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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전주장(全州欌)을 살려라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이 왜 최고의 명품인가? 몸체를 만드는 나무 판의 일정한 밀도가 그 비밀의 한 가지다. 이탈리아의 스트라디바리(Stradivari)가 만든 이 바이올린은 다른 바이올린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최고의 음질을 선사하며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왜 최고인가? 얼마 전, 영국의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기사를 통해 “비밀은 바이올린의 몸체를 만드는 두 개의 나무 판의 일정한 밀도(consistent density)에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이유는 손끝 정성에서 빚어낸 장인정신으로부터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小木匠, 장롱, 궤, 경대, 책상, 문갑 등의 목가구를 제작하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장인)’ 보유자로 소병진다. 그는 1990년 무렵부터 조선 한식 가구의 제작 기법을 연구, ‘전주장(全州欌)’을 복원, 재현해내고 있다.

 ‘전주장’이란 전주지역에서 주로 생산되어 호칭되는 장롱의 한 종류다. 보통 위의 여닫이문과 아래 반닫이가 결합된 것을 ‘전주장’이라 부른다. 안방가구로 옷 등을 보관하던 것으로 주로 쓰였다. 지금도 작은 물품을 보관할 수 있으며, 작은 크기의 전주장은 침대 옆에 두고 스탠드 받침대로도 사용할 수 있다. 머릿장으로 부르는 단층장은 문의 크기에 따라 책장으로도 사용을 했다. 이층장의 한 형태인 ‘전주장’은 천판에 날개와 상단부의 문짝 형태로 하단부엔 반닫이 형태로, 또한 천판 하단부에 서랍을 여러 개 둔 형태가 기본이다.
‘전주장’은 오랜 세월동안 우리 옛 사람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숨결과 늘 함께 하며, 자연에 순응하면서 이를 최대한 활용했던 선조들의 지혜와 미감을 그대로 담고 있다. 현대식 가구는 튼튼하고 편리하며 수납공간이 충분한 기능적인 면은 강조되고 있지만 ‘전주장’처럼 깊게 배어나는 질박함과 순박함의 미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주장’은 요즘처럼 단순히 물건을 수납하는 용도로서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이 시집 올 때 목가구를 들여놓은 후 매일 기름걸레로 닦고 문질러 나무 속에 스며 있는 자연의 맛을 음미했던 것을 기억해 보면 알 것이다. 그렇게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은 ‘전주장’은 용도만큼 다양한 종류를 갖고 있는 가운데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가 만드는 ‘전주장’은 나무결의 자연스러움과 색의 은은함이 한층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는 평가다. 감재비가 견고함을 더하는 한편 신주 장식이 균형잡혀 있다. 또한 촘촘한 무쇠 장식이 매우 고졸한 맛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오래 놓고 볼수록 그 멋을 더하는 가구를 만드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3백 여년 전 만들어졌던 ‘전주장(全州欌)’은 3백년 이상 묵은 느티나무 고사목의 질 좋은 무늬만을 골라 사용, 외부는 물론 내부까지도 완전히 통판으로 만들어진 명작의 하나로 손꼽힌다. 짜임 기술로 정교한 손놀림이 더해졌을 때 전주장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전주장’의 본체는 널(궤)의 형태를 갖고, 장의 기능을 수행(책장의 용도)했다고 본다. 특징 측면의 널이 다리까지 내려간 것이 특징. 일층 구도, 2층 구도. 3층 구도(옷 넣는 것 아닌 사랑방 쓰기 편한 내부 구실) 등으로 구분된다. 장석은 장식에 의존에 많은 편(특히 전면구도 붙임)으로 남원장의 구조와 비슷하다.
전주장은 장석은 무쇠로서 투박하고 간결함이 돋보이는 만자(卍) 문양을 부착시켰으며, 삼태극(천지인)의 빨강, 파랑, 노랑색 등 색상의 조화는 단연 백미다.
옻칠 또한 유칠(식물성기름)로 도장, 목재의 자연스러운 무늬를 강조한만큼 단아한 품격을 나타낸다. 따라서 한때 사대부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왔으나 현재 전주장의 진품은 10-20여 개에 불과하다는 것. 소씨는전주장(全州欌)의 기능 보전을 위해 모든 공정 과정을 비디오에 담아두었다.
앞서 정대영(동대문구 답십리에서 동인방 대표)씨가 지난 2002년 2월 그동안 척박했던 우리나라 고가구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한 책 ‘한국의 장’을 출간했다.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전주장’ 등 고가구들과 지내면 21세기의 빠르고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조선시대의 어느 사랑방에 앉아 글을 읽고 있는 듯하게 차분해진다는 설명이다.
전주시가 피렌체 같은 세계적인 수공예도시로의 비상을 꿈꾸고 있다. 전주는 전국 평균 1.7명에 불과한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45명이나 활동하고 있는데다 국립무형유산원까지 위치해 있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형유산도시로 정평이 나있다. 또, 이러한 장인정신이 예술작품 뿐 아니라 시민생활 속 깊이 뿌리내려 다양한 수공예품이 생산되고 있다.
전주핸드메이드 시티의 신념과 가치를 확산시켜 수제작 산업을 부흥시키고, 다양한 분야에 개념을 결합시켜 전주를 피렌체와 같은 세계적인 핸드 메이드 시티로 만들기를 바란다./이종근(저작권이 있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