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는 옷감이나 헝겊 따위에 색색의 실로 글과 무늬를 수놓아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자수는 옷과 가구는 물론 향갑처럼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소품까지 다양한 영역을 디자인하고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수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 짓는데,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통자수와 유럽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유럽자수이다. 최근 기계화로 양산되는 자수생품에서 자수 본질의 아름다움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수작가들이 수놓은 작품은 자수가 품은 아름다움에 대한 본질을 여과 없이 투영한다. 동양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조미진 전통자수 명장이 국립민속박물관 소식지 ‘민속소식’ 263호에 소개됐다.
△‘전통자수’는 무엇인가?
전통자수는 크게 궁중·민가·불교자수로 나뉩니다. 궁중에서는 계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문양과 색을지정할 만큼 자수를 엄격하게 관리했습니다. 또 오방색을 곁들여 수에 의미를 부여하였는데요. 선악과 시비를 정확하게 구별하라는 뜻으로 대사헌의 흉배에 해치(獬)를 새긴 것도 이 때문이죠. 이와 반대로 민가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수를 두었습니다.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식물이 자주 수놓였죠. 손길이 닿는 곳곳에 염원을 담아 문양을 새긴 것들이 많았습니다. 수를 놓을 때 사용하는 실로는 명주실을 꼬아 만든 꼰사, 금사 등이 있는데요. 주로 꼰사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자수에 대한 나만의 생각은?
수를 놓는다는 것은 마음의 안식처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나 수를 놓을 때면 행복하거든요. 제가 느끼는 이 행복을 다른 이들도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전통자수를 지키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현대화시켜서 더욱 발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대중에게전통자수는 사라져가는 전통 중 하나입니다. 저 역시도 제가 전통자수를 잇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젊은 청년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전통자수의 현대화도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나?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전통자수를 익히면서 섬유공예, 산업디자인, 목공예 등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다양한 것들을 배우며 예술적인 식견을 넓혔죠. 그러면서 전통자수에 현대적인 스타일을 가미해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초를 이용해 염색하는 바틱기법을 활용, 섬유를 염색하고, 그 위에 전통 자수를 접목시켜 회화적 요소와 전통 자수를 결합하고 있습니다. 또 줌치기법을 활용, 한지를 여러 겹 겹쳐 가죽처럼 단단하게 만든 후 그 위에 수를 놓아 가방의 형태로 변환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를 펼치고 있어요.
△본인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
3년 전쯤 몸이 아파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길상도(吉祥圖) 8폭 병풍을 만들었습니다. 손발톱이 다 빠지는 정도의 고통 속에서도 바늘만 잡으면 아픔이 가시던 순간은 잊히지 않네요. 그래서 인지 그 작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또 몸이 아픈 상황에서 작업했던 화접도(花蝶圖) 역시 잊지 못하는 작품 중 하나에요. 이 작품은 지난 4월 마무리한 여섯번째 개인전에서도 전시되었던 작품인데요. 아픈 상황에서 저와 딸을 상징하는 꽃을 수놓고 그 주변에 나비를 하나하나 채워갔습니다. 개인전 이후 마음 좋은 분이 가져가시기로 해서 저 역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작품을 수놓을 때, 어떤 색을 가장 많이 쓰나?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색은 흰색이에요. 기본적으로 전통자수는 꽃과 나비, 풀 등을 많이 수놓아 연한 색채의 실들이 많이 들어가요. 이런 색들은 도화지 위로 펼쳐두고 다음 색을 가미하기도 쉽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생(生)과 사(死)를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흰색이 특별하게 다가와요. 단청에 오방색을 입히기 전에는 흑과 백색만으로 모든 경계를 구분하다고 해요. 그 말을 들으니 삶과 죽음이 연상되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는 흑과 백색만으로 자수를 놓아보고 싶습니다
△첫 수를 두기 시작한 사람에게 조언한다면?
전통을 흉내내는 사람들은 생겨나는데, 예술로서 전통을 잇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수와 같은 공예는 몸에 익혀야 보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습관이 가장 중요해요. 그래서 전통공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초가 꼼꼼하고 전통에 대해 세세히 알려줄 수 있는 스승을 만나 수의 기초가 되는 실과 원단 관리법부터 익혀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런 분들은 차근히 하나씩 전달해주기 때문에 동시간에 시작한 사람보다 더딘 속도에 답답하게 느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면 수를 배운 누구보다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조미진 명장은
전국기능경기대회 등 그동안 100 여회가 넘는 단체전과 많은 상을 받았다. 백제예술대에서 섬유공예, 호원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자수와 인연이 되면서 30년 가까이 한 길을 걸어왔다. 2019년 대한민국 전통자수 명장으로 선정됐다. 지난 4월엔 여섯 번째 개인전 ‘바늘로 그린 그림’을 마쳤다. 전북대 예술대학원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하고 있으며, 전주한옥마을 향교길68의 대표를 맡고 있다. 한편 이달 25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이동갤러리 꽃심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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