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수원지방법원 판사로 첫 부임한 김동현 판사는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한 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12년 5월 의료사고로 시력을 잃었습니다.
2015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서울고법 재판연구원으로 2년간 근무하고,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에서 변호사로 3년간 일한 경력으로 지난해 10월 신임 법관에 임용됐습니다.
공부를 해나갈 수 있는 힘에는 국내 1호 시각장애인 판사 최영 판사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는 경기도교육청 '꿈의 대학' 화상강의 앞에 서기도 했습니다.
“제가 눈이 안 보인다고 포기했다면 이 자리에서 말을 하는 것도 없었을 거예요.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그대로 있는 것이고, 누구나 그 자리에서 방법을 찾고 잘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기회를 잡아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같은 메시지를 고등학생들에게 전했습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모험은
바로 여러분이 꿈꾸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The biggest adventure you can take is
to live the life of your dreams)'
이 명언을 남긴 오프라 윈프리는 미시시피주에 있는 작은 시골에서 사생아로 태어나게 됩니다.
어릴적 어머니에게까지 버려지고 할머니와 같이 자랐습니다.
9살때는 사촌오빠로 부터 성폭행을 받았고, 이후 14살에 미혼모가 됩니다.
심지어 낳은 자신의 아이가 2주만에 죽는 등 어린 시절을 아주 힘들게 보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후 방송사에 일거리를 얻게 되어 19살에 지역 뉴스케스터로 일하게 됩니다.
이후 시카고에서 가장 시청률이 낮은 토크쇼를 맡게됩니다. 즉흥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그녀의 방식으로 시카고에서 가장 유명한 방송이 되었습니다.
그런뒤 그녀는 "하포"라는 자신의 회사를 차린뒤 지금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오프라 윈프리쇼"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오프라 윈프리는 세계에서 유일한 흑인 억만 장자라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Turn your wounds into wisdom.
(너의 상처를 지혜로 만들어라)
Where there is no struggle, there is no strength.(어려움이 없는 곳엔는 힘도 없다)
누군가는 이들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그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몸은 이전보다 불편해졌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아끼는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달았고,장애인이 된 자신의 공부를 대가 없이 도와주는 진정한 친구들을 얻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할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굳은 의지로 꿈을 이뤄낸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힘찬 박수를 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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