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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어의 전순의





‘동양 최고의 의학사전인‘의방유취’와 1460년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하고자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식의서(食醫書) '식료찬료, 온돌, 한지를 이용한 온실법을 세계 최초로 소개하는‘산가요록(山家要錄)’을 저술했지만 출신지와 가계가 철저히 베일에 쌓여있던 조선시대 어의 전순의(全循義)의 본관이 진안으로 밝혀졌다.

이는 전순의의 아들인 전석동(全石童)이 1469년 증광 진사시에 급제했고, 이러한 사실이 기록된 당시 사마방목(司馬榜目)을 통해 확인됐다. 사마방목은 2등으로 합격한 전석동의 본관이 진안 전씨이며, 부친 성명은 전순의이고 부친관직은 중추부동지사로 기록하고 있다. 전순의와 관련 조선왕조실록의 마지막 기록인 1464년 11월 계축일의 내용은‘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됐음을 밝히고 있어 위의 전석동 부친과 동일인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

그는 조선 초기(1450년대) 세종부터 세조시대까지 의관(御醫)으로 봉직. 그는 궁중에서 음식을 담당하는 의사인 '식의' 에서 출발했음에도 세조 정난 때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좌익원종 공신으로까지 봉해지는 등 출세를 했다. 그는 의관 노중례와 함께 한의학의 3대 저술 중의 하나인 『의방유취』를 공동 편찬했으며 세조의 명에 의해 식료찬요(食療纂要)라는 의서를 지었다. 당시 권위 있는 의사며 식품학자였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음식이 으뜸이고 약물이 그다음이다. 옛 선조들은 먼저 음식으로 치료하고 음식으로 치료하지 못하면 약으로 치료한다고 했으니 음식 효능이 약의 절반도 넘는다.”

문종 몸에 난 종기를 진료한 어의(御醫) 전순의는 자신이 편찬한 식이요법서‘식료찬요(食療纂要)’에서 음식을 통한 치료에 대해 이처럼 말한다.

‘식료찬요’ 외에도 ‘산가요록’ ‘의방유취’를 편찬한 전순의는 한국판 약식동원의 창시자로 당대 최고 명의로 손꼽혔지만, 먹으면 독이 되는 상극 궁합의 음식을 먹게 함으로써 문종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를 음식에 의한 암살로 보는 시각도 있다.

전순의는 문종에게 음양오행으로 따졌을 때 불(火)의 음식이라 할 수 있는 꿩고기를 진상했다. 양기가 충천하는 봄에 꿩고기를 먹으면 치질과 부스럼, 습진 등이 악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문종에게 꿩고기를 진상한 시점이 봄이었고, 마침 그때 문종은 치질과 피부병을 심하게 앓았다. 즉위 2년도 안 돼 문종이 숨을 거두자 전순의는 어의에서 전의감 청지기로 전락했지만, 세조가 즉위함과 동시에 공신으로 책봉되면서 암살 의혹이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