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시대 이래로 줄곧 교통의 중심지를 이룬 곳이 진안고원이다. 금강을 중심으로 만경강과 동진강, 섬진강, 남강, 황강 유역을 하나로 묶는 내륙 교통로의 교량 역할을 담당했다. 진안고원 일대에 그물 조직처럼 잘 갖춰진 내륙 교통로를 이용하여 사람의 왕래나 물자의 교역이 왕성하게 이루어진 ‘문화 교류의 허브’였다. 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중앙부에 자리한 진안군은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 선사 시대부터 줄곧 점이 지대를 이루었다.
진안군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는가를 추정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용담댐 수몰 지구인 정천면 진그늘마을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어, 후기 구석기 시대로 상한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진그늘유적은 전북 최초로 정식 발굴 조사를 통해 그 성격이 밝혀진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이다. 모두 20여 개소의 석기 제작소와 화덕 자리, 여러 가지 석기와 함께 몸돌과 격지·돌날·좀돌날·부스러기·조각돌 등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슴베찌르개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점을 근거로 특정 철마다 찾아와서 주로 사냥용 연장을 만들고, 잡은 짐승을 처리하던 사냥 캠프로 추정됐다. 또, 정천면 갈머리를 비롯한 신석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영남의 내륙 지역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고 있다.
삼국시대 때 진안고원은 백제와 가야, 신라의 유적과 유물이 공존했던 곳이다. 백제는 금강과 섬진강 유역을 곧장 연결해 주던 간선 교통로를 일찍 장악함으로써 섬진강 유역을 백제의 영향권으로 편입시켰다. 이를 위해 진안고원을 종단하던 간선 교통로를 관할할 목적으로 교통의 중심지에 토성과 산성을 많이 쌓았다. 반면에 백두대간의 육십령을 장악했던 장수 가야는 교통의 중심지라는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 가야계 왕국으로 발전했다. 그러다가 백제의 웅진 천도와 그에 따른 백제의 정치적인 혼란기를 틈타 용담댐 일대로 진출하여 한동안 백제의 간선 교통로를 차단했다. 6세기 전반기에는 신라가 백두대간의 덕산령을 넘어 전라북도 무주군과 금산군 등 진안고원의 동북부를 신라의 수중으로 포함시켰다.
장수 가야의 진출로 폐성된 와정토성에서 서쪽으로 350m가량 떨어진 곳에 진안 황산리 고분군이 있다. 금강의 본류와 주자천이 합쳐지는 지점에서 북서쪽으로 500m가량 떨어진 곳으로 행정 구역상으로는 진안군 용담면 월계리에 속한다.
용담댐 구제 발굴에서도 신라 토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황산리 고분군에서 가야·백제 토기와 공반된 상태로 출토되어 큰 관심을 모았다. 진안군 안천면과 금산군 추부면에서 신라계 유물이 신라 고분에서 상당량 출토됐는데, 시기는 대체로 6세기 중엽 경으로 비정됐다. 진안고원 일대에서 6세기 전반기 이른 시기부터 등장하는 신라의 유적과 유물은 신라의 진출을 암시해 주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백제의 웅진기 이후 백제와 신라의 간선 교통로는 나제 통문과 백두대간 덕산령을 넘어 경주까지 이어졌다. 삼국 시대 때 진안고원을 차지하려고 삼국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펼쳐 백제와 가야, 신라의 유적과 유물이 공존한다.
최근들어 도내에서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삼국시대의 봉수가 발견됐다. 전북 가야지역에 존재했던 봉수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할 단초가 마련됐다는 기대가 나온다. 그 동안 전북가야에 분포된 봉수는 주춧돌 정도만 확인됐었다.
가야문화연구소 등에 따르면 이 봉수는 완주군 고당리 탄현(숯고개)의 서쪽 산줄기 정상부에 있어 ‘탄현봉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봉수의 평면형태는 (장)방형이며, 납작한 돌을 수직으로 쌓아서 축조됐다. 봉수의 규모는 길이 7m, 높이 2m내외에 이른다. 학계에서는 봉수의 축조시기를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지표상으로 볼 때 인근에 삼국시대 기와가 수습됐으며, 전북 동부에도 삼국시대 봉수만 80여개 소에 이르기 때문이다. 가야문화연구소와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탄현봉수를 완주-진안(금산)-장수를 잇는 봉수로 추정하고 있다. 도내에서 처음으로 온전한 형태의 봉수가 발굴돼 가야시기에 전북에 존재한 봉수의 실체를 규명하기가 용이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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