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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새통

이종근 전주인문기행1~2권 (보도자료)

 

 

다큐멘터리 작가 이종근(56)29~30번째 저서 <전주인문기행 1~2>(신아출판사)가 발행한다.

전주시의 국가 관광거점도시 선정 기념으로 펴낸 이 책은 전주 최초의 본격적인 인문학 서적이다.

책자는 전주 음식, 예술, 기록, 인물, 역사와 생활, 문화유산 등으로 구분된다. 민속은 물론 풍수, 지리, 역사, 문화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전주를 관조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저자는 자료를 찾고 한문 공부를 하는 등 이 책을 내는데 30여년이 걸렸다면서 “99% 내용 거의 모두가 연구하고 답사를 하면서 인터뷰를 통한 것들로 생소한 게 많을 것 같다고 했다.

 

첫째, 다가공원 화장실 옆 비석군이 언제부터 사라지더니 이제는 달3개만 남았다. 나머지 비석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작가는 66년만에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했다.

 

전주시가 전라감영 동편부지 복원을 마무리하고, 서편 부지는 올해 안에 광장 형태로 조성한다. 당초 전라감영의 정문은 포정루(布政樓)였다. 전주의 중심도시 팔달로 역시 사통팔달이라는 보편적인 의미와 함께 전라감영의 출입문이었던 이 포정루에서 기인한다. 1909년 무렵, 2층 누각 건물이 팔달문이며 그 앞에는 32개의 선정비가 있었다고 한다.

경찰국은 전주 시내 곳곳에 주인없이 넘어지고 파묻힌 비석을 다가산 밑 제방 위로 옮겨 정돈식을 거행, 커다란 비석군을 이뤘다. 1954425일 안진길(安晉吉) 전주시장(6~7) 때 다가공원으로 옮긴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는 후문이다. 때문에 66년 만에 원래의 자리가 있던 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한편 김인전 목사 기념비(서은선 짓고 권갑석 쓰다,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관리번호 52-1-32)와 배은희 목사기념비(조영진 짓고 권갑석 쓰다)가 지역 사회에 끼친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86429일 다가공원 입구에 세워졌다. 20151222일 체계적인 시설 관리와 우리나라에 남긴 덕을 기념하고자 하는 설립 취지를 보전하기 위해 전북동부보훈지청, 전주시청 등과 합의, 현 전주 서문교회 내 종탑 옆으로 나란히 이전했다. 그렇게 해서 현재 전라감영에 27, 서문교회 종탑 옆에 2개 등 29개의 비가 자리하고 있다. 다가공원 원래의 자리엔 3개의 비석이 이번에 자리를 옮기지 못한채 아쉬운 듯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둘째, 작가는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과일로는 전주의 승도(僧桃)’가 첫번째라고 했다고 했다.

 

승도(僧桃)’는 털이 없어 스님의 머리처럼 껍질이 반질반질한 복숭아를 말하는 것 같다. 지금의 천도와 같이 과피에 털이 없는 계통을 일컫는 것으로 신두복숭아로도 불리워지며 전주가 명산지로 기록되어 있다. 허균의 도문대작' 전주(全州) 부근은 모두 승도가 난다. 크고 달다(全州一境皆僧桃大而味甘)‘고 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는 승도를 털없는 복숭아(僧桃無毛者)’로 보았다. 이민성(1570-1629)'경정선생집(敬亭先生集)' 가운데 작품 승도(僧桃)’범상치 않은 과일(果中惹此非凡果)’로 보고 있다.

전주 복숭아는 1910년대 일본인들이 현 완산구청 일대에서 처음 재배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백도 등 신품종이 보급된 이후 급속히 확산돼 1970년대에는 재배 면적이 600를 넘어서는 등 근대 복숭아 품종 개량의 시발지이자 국내 최대 복숭아 집산지로 자리했다.

 

셋째, 전주 한옥마을의 편액을 자세히 살펴보면 소년 명필의 경연장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한벽청연(寒碧晴煙)’완산8의 하나로 수려한 풍광으로 이름나 수많은 선비들이 찾았던 전주 한벽당의 경치를 이름한다. 한벽당 누각 안쪽 편액은 김예산(金禮山)의 친필로 9세에 썼다는 의섬김예산구세근서(義城金禮山九歲謹書)’의 낙관이 있다. 부안군 주산면 예동마을의 김일재(金日載)는 아들 예산(禮山)과 석천(石川)을 위해 김제의 유학자 유재(裕齋) 송기면(宋基冕, 18821956)선생의 집에서 4개월 여 동안 기숙하며 서예를 연마케 했다고 한다. 개암사의 요사채로 쓰는 월성대 능가산(楞伽山) 편액은 김석천구세서(金石川九歲書)’, 개암사(開巖寺) 편액은 김예산팔세서(金禮山八歲書)’라는 낙관이 있다.

