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 공민왕 시절 식련리엔 금강사라는 절이 있었다. 그 절이 망하고 90년 뒤에 다시 지은 절이 승련사이다. 이 승련사 뒷산에 있는 두께를 잴 수 없는 바위에는 엄청난 충격으로 깨진 듯한 흔적이 매우 크고 난잡하게 나 있는데, 「식련마을 바위」는 여기에 얽힌 몇 가지 이야기이다. 어느 날 이 바위에서 황새와 빈대가 나왔는데, 특히 빈대가 나와서 절이 망했다는 소리도 있다. 바위가 갈라질 때 금송아지가 튀어나갔다는 소리도 있다고 했다. 승려들이 불도는 안 닦고 호의호식하자 어느 날 바위가 갈라졌다는 사람도 있고, 동네 사람들과 중들이 사이가 좋지 않아 바위가 갈라졌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또 바위가 갈라질 때 세 마리의 새가 각각 창덕암과 귀정사, 청룡사로 날아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식련마을 바위」는 원형이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이야기이다. 다만 바위가 깨진 것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인식하여 불도에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남원시 산동면 식련리는 부근에 승련사라는 큰 절이 있어 본래 이 마을 이름은 승련이었다고 하며, 그 뒤 승련사의 연꽃을 갖다 심고 마을 이름을 식련이라 불렀다고 한다. 승련사(勝蓮寺)는 비구니 승려들이 수도하면서 불법에 용맹정진하고 있는 만행산(萬行山) 자락에 있는 사찰이다. ‘만행(萬行)’은 불자(佛子)가 열심히 수행하고 남을 위하여 선행을 하는 이타적인 보살행(菩薩行)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찰의 오른편에 있는 산의 바위에 새겨진 ‘금강삼매수행도’는 승련사의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유물의 하나이다. 유가심인도라고 하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높이 36㎝, 폭 102㎝를 자랑한다.
유가심인도는 대구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과 강원도 오대산 적멸보궁 그리고 남원 승련사에만 존재하는 있는 매우 희귀한 수행도이다. 이 바위를 마을 사람들은 '기차바위'라고 부른다. 길게 늘어선 것이 기차와 같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 바위의 넓적한 면에는 밀교의 문양인 유가심인 2점과, 그 옆에 내려 쓴 '옴마니반메훔'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유가심인도 또는 금강삼매경이라고 부르는데 아직 정확한 명칭은 없다. 승련사 뒤편 기차바위에 새겨진 그림으로 2개의 바위 면에 각각 1구씩 2구가 그려져 있고 다른 면에는 옴마니반메홈이라는 범어문자가 새겨져 있다.
‘동문선’ 제72권 이색의 「승련사기」에 의하면, 승련사는 남원부 동북방 30리에 있는 만행산의 금강사라는 옛 절에 홍혜국사가 초석을 다진 뒤, 졸암선사가 사찰 명을 승련사라고 고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각운스님은 태고 보우의 법맥을 계승했다. 학덕이 높고 필법이 뛰어났다고 한다. 공민왕으로부터 그의 도행이 숭상을 받았다. 이로 말미암아 공민왕이 「달마절로도강도(達磨折蘆渡江圖)」와 「보현육아백상도(普賢六牙白象圖)」를 직접 그려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또 공민왕은 그에게 ‘구곡 각운’이란 4자를 친필로 하사하였다고 전한다. ‘대조계종사선도교총섭숭진승근수지도도대선사’라는 법호를 받기도 하였다. 만행산 승련사는 그의 외숙부 졸암 연온이 중창한 사찰로 연은이 죽으면서 그에게 승련사의 모든 일을 맡겼다고 전해진다. 지리산 상주암에서 ‘염송’의 설화를 저술하였다고도 한다. 또 이색이 쓴 각운의 행장에 의하면, 각운의 가사를 전수받은 제자로 천봉 만우가 있었다고 한다. 고려조 이숭인은 ‘절집에서(僧舍)’란 작품을 도은집(陶隱集)에 남겼다.
‘성동에 자리한 금강승사는(金剛僧舍在城東, 금강승사재성동)
동백꽃 한그루로 온 절이 다 붉어라(一樹山茶滿院紅, 일수산다만원홍)
언제 다시 꽃 아래 길손이 되어(何一更爲花下客, 하일갱위화하객)
향기 안개 공중에 퍼질 때 취해서 볼까나(醉看香霧灑空濛, 취간향무쇄공몽)’
‘금강승사(金剛僧舍)’는 승련사(勝蓮寺)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 절은 1361년(공민왕 10)에 중창하면서 원래의 이름인 금강사(金剛寺)를 승련사로 고쳤다고 한다. 시인은 한그루 동백나무 가지 위 붉은 꽃송이가 안개 속에 피어 있는 모습에 혼을 빼앗기고 나면 술이 있든 없든 취할 수 밖에 없다. 시인은 늘 꽃 아래 선 길손을 꿈꾼다. 꽃 아래 선 길손이 되면 꽃에 취할 수 있고, 꽃에 취하면 나도 꽃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동백처럼 내안으로 단단히 여물기를 바란다. 이번 휴가철을 맞아 이곳에 한 번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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