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달에 보관문화훈장받은 유휴열 한국미술협회 고문 “어제의 삶이 현재 나의 모습이고, 오늘의 삶이 미래의 나의 그림이다”
유휴열(71) 한국미술협회 고문이 전북 미술문화 발전 중심 역할을 인정받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문화체육부 주관으로 19일 오후 2시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 ‘2020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 시상식에서 유고문은 미술관 설립과 청년미술상 제정 등으로 지역 미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그는 전북 지역의 예술인들과 일반인들이 어울려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는 문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했다. 특히 유휴열 미술관 개관 공유화, 전북청년미술상 제정(1990), 10회의 수상자를 배출한 가운데 대표작 〈생, 놀이〉 연작, 〈추어나 푸돗던고〉 등을 창작한 바, 그 공이 인정돼 훈장을 받았다.
△우선, 소감을 한마디 하면
“색은 하루 종일 나를 집착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듭니다.클로드 모네의 '워털루 다리'는 원색에 색들이 섞이지 않고 신비한 빛을 화폭에 담은 채 시선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모네는 안개 낀 런던의 장면들을 매우 인상 깊게 그려냈습니다. 그는 “날마다 런던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는 구나”라고 블랑슈에게 편지를 쓸 만큼, 런던의 풍경에 매료됐습니다. '워털루 다리'는 안개 낀 도시에 옅은 붉은 색을 물들이고 있는 흐릿한 풍경이 담겨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이른 아침의 뿌연 색조이지만 자세히 보면 붓질 하나하나마다 섞이지 않은 원색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서 시각적으로 혼합되는 인상파의 전형적인 작품 경향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가 남긴 명언은 '색은 하루 종일 나를 집착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50여 년 동안을 색과 함께 살아오던 중, 훈장을 받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제가 한 것에 비해 상이 크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상의 무게만큼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문화 훈장을 받았나
문화훈장은 후보자의 작품 그 자체 평가보다는 평생을 통한 지금까지 공로나 업적에 대한 심사한다고 들었습니다. 보관문화훈장(3등급)은 공적기간 20년 이상, 해당분야의 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자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저에겐 큰 광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해 유휴열미술관을 만들었다는데
산이 높아 숲은 무성하고 마을은 밝다. 피고 지는 꽃이나 명멸하는 별, 그 덧없는 것들을 벗 삼아 지내기 좋은 곳이다. 완주군 구이면 신전마을(신뱅이골) 입구엔 ‘예술인 마을’이라 쓴 팻말이 있습니다. 아늑한 자연 환경에 이끌린 몇몇 예술인들이 들어와 사는 마을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33년을 붙박이 장롱처럼 눌러 살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1994년 작업실 옆에 ‘문화공간 모악재’라 이름 지은 갤러리를 지은 이래 지역의 예술인들과 일반인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문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에 나름대로 힘써왔습니다. 그러나 이보단 미술 작품을 공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에 지난 4월 ‘사단법인 모악재’를 만들고 미술관 명칭을 ‘유휴열 미술관’으로 변경한 후, 그가 생활하고 작업하는 모든 공간을 오픈했습니다. 그렇게 그림을 사랑하고 휴식과 위로가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쉴 수 있는 장소로 재정비해 공유화시켰습니다. 모악산 치맛자락에 안긴 미술관에 오셔서 담소를 나누고 가기 바랍니다. 미술관은 수장고, 갤러리, 카페, 야외전시장 등으로 구성됐습니다. 작가의 유화, 조각, 드로잉 등 작품 5,000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갤러리와 더불어 카페에도 작가의 전시물들이 전시돼있습니다.
