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희의 단편소설 ‘만종’ 은 등단 이후인 1980년 발간된 전북대학교 교지인 ‘비사벌 8집’에 실린 작품이다. 작품의 시공간은 1980년 제61회 전국체전 준비로 개보수공사가 진행 중인 전주 경기전과 전동성당, 중앙초등학교, 태조로 등이다. 작품은, 전주시에서 전국체전을 계기로 도시 전체를 단장한다며 대공사를 진행함에 따라 전시적인 효과만을 생각할 뿐 과거의 전통이나 정신적 뿌리를 고려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종’에는 전주한옥마을과 전동성당, 경기전과 조경단, 풍남초등학교와 완산초등학교, 중앙초등학교 등 전주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단어들이 살아 있다. 당시, 경기전에는 맹오리 영감이라는 터줏대감이 있고, 그 맞은 편 전동성당에는 봉사할멈이 있다. 이 일대는 요즘 전국체전 준비를 이유로 재단장이 한창이며, 공무원의 불도저가 파헤친 것은 단순히 낡은 건물만이 아니라, 거기 함께 묻어둔 우리네 추억과 거기에 기반을 둔 삶 전반이 나타나는 등 주인공의 즐겁고 아름다웠던 어린 시절에 맞추어져 있다.
오늘날 전주 관통로는 그 명칭이 도시계획상 공식 명칭이 아니다. 1980년 10월 8일 제61회 전국체전때 전주에서 개최될 무렵에 동서간 도로를 개설하면서 비공식적으로 누가 호칭한 것이지 공식적으로는 충경로로 명칭하고 있다. 1980년 개최 예정인 전국체전 개최지가 전주로 결정되면서, 도시 정비 일환으로 동서 관통도로 공사가 1979년 6월 26일 착공됐다. 총 공사비 51억7,200만원을 들여 전주 천변에서 병무청까지 1,283m에 이르는 구간을 폭 25m로 1980년 10월 2일 준공했다. 관통로는 1977년 5월에 건설부 고시로 도시계획도로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 가로명은 1883년 12월 24일 임진란때 우리 전주의 수성에 공이 많았다고 하는 충경공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충경로라는 이름이 최초로 지어졌다.
팔달로 역시 전국체전과 관련돼 놓인 도로다. 팔달로는 1963년 전국체전 전주개최(10월 4일 개막)를 앞두고 그 해 9월에 개통했다. 당시는 12칸도로라고 했으며, 1967년 10월 공모로 팔달로란 이름을 붙였다. 제안자는 청포 이철수씨였으며, 이를 미리 계획한 사람은 박정근 도지시다.
팔달로는 그렇게 만들어져 오늘도 전주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옛날 전라감영 동편 입구 정문을 팔달문이라 했다. 팔달문 누상에는 신문고가 있어 도민의 진정 건의를 창달하는 문화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고전도시이며 문화도시인 전주가 생산도시로 전환한 새 면모를 갖추는 의미로 4통8달을 뜻하여 팔달로로 명했다. 포정루(八達門, 팔달문)는 전주우체국 사거리, 아관원 사거리, 성원오피스텔(구 전주극장), 중앙동 풍년제과 사거리의 4지점을 연결한 4각형의 부지가 전라감영의 관아가 자리했다. 전라감영의 정문은 포정루(布政樓)였다. 포정루는 명견루(풍남문)가 보이는 도청 동쪽 경계와 전주완산경찰서 동쪽 경계를 잇는 경목선도로 중앙지점 즉 전주상공회의소 앞 사거리로 보인다.
1743년(영조 20년)에 관찰사 조영국이 신축되어 신문고가 설치되면서 백성들의 민원을 전라감사에게 직소할 수 있었다. 백성들이 이 문를 지날때는 관리들의 선정을 바라고 아울러 널리 백성들에게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았다. 안쪽에는 팔달, 바깥 쪽에는 포정이라는 편액이 있었다. 전주의 중심도시 팔달로 역시 사통팔달이라는 보편적인 의미와 함께 전라감영의 출입문이었던 이 포정루에서 기인한다. 1909년 무렵, 2층 누각 건물이 팔달문이며 그 앞에는 32개의 선정비가 있다가 1954년 4월 25일 안길진 전주시장 때 다가공원으로 옮겼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전북에서 15년만에 익산에서 제99회 전국체전이 개최된다. 전북지역에서 전국체전이 열리는 건 2003년 제84회 대회 이후 15년 만이다. 특히 기초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전국체전은 전북에선 처음이다. 익산시는 기존의 체육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부족한 체육시설을 보강하는 등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아직도 익산하면 이리역 폭발사고, 공업도시 등 삭막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국체전을 계기로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아름답고 살기 좋은 지역으로 도시브랜드 가치를 쇄신하겠다는 계획이다. 시설 인프라를 갖추는 것과 동시에 기초질서, 친절, 나눔 배려 등 질적 성장을 통해 도시의 품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해 나가야 함이 마땅하다. 무엇보다도 대회 성공의 열쇠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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