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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이종근의 행복산책2] 작은 벼루의 고마움

 

소연명(小硯銘)

 

이규보

 

! 벼루여! 벼루여!

 

그대가 작지마는 그것이 그대의 부끄러움은 아니네.

 

그대가 비록 한 치 정도밖에 안 되는 웅덩이지만

 

그대는 나의 무궁무진無窮無盡한 뜻을 쓰게 했네.

(사실 고백하건대 그대에 비해)

나는 비록 키가 여섯 자나 되지만

나의 모든 일은 그대를 빌어서 이루어졌네.

 

! 벼루여!

나와 그대는 사는 것도 죽는 것조차도

함께 할 운명이네.

 

(연호연호 硯乎硯乎

 

이마비이지치 爾麼非爾之恥

 

이수일촌와 爾雖一寸窪

 

사아무진의 寫我無盡意.

 

오수육척장 吾雖六尺長

 

사업차여수 事業借汝遂

 

연호오여동귀硯乎吾與同歸

생유시사유시生由是死由是)

 

이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19에 나옵니다.

 

벼루와 붓의 도움을 받아 쓴 글로 일생을 풍미한 이규보가 만년에는 신하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지위인 상국(相國)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마운 이웃이 어디 벼루나 붓(을 만든 분 포함)뿐이겠습니까?

고마운 이웃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 하루 세끼 식사 때마다

먼저 음식이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의 고마움부터 간절히 새기노라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에 대해 온몸으로 고마워하는 동시에

제때 서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때가 반드시 오겠지요.(댓글에서 발췌)

 

하지만 세상사, 좀처럼 오지 않는 행운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버려지면 돌(捨則石)

사용하면 그릇(用則器)'

 

이는 권필의 '석주집(石洲集)'

에 나오는 '고석당명(古石鐺銘)'입니다.

 

버리면 돌, 쓰면 그릇이라고 한 바,

나는 돌인가요, 그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