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강을 건너온 이야기가 내게 말을 걸다. 인류의 삶은 길을 따라 통하고, 그 길에는 다리가 있다. 우리 민족은 생활환경이 되는 모든 존재에 문화적 아름다움과 가치를 부여했다. 지역과 지역을 이어 물류와 사람을 통하게 해주는 다리도 단순한 물질 이상이다. 문명의 구조물에 지나지 않던 수많은 다리에 이야기라는 문화의 발걸음이 더해지면서, 우리 곁에 살아있는, 그리고 오랜 세월 함께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을 간직한 경주의 문천교,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을 이어준 남원의 오작교, 임금이 사는 곳과 속인이 사는 곳을 구분하는 경계가 되는 궁궐과 왕릉의 금천교, 승계와 속계의 경계가 되는 순천의 승선교,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을 이어주는 강경의 미내다리, 세종의 효심으로 만들기 시작한 살곶이다리, 고려 멸망의 사연을 남긴 개성의 선죽교와 좌견교, 단종의 설움을 달래기 위한 주천의 섶다리....’ 또, 700년을 견뎌온 함평 고막천 돌다리, 다리 밑에서 아이를 주워 왔다는 청다리, 정조의 효심이 서려 있는 만안교, 축제로 부활한 주천의 쌍섶다리, 우주의 모양을 본뜬 진천의 농다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의 대명사 격이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것이면서도 그 문화적 의미와 가치에는 소홀했던 다리들을 여러분 곁으로 인도해 주리라.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란 노래를 떠올리면서 우리 선조들이 남긴 유무형의 무지개(홍예,虹霓)다리를 만난다. 무지개다리는 한국인들의 희망과 복락의 상징물은 아닐까. 무지개 모양의 문은 홍예문이 되고, 무지개 모양의 다리는 홍예교가 된다. 숭례문(국보1호), 흥인지문(보물1호), 광화문의 석축엔 홍예문이 있고 불국사 백운교나 창덕궁 금천교는 다름 아닌 홍예교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홍예’. ‘아치’라는 외래어로 더 익숙한 이 홍예가 우리 전통 석조 건축에서 ‘약방의 감초’격이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 였을까.그 비밀은 무엇보다도 완벽할 정도의 견고함과 빼어난 아름다움에 있다. 홍예는 좌우에서 돌을 쌓아 올라가다 맨 위 가운데에 마지막 돌, 즉 이맛돌을 끼워 넣음으로써 완성된다. 이 이맛돌만 빠져나가지 않으면 홍예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건물이나 성벽이 무너져도 홍예는 건재하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홍예에선 돌과 돌 사이에 모르타르와 같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돌이 허공에 떠있는 셈이다. 홍예는 돌의 특성을 제대로 간파해 돌을 아치형으로 쌓았다. 그러면 위에서 가하는 힘을 좌우로 분산시키기 때문에 붕괴 위험이 거의 없다. 홍예를 ‘고도로 발달된 건축 구조’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성과 미학의 조화’라는 특성 때문인지 홍예는 현대 건축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현대 건축의 홍예는 콘크리트 등으로 무지개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돌을 붙인 것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다리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창경궁 옥천교다. 보물 386호로 지정된 이는 다리 난간 아래 홍예(무지개 모양) 사이에는 궁궐에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해 도깨비상을 조각했다. 전북 도내에서는 광한루, 견훤 석성, 교룡산성, 위봉산성 등이 홍예가 들어간 예가 된다.
전주엔 일제시대 홍수에도 거뜬히 자리를 지킨 싸전다리가 있으며, 이병천의 소설 ‘모래내 모래톱’엔 모래내 일대의 다리와 인정이 묘사된다. 전주 천변 진북동 쌍다리 부근은 영화 ‘간 큰 가족’과 ‘좋지 아니한가’가 촬영된 곳이다.
그러나 전주 진버들 버드나무는 사라졌으며, 징검다리가 있던 곳은 새 길이 나면서 다리가 놓였고, 냇가가 복개되면서 다시 아스팔트 도로가 되었다. 인후동의 대우아파트도 버드나무가 많은 지역이었던 점을 고려, `진버들 대우아파트'로 명칭을 정했다.
부산은 2014년 북항대교가 완공되면 광안대교에서 거가대교까지 총 52㎞에 이르는 7개의 해안순환도로가 완성된다. 이들 교량은 현수교(광안대교), 사장교(북항대교), 아치교(신호대교), 침매터널(거가대교),경사교량(가덕대교) 등의 다양한 형태로 건립돼 부산의 해안 경관과 어우러져 뛰어난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이제라도 부산처럼 다리의 명품화 사업를 통해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온 힘을 기울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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