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飛飛亭) 마을 앞, 바람에 잔 물결이 이는 한내 주변에도 꽃들은 피어나고 꽃들 너머로 보이는 호수의 모습이 참 아름다운 선경입니다. 시나브로 매말랐던 숲에 여름 기운이 완연합니다. 꽃은 흔들리면서 피지만 질 때는 흔들거림이 없습니다. 지금 숲에선 무수한 꽃잎이 지고 또 지천으로 꽃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지거라 한 잎 남김없이 다 지거라. 지다보면 다시 피어날 날이 가까이 오고, 피다 보면 질 날이 더 가까워지는 것. 어디까지가 지는 꽃이고, 어디까지가 피는 꽃인가요?
한국의 정원을 거닐면서 쾌랑쾌랑한 선비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소쇄원에서는 맑고 깨끗한 기운을, 윤증고택 정원에서는 누마루에 앉아 산중 정취에 젖어들곤 하지요. 명옥헌 정원은 배롱나무 꽃사이로 무릉도원이 그윽히 펼쳐집니다. 월궁 용궁 선계가 모두 펼쳐진 광한루에서는 지구촌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빕니다. 오늘 비비정에서 또다른 ‘나’를 만납니다. 한내는 오랜 세월 말없이 유유히 흐르며 민족의 애환을 지켜보고 있으며, 바로 그 언덕에 자리한 비비정은 그 유래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상 깊었던 정자였습니다.
비비정마을은 조선 1573년(선조 6년)에 최영길이 창건한 정자를 관찰사 서명구가 훗날 중건, 관정이 된 정자 이름입니다. 우암 송시열이 지은 ‘비비정기’를 보면, 우암이 무인으로서의 최씨 집안을 찬양하기 위해 장비나 악비 등 중국 명장의 이름을 끌어다 붙인 기지에 불과한 것이지 원래는 지명을 취한 것으로 보입니다. 비비정 가까이 한내 위에 소금배, 젓거리배, 돗단배가 오르내리면 눈부신 모래빛 반짝반짝 빛났으며, 모래찜을 하면서 한 잔의 술과 함께 얼큰해지면 노래 한 소절을 불렀던 여유. 바로 그윽한 정취를 느낀 우리 선조들은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아 비비낙안(완산팔경)이라 불렀습니다.
비비정 바로 뒤의 호산서원(湖山書院)이 언제 누구에 의해 이곳에 세워지게 되었는지 자세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1868년 대원군의 전국 서원철폐령에 의해 헐리어지고 없어졌던 것을 일제시대에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6.25사변으로 말미암아 서원 안의 산앙재와 강당이 불에 타 없어진 뒤 1958년 이 지방 유지와 유림들의 노력으로 중건돼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호산(湖山)은 무슨 의미일까요. 풍초연(馮超然)은 ‘호산편주(湖山扁舟)’에서 “생계는 촌뜨기로 족하고(生計野人足) 뜬 이름 깨달은 사람에겐 가볍지(浮名達者輕) 조각배는 그렇게 또 오고가겠거니(扁舟往來慣) 갈매기와 물새는 서로 가여워하지 않네(鷗鳥不相憐)”라고 적었습니다. 새삼스런 자각은 미루거나 게을리 하는 사이 생각만으로 끝낼 때가 많지만, 속절없고 부질없다는 느낌이다. 속아 줄줄도 아는 것이 인생의 지혜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남이 나를, 때로는 내가 나 자신을 실망시키기도 합니다.
‘호산객잔(湖山客棧)’은 아름다운 풍광을 둘러싼 동정호 일대를 나타내며, 소동파의 ‘초연대기(超然臺記)’는 ‘호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버려두고(背湖山之觀) 뽕나무와 삼이 자라는 들을 거닐게 됐다(而適桑麻之野)’로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남루가 자리한 곳이 '제일호산(第一湖山)'이며, 이삼만의 제자 서홍순의 호가 호산으로, 바로 그것입니다.
보통 신선이 사는 곳을 호산(湖山)으로 부릅니다. 그래서 호산(湖山)이란 뜻은 고전에서는 신선이 살 정도로 경치 좋은 곳을 이르기도 합니다. 직역으로 하면 ‘호수를 끼고 있는 산’입니다. 비비정 아래 길 옆 바위에 ‘호산청파(湖山淸波)’라고 새겼으니 응당 푸른 파도가 비비낙안(飛飛落雁)을 만들었겠지요. 호산서원의 ‘산앙재(山仰齋)’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만경강의 일부를 전망할 수 있어 막혔던 가슴이 툭 트임은 물론 바위틈에서 난 무성한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등 경치가 아름다워 그 이름도 ‘산앙(山仰)’입니다. ‘산앙(山仰)’은 바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본다는 뜻이며, ‘고산앙지(高山仰止)’의 줄임말입니다. 시경 거할(車舝)편에 “높은 산을 우러러보며 큰길을 가도다.(高山仰止, 景行行止)”라고 나오는 만큼 존경할 만한 선현(先賢)을 사모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산앙재는 특히 암키와와 숫키와 여러 장이 조화로움을 뽐내는 꽃담(합각)은 삼례 사람들의 넉넉한 마음과 빼어난 조형성에 입이 다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서원의 누렇게 변한 나무의 속살이 고색창연함을 더해줍니다. 반드시 코로만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이제라도 나비가 내려앉을 듯 생생한 그 꽃송이 하나하나에선 당신닮은 향기가 묻어납니다. 세월이 많이 지났어도 나무의 화려함은 변화가 없는 것처럼, 은은하게 향기를 우려내는 호산서원의 꽃담처럼, 아름다운 마음 고이고이 간직한 채 곱디곱게 늙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사계절의 순환을 잘 따르는 당신이 진정한 멋쟁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나는 오늘에서는. ‘호산청파(湖山淸波)’란 글귀의 속뜻을 음미하면서 당신이 지금, 내 주름을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주기를 간곡히 부탁하면서 정치를 잘해 국민들이 이같은 풍경을 맘껏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종근의 행복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원월매집 (0) | 2017.07.06 |
---|---|
전주 가재미골과 부채 (0) | 2017.07.06 |
전주 관통로와 익산 전국체전 (0) | 2017.07.06 |
익산 나루토여관 철거되나 (0) | 2017.05.31 |
이종근의행복산책(백종희선생작품) (0) | 2017.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