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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용담

<10>용담면 월계리 빨래터의 할머니

 

 

 

 ‘빨래를 하며 얼룩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달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뮤지컬 ‘빨래’의 주제가가 떠오르는 오늘입니다. 당신, 빨래 잘 하시나요. 슬플 땐 빨래를 하세요. 지금의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언젠가는 마를 날이 하루 정도는 오겠죠. 그래서 당신 찡그리지 말아요. 언제나 희망이 있잖아요.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고, 끝이 있으면 또 다른 시작도 있는 법이죠.
 ‘슬플 땐 빨래를 해요. 빨래가 제 몸을 맡기는 것 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겨 보세요. 시간이 흘러 흘러가면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픔의 눈물도 마르지 않나요’ 당신, 힘들고 지친다고, 억울하다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빨래 한 번 속시원히 해보시죠. 이번 만큼은 흑기사를 쓰지 않아야 한다는 걸 아시죠. 제가 감당해서는 안되고, 또 설령 감당이 된다고 해도 나설 수 없잖아요.
 1995년 두 할머니가 용담면 월계리 빨래터에서 떠나야만 하는 고향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전봇대 앞 저 멀리 앞산이 보인 가운데 지금도 안경을 쓴 채 양손을 붙잡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들 할머니는 알고 있었을까요. 한 번 둥지 떠난 새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짙푸른 초원이 바다처럼 펼쳐져 있고 아름드리 큰 단풍나무 아래서 사슴과 다람쥐가 한가롭게 뛰노는 곳. 이웃들이 아침 저녁으로 손을 흔들며 다정히 인사를 건네는 곳. 그곳이 그녀들이 돌아갈 내일의 고향집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을까요. 사는 게 그저 그런 거라고, 정 붙인 곳이 고향이라고, 앞만 보고 묵묵히 살다보면 생은 살아지는거라고.
 용담면 원월계(元月溪)는 논(畓)으로 둘러싸여 있는 수중(水中) 마을이며 앞에는 금강(錦江) 상류인 주자천(朱子川)이 유유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지금으로 부터 약 260 여년 전에 형성된 마을로서 당시는 사방이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이 땅 좋고 물 좋은 버려진 들판을 논으로 개답(開沓)하기 위해 사람들은 닭이 우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한다고 헤서 속칭 닭이동네라 불렀고, 그후 옥토로 가꾸어 결실을 얻게 되자 지방수령이 월계(月溪)라 이름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마을은 주산에서 마을까지 내려온 산줄기가 건해방에서 오다가 임감방으로 들어왔다. 산 뒤쪽은 갈라졌고 아래쪽은 합하여 졌다. 좌청룡과 우백호는 안팎을(內抱, 外抱) 두 번 감아 주었으며 마을터는 넓고 넓은 터이다. 마을 앞에는 낮게 엎드린 개산이 있으며, 뒤에는 맹호출림혈형의 명당이 있다. 이 명당은 천건방에서 물이 오는 바, 산은 서로 응대하며 공손하게 절하고 있으니 마을 인심이 화순(和順)하며 인재가 나며, 자자손손 대를 이을 손이 창성하고 식록은 나라의 보호가 있다. 묘고터로 물이 흘렀으니 대대로 창고가 가득하고 큰 부자가 나며 장상이 나오는 터이다. 마을 앞쪽에는 오리목이 길게 빠져 있으니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안산 즉 마을 앞산이 하늘로 치솟듯 구름 위에 높이 솟았으니 신재가 나타나는 터이다. 삼양 삼각산이 높고 백료산이 비쳤으니 큰 벼슬이 나오는 길지의 터이다.(결록(訣錄)’
 동네 고샅을 돌아가자 지붕을 뒤덮은 무성한 등나무줄기가 잎을 흔듭니다. 이들 할머니의 안마당에 들어서자 처마밑엔 시커멓게 그을린 전선줄이 집안의 속사정을 말해주듯 처연합니다.
“옛날에는 내일 네일을 가리지 않고 전부치는 냄새만 나도 서로 정겹게 나눠먹었지요. 그러나 3년전 쯤부터는 안면몰수하고 살아요. 지금 사는 모습은 지옥입니다. 추석이 지나면 그나마 댐사업소에서 철거 예고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곡식을 거둘 때까지 만이라도 철거를 미뤄달라고 애원해보지만 당장 쫒겨날 처지입니다. 미이주 세대는 보상이 안됐거나 영농 관계로 인해 주택이 준비중으로 있는 등 딱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 할머니의 경우도 ‘앉으나 서나 절로 생기는 근심’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철거가 시작되면 시골로 들어가 오두막이라도 얻고, 남의 땅을 부쳐먹을 수 밖에 없다는 나름의 계산입니다.
 “우리집서 고개 하나 넘고 쬐만헌 고개 하나 더 넘으면 용담장이었어요. 8킬로미터 쯤 되는 거리였는데, 장날이면 할아버지 손잡고 따라가 빵 하나 얻어먹는 재미가 그렇게 컸지요. 빵을 싸준 신문지에 들러붙은 부스러기까지 알뜰히 떼어먹었으니깐요. 온 장터를 휘감고 돌던 멸치국수 냄새는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라요”
 이는 이들 할머니의 은성했던 용담장의 기억입니다. 이 동네 저 동네 고구마서리 닭서리 하러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기억, 강변에서 고동 잡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추억 더듬을래야 흔적조차 없습니다.
학교 교정은 온데간데 없고, 산 날망 저 능선에 외로운 탑 하나……. 우리의 꿈도 묻었고, 우리의 희망도 묻었고, 손목을 마주잡고 힘을 합하여 함께 하던 친구들의 우정도 묻었고, 우리의 추억도 송두리채 묻어버린 사모비……. 그 애타는 심정을 누가 알랴!.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네 눈물도 마를 거야 자 힘을 내.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네 눈물도 마를 거야자 힘을 내’
 이들 할머니 때문일까요, 오늘따라 뮤지컬 ‘빨래’가 정말 와 닿아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유독 '얼룩'이라는 말이 마음에 속에서 살아가니까요. 그것은 눈물처럼 누군가에게  입은 상처의 마음일 수도 있고 얼굴과 몸의 주름들처럼 시간이 내게 준 얼룩일 수도 있어요.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겨요. 깨끗해지고 잘 말라서 기분 좋은 나를 걸친 채 하고 싶은 일하는 거예요. 자 힘을 내, 자 힘을 내, 자 힘을 내, 자 힘을 내요, 어서 빨리. <글=이종근,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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