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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전주 가재미골과 부채

 어느 누구는 인후동 가재미골은 풍수지리설을 들어 마을의 지형이 마치 가재미(가자미) 모습 같다고 하며, 또 누구는 가잠동(可潛洞), 가장곡(可葬谷)을 가재미골이라고 한 바 감여가(堪與家)의 설에 의한 것으로 보는 등 옛 지명에 이견이 많다.
단오날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으로 가장 양질의 부채로 이름 나 있었던 전주부채는 견고하고, 구성이 섬세하며, 운치가 있는 특성을 갖는다. 특히 조선시대 전라감영 내에 선자청(扇子廳)을 두어 부채를 제작, 관리했었고,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들이 반석리(현 서학동)와 가재미골(현 인후동)에 많이 거주했었다.
부채에 관한 우리나라 문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 견훤조에 견훤이 고려 태조(재위 918∼943)에게 공작 깃으로 만든 둥근부채인 공작선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어 이미 이 무렵 전주에서 부채가 제작됐다. 그래서 부채는 접부채보다 방구부채가 먼저다. 삼국사기 견훤전에 보면 “고려 태조 왕건이 즉위함을 후백제의 왕 견훤이 듣고 그해 가을 8월 사절을 파견하여 하례하고 공작선과 지리산 죽전을 보냈다”고 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도 고려초 이전에 이미 부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부채는 나라간의 선물로서 여러 나라에 보내졌으며, 전주부채는 고려시대에 일본 등에 수출됐다는 기록이 보이며, 특히 조선시대에는 전주에 선자청을 두어 부채를 생산, 관리하도록 했다.

선자장에는 합죽선과 태극선 두 종류의 부채가 있다. 합죽선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도록 만든 부채로, 철저히 수공예품으로 전수하고 있다. 단오 때 진상되었던 전주의 태극선은 대나무와 태극무늬의 비단헝겊, 손잡이를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사북장식 등을 재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조에는 부채를 만드는 장인들이 주로 반석리(서학동)에 살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전라감영에 소속되었던 선자청이 언제 사라졌는지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단오선을 공납하는 제도가 필요 없어진 일제 강점기 전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선자청에서 근무하며 부채를 만들던 ‘경공장’이나 선자청에 납품을 하던 ‘외공장’의 장인들은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선자청을 벗어나 지금의 전주 중앙동 에 터를 잡게 된다. 당시 중앙동에는 부채를 도매로 전국에 공급하는 중간상인 이였던 송지방(지금의 남문 근처)을 비롯, 삼화 상회, 무궁화 공예사 등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전하는 60년대 이야기 중에는 중앙동 근처에 비단 장사와 사복(부채를 고정하는 금속제 고리)을 만드는 곳이 있었고, 오거리에도 사복을 만드는 곳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중앙동 작업의 형태를 보면 일본인들이 자본을 대고, 장인들이 작업을 관리하면서 밑에 많은 일꾼들을 거느리고 있는 형태였다. 단선(태극선, 한지선 등) 쪽에는 한경필 선생과 그 제자인 방춘근 선생이 주를 이루었고, 합죽선 쪽에는 문준하 선생 아버지와 문준하 선생이 많은 일꾼을 거느리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 자본이 사라지고 중앙동이 발전하면서 부채 장인들은 이분 들을 주축으로 인후동의 가재미와 안골, 아중리의 석수리로 터를 옮겨 새로운 자본가를 중심으로 공방들을 형성하게 된다.

가재미골은 그때부터 부채골로 형성된다. 당대의 부채의 명인인 방춘근 선생과 이기동 선생, 엄주원선생이 가재미에서 모두 터를 잡고 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국가문화재 김동식선생, 도 문화재 방화선선생이 바로 이곳 출신이다.
다른 부채에 비해 공간의 면 분할과 강한 색상대비가 돋보이는 태극선은 2년 이상 묵은 왕대나무를 겨울에 베어내 부챗살을 만들고, 이에 '고급 비단' 양단을 붙여 응달에서 말린다. 각종 모양으로 끝을 오려내 한지로 테두리를 치고, 소나무 재질로 손잡이를 끼우는 등 여러 단계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되지 않나. 전주에서 예술성 뛰어난 '부채장인' 선자장의 작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까닭이다. 인위적인 바람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부채의 아름다움과, 느리고 비우는 철학의 가치를 일깨워 줄 수 있도록 가재미골을 전주 부채의 산실로 다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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