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한양에서 전국 각 지방으로 가는 ‘10대 대로’가 있었다. 한양~의주까지 가는 의주대로, 한양~통영까지 통영대로, 한양~해남까지 삼남대로 등은 국가에서 지정한 간선로다. 당시엔 주로 걷거나 마차 혹은 말을 타고 다녔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간 길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형체를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는 옛길이 몇 안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길이 삼남대로 갈재길이다. 갈재 정상은 암벽을 깎아 만든 길로 정읍과 장성이 연결된다. 벽에 장성부사 홍병위가 갈재 고개를 넓히고 고개를 낮추어 길을 만들어 영원히 잊지 않고 기리자는 영세불망비가 자리하고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장성현에 따르면 ‘갈재는 위령(葦嶺) 노령(蘆嶺)이라고도 하는데, 현 북쪽 30리에 있으니, 요해(要害)의 땅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자로 위(葦)와 노(蘆), 두 글자 모두 갈대를 가리킨다. 즉 갈재는 갈대가 많아서 불리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노령보(蘆嶺堡)는 고갯길이 사나워 도적이 떼를 지어 있으면서 대낮에도 살육과 이탈을 해 길이 통하지 않았는데, 중종 15년에 보를 설치하여 방수(防守)하다가 뒤에 폐지하였다’라고 돼 있다.
입암산과 방장산의 협곡을 잇는 갈재는 전남 내륙지방에서 한양으로 오가는 요로였다. 반면 도적들도 많아 길손들이 한데 모여 가거나 장성이나 정읍의 극락원(極樂院), 연화원(蓮花院), 미륵원(彌勒院) 등 원(院)에서 쉬면서 정보를 주고받아 안전하게 길을 건넜다.
‘노령에 피는 햇살 강산은 열려 금만경 넓은벌에 굽이는 물결 복되라 기름진 땅 정든 내 고장 억만년 살아나갈 정든 내 고장(1절), 인정도 아름다운 마한 옛터에 한 송이 무궁화로 피어난 겨레 차림도 새로워라 피는 새 살림 새 희망 새 광명에 피는 새 살림(2절), 삼백만 도민들아 모두 나서라 빛나는 민주문화 이 땅에 심어 힘있게 보람있게 복되게 살려 대한을 대한으로 복되게 살려(3절)’
‘삼백만 도민들아 모두 나서라♬’ 여러분들은 전북 도민의 노래'를 알고 있는가. 노래는 모두 3절로 구성, 각 절마다 ‘깃발을 울려라 힘을 빛내라 밝아오는 내 나라 우리 대전북’이란 후렴으로 구성돼 있다. 이 노래는 15대 김인지사(1961.8.25.-1963.12.16)때인 1962년 10월 27일 제정됐으며, 김해강이 작사를, 김동진이 작곡을 했다. 이를 통해 전북 도민의 결집 및 응집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범도민 운동으로 확산하자는 게 핵심이다. 그 당시엔 전북도청과 시군 지자체 공무원들이 오전 6시 기상과 함께 운동장 등에 모여 도민의 노래에 맞춰 아침 체조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는 어렸을 때 도민의 노래로 알고 배웠지만 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해 학교나 관공서에서 스피커를 통해 이 노래가 나오면 따라서 흥얼거리는 정도였다. 다만 3절 첫 소절이 “삼백만 도민들아 모두 나서라”로 시작하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김해강선생은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후손들을 위해 넉넉하게 “3백만 도민들아”라고 표현했을 터이다.
1983년 22대로 부임한 심재홍지사(1983.10.15-1986.8.28)가 어느 날 기자들과 술자리를 같이한 자리에서 전북의 노래를 3절까지 힘차게 부르는게 아닌가. 경기도 출신인데다 부임한지 얼마되지 않은 지사가 도민의 노래를 모두 불러 놀랬다는 후일담이 전하고 있다. 이후 1981년 10월 25일 조례로 제정, 오늘날 도민의 날이 됐다. 전북 도민의 노래 가사처럼 억만년 살아 나갈 정든 내 고장에 깃발을 올려야 한다. 그래야만 후손들이 “3백만 도민들아 모두 나서라”라는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있을 터이다. 지난날의 역사를 반추하는 것이어서 일까, 갈재의 꽃무릇이 오늘따라 더없이 붉디붉은 모습이다. 다시 노령에 뜨거운 햇살에 필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