△후배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1990년대 만든 ‘전북청년미술상’은 당시 ‘전북지역의 청년작가들에게 주는 유일한 상’이었습니다. 미술관이 다시 문을 열면서 유휴열 작가가 지역 청년작가 활성화를 위해 ‘전북청년미술상’을 복원할까합니다. 이 상은 임택준(서양화), 강용면(조각), 이반(설치미술), 유경상(도예), 고 지용출(판화), 이철규(한국화), 홍선기(서양화), 차유림(서양화), 고보연(설치미술), 이정웅(서양화) 등 10회에 걸쳐 수상자를 냈었습니다. ‘전북청년미술상’ 복원은 전북 미술계 원로 작가와 중견 작가들이 뜻을 하나로 모아 전북미술을 이끌 청년작가들을 발굴할 계획입니다. 더러는 후배들의 전시장을 찾아 소품을 구입하기도 하며,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소개한다면
모악산 밑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저는 ‘생.놀이 춤’, ‘생.놀이 사랑’ 등 작품마다 인생사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는 ‘생.놀이’시리즈는 물질문명에 시들어 가는 자연과 그로 인해 황폐해지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회복시키는 작업에 다름 아닙니다. 잘못 그려진 비현실적인 형태, 일그러진 포름, 내키는대로 그어진 선, 붓자국, 효과 없이 칠해진 색채들을 소중히 추스르는 것은 삶의 행,불행의 틀을 부셔버릴 때, 훨씬 자유로워지듯이 규격화된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 자연적 생명에 그만큼 더 접근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생. 놀이’ 연작과 ‘달따는 소녀’ 등 아주 키 작은 그림들이 깊어만 가는 가을날의 풍경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추어나 푸돗던고’ 시리즈도 눈길을 끌게 합니다.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할샤/ 닐러라 못닐러 불러나 푸돗던가/ 진실로 풀리거시면은 나도 불러보리라(노래 만든이 근심걱정 얼마나 많았길래/ 말로는 풀 수 없어 노래 불러 풀었던가/ 정말 노래 불러 풀 수 있다면 나도 불러보리라)’ 이는 신흠의 시조입니다. 조각과 평면으로 작업한 ‘추어나 푸돗던고’ 시리즈는 춤추는 사람들의 너울너울 넘어가는 춤사위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습니다. 불러나 푸돗던고. 추어나 푸돗던고. 얼씨구나! 절씨구나! 지화자! 저는 노래로 시름을 풀고, 춤으로 한을 달랩니다. 우리나라 민초들의 신명과 정한이 담긴 판소리와 오장육부를 긁어대는 농악 가락에 저는 종종 마음을 빼앗기곤합니다. 진양조에서 시작해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로 이어지는 우리 가락에 붓질의 호흡을 얹었습니다. 바로 그런 삶이라면 참 좋겠습니다. 저마다 인생이라는 놀이공원에 있는 동안 다들 잘 놀다가 갔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루 일과는
저는 아침 5시에 일어나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골프연습장에서 운동을 하고, 9시경부터 11시 반, 그리고 오후 1시반부터 오후5시반까지 작업실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7월 28일부터 지난 4일까지 ‘유휴열-산∙나무∙꽃’전을 가졌습니다. 1994년 ‘문화공간 모악재’로 시작하여 2020년 4월 ‘유휴열 미술관’으로 재개관 후 유휴열 미술관이 선보인 두 번째 기획 전시였습니다. 이는 날마다 바라보며 걷고 숨 쉬는 산과 나무들과 꽃들을 그린 전시였니다. 친근한 나무와 꽃들이 장마와 더위에 코코나로 지친 여름날을 싱그럽게 해주길 기대했습니다. 개관전이 이루어진 3개월 동안 많은 분들이 미술관에 다녀가면서, 미술관이 멀게만 느껴지고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공간으로 여겨왔던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그림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린 것 같아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이 전시는 유휴열미술관 정원에서 볼 수 있는 산, 나무, 꽃들을 모티브로 한 유화 작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미술관 뒤편에 자리잡은 모악산을 그린 작품과 야외 전시장 곳곳에 꽃피기 시작한 배롱나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모악산 아래 유휴열미술관 정원에서 배롱나 꽃을 그리고 실내 전시장에서 모악산과 배롱나무를 그림을 통해서 만나게 된다면 좀 더 색다른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연, 그리고 그림 속 모악산과 배롱나무 그늘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면서 유익한 시간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일이나 외출을 하지 않는 경우, 작업실에 머뭅니다.
△앞으로의 계획 있다면
지나온 날처럼 오늘도 열심히 작업하고 그러다보면 내일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제의 삶이 오늘의 저의 모습이고, 오늘의 삶이 내일의 저를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묵묵히 작업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고 우리 모두 삶이 완성되는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 없이 소중한 오늘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결국, 어제의 삶이 현재 나의 모습이고 오늘의 삶이 미래의 나의 그림이 아닐까요.
△유휴열 고문이 걸어온 길
작가는 1949년 정읍 출신으로 전주대 미술교육과와 홍익대 미술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벨기에 국제회화전 특별상, 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 작가상, 서울 국제 아트페어 대상, 목정문화상, 전북대상, 한국작가상, 전라북도 예술대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 ‘생·놀이’ 연작, ‘추어나 푸돗던고’ 등이 있다. 국립예술의 전당, 뉴욕 그리니치 하우스, 오사카 현대 미술관, 전북예술회관, 서울 인사아트센터, 서울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500여회의 단체 및 초대전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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