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난다. 푸른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치고 지상에서의 첫날을 맞고, 산모의 첫 국밥도 마른 솔잎이나 솔가지를 태워 끓인다. 아이가 태어날 경우, 삼일날이나 칠일날에는 소나무로 삼신할머니에게 산모의 건강과 새 새명의 장수를 빌고 그 아이가 자라면 솔방울을 장난감 삼아 놀면서 솔씨를 먹고 허기를 달랬다.
소년이 되면 봄마다 물오른 소나무를 꺾어 껍질을 낸 뒤 송기를 먹고 갈증을 달래며 유년의 봄을 보냈고, 어른이 되어서는 소나무 껍질은 귀한 양식이 되었고, 소나무를 먹고 솔 연기를 맡으며 살다 죽으면 소나무 관에 육신이 담겨 솔숲에 묻히는 생(生)을 살았다. 죽어서는 무덤가에 둥그렇게 솔을 심어 이승에다 저승을 꾸몄다.
서양화가 김두해작가의 작품에도 소나무가 등장한다. 작가가 담아내는 소나무는 곧게 자라지 않고 자유롭게 뻗어가며 거친 표면을 가지고 있다. 이는 고난, 시련, 상처들을 모두 이겨내고 꿋꿋하게 자라난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한편으로는 우리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작품 속 산 속의 숲은 복잡하고 반복되는 일상과 다른 작가만의 장소로 사계절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며 같은 자리에서 늘 우리의 마음을 안락하게 해주는 서정적인 위안의 장소이다.이처럼 전북인의 생과 사 속에 녹아든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하지만 도내 침엽수림의 50여 %를 차지하고 있는 소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소나무는 지난달 본격적인 행락철의 시작과 함께 산불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면서 대규모로 쓰러져가고 있으며 일부는 재선충병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임실 신덕에서 5년 전 발생한 소나무 재선충병이 아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첫 발견 이듬해인 2008년 1그루이던 소나무재선충 감염목이 2009년에는 23그루로 증가하면서 인접한 순창 동계 턱밑까지 확산돼 방제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상황이 다소 호전됐다. 2011년 감염이 확인된 소나무가 9그루로 감소한 데 이어 2012년 들어서는 지금까지 1그루만 발견됐다. 추가 발견된 감염목도 순창 접경 지역이 아닌 기존 발생지역 범위에 포함돼 있어 확산에 대한 우려는 다소 가라앉은 것이다.
이에 전북도는 그동안 나무 주사와 방제 작업 등으로 소나무 재선충병 확산이 진정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청정지위 회복에 힘을 쏟고 있다. 소나무는 요전히 목재로서의 가치는 물론 줄기, 잎 등 어느 하나 남김없이 우리 인간에게 유익함을 제공하고 있다. 아낌없이 주는 아름다운 소나무. 그러나 멋진 소나무를 담은 수많은 그림, 소나무의 기백을 그린 시와 노래도 머지 않아 우리 곁에서 사라질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 높아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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