전주 최씨종대 화수각(花樹閣) 편액은 근원(槿園) 구철우(具哲祐:1904~l989)의 작품이다. 그는 전남 화순군 한천면에서 출생한 부잣집 외아들로 여덟 살 무렵에 이미 소년 명필로 알려졌다. 천주교 전동교회(오른편)와 전주 성심유치원(왼편)이란 글씨는 중견 서예가 백담(百潭) 백종희(한국서예교류협회 회장)씨가 1985년 해성중학교 3학년에 다닐 때 쓴 것이다. 작가는 성심유치원이라는 의미에도 담겨있듯 성심(聖心)’을 다해, 아니 성심(誠心)’을 다해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문패가 들어서면서 내용이 달라진 가운데 그의 글이 떨어지지 않아 바로 아래에 묻혀버렸다고 하니 참으로 아쉽다. 전주 한옥마을의 스토리가 하나가 사라져 아쉽기만 하다.

 

넷째, 전주 송천동의 오송(五松, 다섯 소나무) 유래도 밝혔다.

 

전주 송천동 오송지(五松池)를 상징하는 소나무 5그루를 심는 행사가 2018618일 오송저수지에서 열렸다. 오송리라는 지명은 큰 소나무 5그루가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전주 삼천동 대명의사(大明義士) 남이창(南以昌, ~1665) 묘비의 서자는 미상이지만 찬자(撰者, 지은이)는 유학자 이도형으로 19675월에 세워졌다. 그는 병자호란 때 전주로 내려와 건지산 아래에 손수 소나무 다섯그루를 심어 집 이름을 오송재(五松齋)라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오송(五松)으로 부르기 시작해 지금까지 그 명칭이 남아있다.

 

다섯째, 효산 이광열과 신석정시인의 예술혼이 엿보이는 '다가산방' 편액을 찾았다.

 

작가는 신석정시인이 1960년 이름을 지어준 다가산방 편액에 효산 이광열 붓글씨를 더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시인이 1963년 가을 손수 '송다가산방(頌多佳山房)’ 시를 지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확인했다. ‘다가산방(多佳山房)' 편액은 효산(曉山) 이광열(18851966)의 말년의 예서체 작품으로 1960년 음력 7월 상순에 만들었으며, 전주 서쪽의 다가산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현재 이 작품은 전주에서 기린산방을 운영하고 있는 배첩장(전북 62) 변경환씨가 갖고 있다.

 

앞부분엔 경자(庚子)’년으로 돼 있는 바 편액을 만든 것은 지일경자(之日庚子) 조추(肇秋) 상한(上澣)’으로 읽어지는 바 1960년이다. 뒷부분 한문을 번역해보니 전주의 서쪽 다가산 아래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대나무를 꺾어 물고기를 낚는 즐거움이 있었다. 주인이 은자(隱者)를 즐거워했을 따름이지 이름을 남기기 위함이 아니었다고 나온다.(全州之西看多佳山其下淸流採茹釣鮮爲起居之樂主人隱者不欲名爲 曉山幷題)

 

신석정은 아래 시를 1963년에 손수 지었다.

 

송다가산방(頌多佳山房)

 

다가산방 자린 비록 시정市井이어도

고려 이조에 묻혀 사는 그 뜻을

뉘라서 아는 이 있어 찾아와서 즐기리.

 

청자 파릇한 무늬 상감象嵌 한결 산드랍고

백자 무뚝뚝한 듯 아련히 두른 선이 곱다

추사秋史의 남긴 먹내음 더욱 향기로워라.

 

소연한 세상이사 석파난병石坡蘭屛으로 멀리하고

심전心田 월전月田 묵로墨鷺 운보雲甫 한자리 앉아

연연한 선과 빛깔로 주고받는 이야기 듣다.(1963. 초가을)’

 

1960년대 전주 '다가산방'은 표구점의 이름으로 서울소바 자리에 있었다.

이종근은 우리 동네 꽃담(2008), 한국의 옛집과 꽃담(한국간행물운리위원회 이 달의 읽을만한 책 선정, 2010), 이 땅의 다리 산책(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 달의 읽을만한 책 선정, 2015), 한국의 다리 풍경(2016), 한국의 미 꽃문(2018), 한국의 꽃살문(2019), 전주 한옥마을 다시보기2(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세종도서 교양부문선정, 2019), 인문학으로 만나는 음식문화1~2(2020)30권의 책을 펴냈다.

