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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용담

<8> 상전면 불로티

 

 

 

 

 

   

 

오래 전에 살다간 선조들이 지어놓은 땅에 대한 지명을 분석하다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예언성 땅 이름은 경탄할 정도로 딱딱 맞아떨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안군 용담면과 용담댐. 진안 용담면은 일제시대부터 댐 건설의 적격지로 지목, 계획을 확정하고 사업을 검토하여오다가 일본 패망으로 무산됐지만 지난 1992년 착공, 2001년 완공됐습니다. 담수가 끝나자 하늘에서 댐을 내려다보았을 때, 참으로 기이하게도 댐이 가두고 있는 물줄기가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대로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용담'이란 '용 용()'자에 '못 담()'자가 합쳐진 말로 '용이 자리를 틀고 있는 깊은 연못'이란 의미를 지녀서인가요.

용담호는 호숫가 길로 차를 몰며 곳곳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면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와 산줄기를 조망할 수 있는 등 시원한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제격입니다. 진안읍 운산리 삼거리가 드라이브의 출발점. 정천면 소재지를 지나 용담댐~13번 국도~안천면소재지~30번 국도~불노치터널~월포대교로 이어지는 드라이브길을 따라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정천면 모정리 망향의 광장을 시작으로, 용담·상전·안천 전망대 등 4개의 전망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호수 주변에는 산줄기를 갈라 물길을 내며 섬이 된 죽도와 죽도폭포 등 절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용담호는 늦가을~초겨울 이른 아침이면 물에 잠겨 섬이 되고 반도를 이루는 물굽이 사이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멋진 풍광을 자아냅니다.

상전면 불로티(不老峙)마을은 용담면 남면이었고, 남면이 둘로 나뉠 때 이남면 불노티리였으며, 191431일 진안군 정천면 구룡리 불노티가 됩니다. 1983215일 형정구역 개편으로 진안군 상전면 구룡리 불노티로 됩니다. 이 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마치 늙은 스님이 태산준령(泰山峻嶺)을 답사하고 있는 형국의 안에 위치하고 있어 삼신산 불로초(三神山 不老草)와 같다고 해서 지금으로 부터 약 300여 년전에 마을 명칭을 불로치(不老峙)라 칭하고 있다는 말도 전합니다.

불로티(불로치)터널은 상전면 구룡리와 안천면 신괴리를 연결하는 터널로 국도 30호선에 속해 있습니다. 터널이 위치한 곳이 불노티재(不老峙嶺)여서 붙여진 명칭입니다. 진안군 상전면 구룡리와 안천면 신괴리 접경에 있는 고개는 속칭 코큰이재 또는 대양밭재라고 해서 고갯마루까지 4가량의 굽이진 산길을 돌아가야 했습니다.

1994년 불노티령 중턱에 터널을 준공해 불편을 해소하기에 이릅니다. 이 노선은 본래 지방도였으나 국도 30호선으로 승격됩니다. 2차로로 길이는 446m, 폭은 8.5m(유효 폭 7m), 높이는 6.3m입니다.

안천면 소재지에서 30번 국도로 바꿔타면 불노티터널을 만납니다. 이 고개는 코큰이고개로도 불리는 바, 6·25 때 미군 장교(딘 소장)가 포로로 잡힌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불로치(코큰이재)’로 불리우는 이곳은 한국전쟁때 미군 장교 딘소장이 포로로 잡힌데서 유래됐지만 랫 부분이 용담댐에 잠겨 참으로 아쉽기만 합니다.

원래 비대치(比大峙)였던 고개 이름은 딘소장이 잡힌 후 비대치(鼻大峙, 대양치)로 불려지게 됐다고 하지만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큰이재'로 회자되던 이곳은 80년대 중반 주민들의 고증으로 마을 이름은 ?금당'으로, 고개 이름은 '불로치'로 개명하게 됐다 합니다.

하지만 코큰이재의 아랫 부분이 용담댐 물에 잠겨 참으로 아쉽습니다. '아리랑(이강천 감독)'은 한국전쟁 당시 이곳에서 북한군의 볼모가 됐던 딘소장의 실화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때는 1950720. 미 육군 24사단장 월리엄, 딘소장이 행방불명이 됐습니다. 당시 미 지상군 사령관까지 겸했던 그는 북한군의 남하를 막지 못하여 후퇴하다가 대전에서 홀로 낙오됐습니다. 이윽고, 산악지대를 헤매다가 21일 무주군 적상면 방이리의 조항산(鳥項山) 골짝 고방(高芳)마을의 박종구씨의 집에 피신했습니다.

다시 대구방면으로 가기 위해 나섰다가 730일 진안군 상전면의 비대치에서 한 청년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다름 아닌 안천면 노성리의 한두규(당시 35). 딘소장은 며칠 동안을 굶어 지냈으니 그 행색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의용소방대장 등을 지낸 한씨는 자수를 하면 살 수 있다고 종용, 마침내 진안읍으로 자수를 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전면 언건(현 진안읍 운산리)의 한 주막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 딘소장은 느닷없이 나타난 무장한 청년에 의해 포로가 됐다. 이때가 825, 딘소장의 실종 36일의 종지부를 찍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휴전협정의 성립에 따라 쌍방 포로교환에 의해 판문점을 통해 195394일 귀환했으나, 한씨는 9.28 수복 후, 딘소장을 고발한 죄인이 되어 5년형을 살고 나왔습니다.

한씨는 법정에서 이런 억울한 일이 있느냐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딘소장도, 한씨도 모두 고인이 되었으니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는 안타까움입니다.

사진은 1987년 봄의 모습으로, 불로티마을 15여 세대가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불로티에서 내려다보면 강물이 은비늘처럼 반짝거렸고 복숭아 꽃잎은 눈이 부시도록 화사했습니다. 이 때쯤이면 흑염소들은 뒷산 언덕을 향해 내달았고 종아리에 힘이 불거진 사내들은 소를 몰고 나와 밭을 갈았다고 합니다. 산의 생김새 그대로 고랑을 만드는 쟁기밥이 한번씩 넘어질 때마다 추위가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당신의 봄, 우리의 봄이 오면서 금강의 물이 조금식 늘어났습니다.

망향의 광장전망대 옆 태고정(太古亭)은 고색창연한 옛 모습 그대로 망향가를 부르고 여의곡에서 옮겨온 지석묘는 물 속에 가라앉은 그곳이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이종근,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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