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의 일생은 차가움에도 향기를 팔지않는다’ 매화는 지조를 굽히지 않는 참된 선비처럼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 조선 중기 문신 상촌 신흠이 수필집 ‘야언(野言)’에서 찬탄한 말이다.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가락을 품고(桐千年老恒藏曲), 매화는 한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대로이고(月到千虧餘本質), 버들은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柳經百別又新枝).” 질풍노도 같은 난세에 매화처럼 꿋꿋하고 향긋한 현인달사들이 그립다.
선조 가운데 퇴계 이황은 매화(梅花)를 끔직히도 사랑했다. 매화를 노래한 시가 무려 1백수가 넘는다고 한다. 선생은 평생토록 매화를 항시 지근에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고 하며, 이를 사랑하는 연인을 보듯 애지중지했다.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 해지자 매화에게 그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면서 그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임종 직전 그는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命淮盆梅)”고 말할 정도였지 않은가.
고려 말 포은 정몽주는 ‘홍무 정사년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짓다(洪武丁巳奉使日本作)’란 글에서 “매화 핀 창가엔 봄빛이 이르고/ 나무로 지은 집 빗소리 요란하네(梅窓春色早 板屋雨聲多)”라고 읊었다. 외국에 사신으로 가서도 조국을 걱정하는 충신의 단심(丹心)이 짙게 배어 있음을 본다.
매화는 다른 나무보다 꽃을 일찍 피워 낸다고 해서 '화괴(花魁, 꽃의 우두머리)'로 불린다. 추위 속에도 강인하고 고고하게, 다른 나무보다 꽃을 일찍 피워낸다고 해 '화괴로 불린다. 그래서 언제나 아름답다. 고결한 향기를 전하는 청매(靑梅), 뒤틀리고 흐드러진 고매(古梅), 달빛이 교교하게 내려앉은 월매(月梅) 등 봄기운을 실은 꽃잎들이 화사하다. 그러나 설중매(雪中梅)는 더 운치가 있고 매혹적이다. 엄동설한 속에서도 은은한 향기를 뿜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므로서 매화는 꺽일지언정 굴하지 않는 선비의 절개를 느끼게 해주려고 하는 오늘에서는.
순천 선암사 선암매(천연기념물 제488호)와 강릉 오죽헌 율곡매(천연기념물 제484호), 장성 백양사 고불매(천연기념물 제486호)는 물론이거니와 통도사 지장매와 화엄사 화엄매도 빼놓을 수 없다.
예로부터 동양인들은 덕성과 지성을 겸비한 최고의 인격자를 가리켜 군자라 불렀다. 겨울의 언 땅 눈속에 핀 매화는 모진 한파에 시달려온 우리 민족 가슴속에 늘 향기롭게 피어 있다. 그래서 매화는 시가 되고 그림이 되었으며 노래 속에 우리 민족의 마음에 꽃이 되기도 했다.
길고도 길었던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남녘의 제주도부터 전해지는 꽃 소식은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일깨워주고 있다. 매서운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는 가운데 전주 한옥마을 매화나무에서 매화 꽃망울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붉은 꽃을 피워내는 홍매(紅梅)는 이제 막 개화를 준비하기 시작했다지만 백매(白梅)는 하얀 꽃을 소담하게 피워냈다.
경기전 정전 동편에는 겹청매, 녹악매, 홍매 등의 매화가 자생한다. 이 가운데 푸른색이 돌 정도로 투명한 백색의 꽃잎 15장이 겹쳐피는 겹청매는 줄기가 누워 구부러져 자라는 와룡매이다. 용이 비상하는 것처럼 하늘로 오르다가 다시 땅을 치고 솟구치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용매’라 불리는 경기전의 대표적 수목이다. 마치 구름을 연상시키듯 나무 위를 덮고 잎들과 용의 뿔처럼 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비튼 가지 끝은 누구도 본 적 없는 전설 속의 용을 연상시킨다.
또, 한벽당 바로 밑 바위에 ‘매화향기를 찾아 가는 작은 소로’라는 뜻의 심매경(尋梅逕)이란 암각서가 있다.
모진 바람을 잘 이겨낸 ‘꽃심의 땅’ 전주에 '툭툭툭' 매화 꽃망울이 터지고 있다. 그윽한 향기가 가득한 ‘암향부동(暗香浮動)’을 눈으로 경험할 수 있는 이곳에서 이를 탐한 사람들의 고매한 정신과 매화의 고결한 아름다움을 느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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