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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군산에 '고산사(高山寺)'가 있었다

군산에 '고산사(高山寺)'가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려말기 또는 조선시대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나주박물관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한국문화유산협회와 공동으로 7월 19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2017-2019 호남고고학 성과전'을 갖는다.
이 전시에서 가장 주목할 유적은 군산 장상리 614번지에서 발견한 기와가마 3기와 건물터다.
기와가마에서는 ‘고산사(高山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됐다. 이를 근거로 고산사에 공급한 기와를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마 아래의 건물터에서는 ‘황제께서는 만년을 사시고, 국왕, 왕비, 태자께서는 천수를 누리라’는 뜻의 ‘皇帝萬年 各保千秋高山寺(황제만년 각보천추 고산사)’ 글자가 있는 기와가 출토됐다.
이승휴의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 〈간장사기(看藏寺記)〉에 나오는 '皇帝御位万年 本國主上陛下坤震邸各保千秋(황제어위만년 본국주상폐하·곤위·진저각보천추)'라는 문장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 이 기와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물터에서는 범자문 수막새와 암막새도 함께 출토됐다. 수막새 한가운데 귀목문에 양각으로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법계를 깨끗이 하는 진언)을 의도한 범자 ‘람’을 새겼다. 바로 그 주변에 8자로 된 범자 진언다라니(眞言陀羅尼, 진언 밀교의 단구인 진언과 장구인 다라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를 둥글게 배치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보루각진언(報漏閣眞言, 지옥, 아귀, 축생 등 모든 악한 세계를 깨부수는 금강석 보주와 같은 진언)이라 보며, 우리나라에서 성행했던 진언다라니는 아니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강소희 학예사는 “장상리 유적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부터 고려시대일 것이며, 그렇다면 고려시대까지 군산 장상리에 고산사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전시는 또 부안 고려청자와 고창 무장읍성에서 출토된 비격진천뢰도 모습을 드러낸다.
호남지역은 청자의 등장과 발전과정을 주도한 청자 생산의 중심 고장이다. 주요 유물은 강진, 부안, 해남의 가마터에서 발굴된 청자와 함께 진도 명량대첩 해역에서 출수된 청자를 소개한다.
조선시대 영역에는 지방 고을의 중심공간인 읍치(邑治)의 발굴 성과도 한눈에 보인다.
고창 무장읍성에서는 조선시대 후기 지방지도에 표시된 훈련청과 군기고가 확인됐다. 조사과정에서 출토된 11점의 비격진천뢰는 세상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전시 영상을 통해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와 함께 군산 옥구읍 선제리에서 발굴된 '검파형 동기'(劍把形銅器, 칼자루 모양 청동기)를 비롯, 고창 용계리, 진안 도통리 등 청자가마에서 나온 유물, 장수 노하리 가야고분군, 남원 실상사 등 무덤과 사찰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을 만나볼 수 있다./이종근기자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기와에 고산사(高山寺)라는 글귀가 새겨 있다>

 

<고산사에서 출토된 도장무늬 기와>

<고창 무장읍성 비격진천뢰>

<장수 노하리 고분군에서 나온 토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