬한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사납게 굴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잘 따랐으니 우아하지 않습니까. 얽어매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스스로 복종했으니 단정하지 않습니까. 자리를 맡았을 때는 직무에 충실하고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는 백성들을 생각했으니, 바탕과 겉멋이 잘 조화를 이루지 않습니까”
조찬한은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말한다. 거칠게 권력을 행사하지 않았음에도 일정한 통치 효과가 있었음을 찬탄한다. 실로, 권력은 권력자가 섣불리 권력을 휘두르는 순간부터 빛을 잃기 시작한다. 손에 권력이 있다고 해서 무례하게 굴면 조만간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을 날 것으로 과시하면 결국 훼손되기 마련인 것이 권력이다. 폭력조차도 폭력을 진짜 휘두르기 전에 가장 강하다.권력을 권력의 칼집에 넣어둘 수 있는 역량이 권위를 낳는다. 권력자가 자신을 낮출 때, 비로소 권위를 선물로 받는다. 권위는 권력의 가장 말랑말랑한 형태다. 권위는 권력자가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순간 발생한다. 소위 잠룡은 아슬아슬하게 잠수하고 있을 때 가장 매력적인 법이다. ‘칼은 칼집 속에 있을 때 힘이 더 강하다’ 요즘 대통령 선출을 위한 각당의 움직임이 빠른 요즘에 가져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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