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서양화가 박남재화백이 11일 별세했다. 향년 91세.그는 ‘대담한 원색의 붓질로 자연의 강렬한 리얼리티를 포착해 독창적인 색감과 표현력으로 구상화의 길을 개척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지리산, 강천산 등을 답사하면서 그려낸 풍경들은 풋풋한 흙내음과 건조한 공기, 맑고 쨍한 하늘, 흙벽과 밭고랑, 그리고 잡목들의 산뜻한 대비 속에 섬세함과 세련미가 융숭한 까닭에 농익은 창작혼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전주 중인동의 아리따운 복숭아꽃, 가을 정취를 물씬 풍겨주는 대둔산 계곡, 은백의 설원이 펼쳐진 운장산의 겨울, 변화무쌍한 노을 등 한국의 사계가 이처럼 화면을 압도한다. 때문에 작가의 캔버스엔 우리네 산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되,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일출의 휘황, 낙조의 애수, 사계의 질서가 한데 어우러지고 전진과 후퇴, 영예와 치욕, 환희와 비애의 이야기들이 도란도란 밀어를 속삭인다. 네모 난 캔버스에 일렁이는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넘쳐나는 작가의 청정 도량이요, 마음의 텃밭이다. 꿈을 담는 든든한 그림 수레에 다름 아니다. 가슴에 일체를 어우르는 맑을 사, 코발트빛 하늘 한 점 한 점을 들여 놓기 위한 살붙이와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그려왔다.대표작으로 '금산사', '광한루 춘향 기념관(9점)', ‘붉은 월출산’ ‘용진 하늘’ 등 작품이 있다.박화백은 그 동안 전주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다 70여 년 만에 고향인 순창으로 최근 귀향했다. 순창 ‘섬진강미술관’ 명예관장을 맡으면서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1929년 순창읍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4학년까지 고향에 살다 서울로 전학을 갔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들어갔지만 입학 몇 달 만에 한국전쟁이 나면서 학업을 중도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빨치산 대장 이현상이 이끄는 남부군에 들어가 1년간 회문산과 지리산ㆍ운장산 등지에서 활동했다. 국군에 붙잡혀 끌려간 광주포로수용소에서 서양화가 오지호 화백을 만난 인연도 그렇고 그림이 운명이었던 같다.오화백의 지도로 조선대 미술학과를 졸업했고 전주여고ㆍ전주고 등에서 교편 생활을 하다가 원광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미대 학장을 지냈다.1998년에 퇴임, 목우회 최고상, 전북 문화상, 목정문화상, 오지호미술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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