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종근의 행복산책

[이종근의 행복산책] 원칙을 지키는 당신이 우리 얼굴

2015년 8월 7일 미국 식품 의약품(FDA) 소속 공무원인 프랜시스 올덤 켈시 박사의 사망 소식은 조용하지만 결코 조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캐나다 출신인 켈시 박사는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60년 FDA에서 신약 허가 신청서를 평가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은 이 사람은 1만 명이 넘는 기형아 출산을 막은 장본인이며,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무원 중 한명이다.
켈시 박사에게 FDA에서 처음으로 접수된 신청서는 “케바돈”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진정제 였다. 이 약은 유럽에서 수면 진정 효과가 있다는 허가를 받아 1957년부터 유통되고 있는 약이었다. 또한 임신부의 입덧 방지제로도 처방되는 약이기도 했다. 켈시 박사는 그러나 미국 제조사인 윌리엄 S 머렐사에 약품의 독성과 효과 등 추가 정보를 요구하며 신청서를 돌려보냈다. 머렐사는 정부 고위층을 총동원하면서 전방위 로비를 펼치며 켈시 박사를 압박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켈시 박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듬해 탈리도마이드가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다는 충적격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고 유통 중인 약품은 곧바로 회수됐다.
임산부의 탈리도마이드 복용으로 인해 그때까지 전 세계적으로 팔다리가 없거나 눈과 귀가 변형된 채로 태어난 기형아는 1만 2,000여 명에 달했다. 그러나 켈시 박사가 시판허가를 내주지 않은 미국에서 태어난 탈리도마이드 베이비는 17명에 그쳤다. 이 또한 머렐사가 허가 이전에 미국 의사들에게 연구 목적으로 나눠준 샘플로 인한 피해였다.
이후 켈시 박사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공무원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상을 받았다. 그 이후로도 켈시 박사는 계속 공무원의 길을 걸었다. 제약회사의 임원으로 가거나 로비스트로 일하는 일은 없었다. 90살까지 FDA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2005년 은퇴했다. FDA는 2010년 최우수 직원에게 주는 '켈시 어워드'를 제정해 그녀의 공로를 기렸다.
평범한 신입 공무원인 켈시 박사의 용기와 깐깐함 덕분에 미국은 기형아 대량 출산이라는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켈시는 “나는 그저 서류를 깔아뭉갠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고 겸양을 표할 뿐이었다. 새로운 조치는 없었지만, 승인을 거부한 것만으로도 그 행위에서 상식이 살아 있었다.
 만약이라는 상황 하에 켈시 박사가 한국에서 이와 같은 일을 했다면 어떠했을까를 상상해 본다. 거대 기업과 이권에 맞서 싸우며 그 비극을 막아낼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아마도 모두가 짐작하는 그것일 것이다. 물론 우리 모두의 바램은 한국에서도 그럴 수 있다 일 것이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끊임없는 절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조차도 다시 그 원칙을 일으켜 세우는 용기도 필요하다. 한순간의 실수로 원칙을 어긴 이후에라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최소한 타인을 무너뜨리는 행위에 대한 깊이 있는 반성과 책임 있는 행동을 기대하는 것이다. 기업의 이윤보다 생명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반대인 경우가 존재한다. 최근들너 다시 국가적 차원의 문제가 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 만약 누군가가 켈시 박사처럼 용기 있는 행동을 해주었다면, 그 만약 누군가가 내가 된다면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생명을 허무하게 잃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오늘도 자기 일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해내고 있는 그런 당신이 바로 진정한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