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정이
가톨릭 순교의 아픔이 있는 곳
유연대(油然臺)의 북쪽 끝, 속칭 부엉바위(현 진북사 터)에서 금암동 북추봉(현 KBS 전주방송 총국이 있는 언덕)의 불거진 벼랑의 암석까지를 직선으로 잇는 지역을 '숲정이'라고 한다.
숲정이는 강산 이서구(薑山 李書九; 1775 ~1825)가 전라도 관찰사로 도임했을 때, 전주부성의 북쪽이 풍수설에 따르면 허하므로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숲정이는 전주부성을 드나드는 길목으로 수많은 행인이 오간 곳이다.
이렇듯 많은 재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길목이 허하니 길지(吉地)를 만들어 보자고 나무를 심어 서북쪽의 찬바람을 막고자 했던 연유에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숲이 칙칙하게 우거져 '숲머리'라고도 하고 군 지휘소인 장대(將臺)가 있던 곳으로 '전주 숲정이'(전주시 진북동 1034-1번지)는 조선 시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장소로, 일찍부터 초록바위(현 완산동 전주교 천변)와 함께 중죄인들의 형장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박해가 시작되면서 이곳은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 터로 변모하였다. 1801년에 이순이와 류항검의 가족이 순교한 이후 1839년 기해박해 때는 충청도 출신의 김대권(베드로), 이태권(베드로), 이일언(욥), 정태봉(바오로)과 경기도 출신의 신태보(베드로) 등 5명이 5월 29일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또 1866년 병인박해 때는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손선지(베드로), 한재권(요셉), 조화서(베드로), 이명서(베드로), 정원지(베드로) 등 6명이 12월 13일 이곳에서 순교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랐다.
숲정이는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전라도 지방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를 탄생시킨 사적지였다. 이곳은 신앙 선조들의 순교 열정과 함께 천상의 영복을 얻은 기쁨, 피로 적셔진 진토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박해 시대 내내 신자들은 그 자리를 잊을 수 없었고, 신앙의 자유를 찾은 뒤에도 자주 이곳을 순례하면서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고지성(故知性)을 안고 있는 숲정이이기에 이 일대에서의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현양탑이 1968년에 세워지게 되었고 천주교에서 설립한 해성중 · 고교(현 삼천동으로 이전)도 진북동에 건립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곳은 지금부터 1백여년 전에 전라도에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관병 · 일군에 붙잡힌 동학군이 수없이 처형된 곳이기도 하다.
고사에서 말하는 숲정이에 서북쪽의 찬바람을 막게 되면 만년(萬年)의 영화가 이곳에 같이 한다고 했다는데 한번 기다려 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