현재 2030 전주 문화비전 수립 자문위원, 전주 문화특별시 시민연구모임 멤버, 한국서예교류협회 홍보 및 기획 이사, 전북수필문학회 이사, 전주문화원 연구위원, 전주문화재단 문화와 비평 편집위원, 전주 지우갤러리 운영위원, 새전북신문 문화교육부 부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가칭)이종근의 '전주인문기행 목차(전부)'

 

전주 음식

 

전주 복숭아승도

조선상식문답 속 전주

임실 쥐눈이콩과 전주콩나물국밥

전주 백산자

전주 가맥

전주 즙장

고들빼기김치

비사벌 초사

옴팡집

속담 속 전북 음식

미나리

오모가리탕

천렵과 회안대군

전주(봉동)생강 상인과 올공쇠

새로 찾은 전주비빔밥의 유래

전주 엿

이규보의 몽험기와 제신문(祭神文)

별건곤과 풍토유람

조삼난 만마관에서 술장사를 하다

돼지고기를 먹지 많은 전주부윤 윤효손

경기전 어정(御井)과 제례 음식

조지 클레이턴 포크가 1884년 맛본 전주 밥상

전주는 왜 콩나물국밥이 유명할까

관아의 주방에 판 메추라기

동학이 생각나는 황포묵

혼돈반과 골동반

임실 팥칼국수와 전주 소바, 그리고 국수

한옥마을 주변의 맛집들

마티 잉골드의 젓가락 사용과 달가워하지 않은 고추

전주역사박물관 한글음식 방문 알고보니

이사철, 병든 아버지를 위해 편육을 드시게 하다

이하곤의 두타초에 나타난 18세기 전주

 

전주 예술

 

소년 명필

전주 검무

비파 명인 송경운

소병진과 전주장(全州欌)

잊혀져 가는 전주의 노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

잊혀진 이름 석당 고재봉

이응로와 개척사

기생 한섬과 양대운

대사습놀이전국대회와 동지

가재미골과 부채

경기전 용매와 한벽당 심매경

김치현과 이승갑

지우산

()

전주 한옥마을의 느린 편지

허산옥과 행원

()’다방

천은사와 이삼만

명창 김옥진

합죽선의 유래

고하 최승범

낙화(烙畵)의 고장 전주

다가정의 모흥갑과 주덕기

통영장과 전주장

전주로부터 비롯된 한문 홍길동전 노혁전

기생 금개와 전주도

전라감영 선자청

완산8경이 나오는 춘향가

이병희가 쓴 한벽당 행서 편액

민주현의 완산가

김창조

 

전주 기록

 

금강전과 완산지

희현당

책방

전주 배첩장

완판본 열녀춘향가

포쇄

경기전의와 전주 배첩(褙貼)

교지

경기전과 배첩

다가산방

전주와 조선왕조실록

 

전주 인물

 

옛 사람의 이름, 전주의 길에서 만나다

김용진과 마전교

박인규의 구강재

간납대

박정근과 박병선

이서구와 전주

대한계년사를 저술한 정교

황녀 이문용

거두리 이보한

장성 백비(白碑)와 이상진 회화나무

가인로

서귀유고

홍성대 이사장

조선시대 최고의 절친이상진과 전동흘

기인 삭낭자

엄복동과 전주

격구와 이성계

백인당

방애인

자이열재

이성계의 고향이 함북 영흥이 된 까닭

태조 이성계가 남원 황산대첩에서 탄 애마 '유린청(游麟靑)'

전주 기생 막동과 함부림

천양정

 

전주 역사와 생활

 

꽃보다 아름다운 전주 최부잣집의 꽃담

떡전거리와 전주 고속버스터미널

1872년 봄날, 전주지도에 보이는 오얏

교동(校洞)과 교동(橋動)

숲정이

자만동

호남 삼절(湖南 三絶)

미원탑

동락원

고물자골목

인봉제

행치마을

전주 유곽; 다가동의 돌기둥

기로연

완산동

사직단

오목교

관통로와 익산 전국체전

쌍다리

6지구

강당재

맹꽁이

옥류마을 나무 전봇대

꽃밭정이와 꽃전

도마다리와 두간다리

'효자의 고향' 전주

빙고리

전주 별시

동산촌

풍남초등학교와 기린봉

아중저수지

신한교(新韓橋)로 불리워진 전주 다가교

경기전 용매

전주월드컵경기장

전주 단오

팔과정

세전서화첩 완영민읍수도(完營民泣隨圖)

전주 킬링필드

직지사와 전주 은행나무 골목

물레방아

예규지와 전주

매곡교와 석전

잘 관리가 되어야 하는 천주교 상징물

학산

온다라

전주발() 착한 임대운동

송천동 오송(五松)

1920년 전북자동차상회 버스 요금

 

전주 문화유산

 

전주 하마비

전주초등학교 독립운동기념비

완산종

덕진채련

예종 태항아리와 태지석

남고사의 종소리 크게 울려라

전주향교 계성사(啓聖祠)

남천교

전주성

함경남도 선원전 태조 이성계상과 국보 태조 어진

66년만에 제자리찾은 다가공원비석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