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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깃발과 바람

지금 나를 움직이는 것은 깃발인가, 바람인가.

 영화 '달콤한 인생' 오프닝 대사가 생각난다. 혜능이 나서서 말하기를,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요,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여러 스님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늘처럼 바람이 부는 날엔 더욱 더 당신이 그립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함께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바람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뇨.(유치환의 '그리움' )'

정호승시인은 해설을 통해 '생명의 시인'이라 불리는 유치환의 생명의 언어가 사랑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시에서 ‘깃발’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먼 바다를 향해 처절하도록 줄기차게 나부끼는 모습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을 추구하는 화자의 몸짓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을 인식하면서도 이상을 향해 동경의 끈을 놓지 않는 깃발을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성과 모순성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서정주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이 시는 화자인 춘향의 말을 통해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노래한 작품으로, 그네 타는 행위를 지상적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고뇌의 상징적 표현으로 형상화하고 있다”고 했다.
혜능대사가 광주 법성사에서 ‘열반경’ 강의를 들을 때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걸 놓고 스님들이 논쟁을 벌였다. 한 스님은 바람이, 다른 스님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계도 받지 않은 혜능대사가 일갈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너희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혜능육조단경'은 ‘사물에 대한 상념 타파’, ‘사물에 대한 집착 놓기’, ‘타인과 나의 분별을 없애라’ 등 육조 혜능대사의 선 수행법과 사상을 오롯이 담겨 있다. 그 내용은 간단하고 담백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이를 읽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오늘은 한해를 마지막 보내는 12월 첫날이다. 거리엔 벌써 새해를 파는 달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쉬운 순간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일들도 많았지만 후회 없는 내일을 맞기 위해 마지막 남은 한달 동안 지난날을 반성하면서 한해를 정리할 때다. 지금 나의 마음은 무엇에 흔들리고 있나./이종근(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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