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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이야기꾼 '전기수'

조선시대의 ‘거리의 이야기꾼’ 전기수(傳奇叟)를 알고 있나. ‘전기수’란 말 그대로 ‘기이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노인’이란 의미로,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재미있게 소설을 읽어 주는 사람을 일컬었다. 오늘날의 구연동화 선생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일종의 ‘길거리 선생님’이자, 조선의 또 다른 ‘인기 연예인’이었다.
조선 후기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이야기꾼들이 상당히 많았다. 대표적으로 강담사, 강독사, 강창사 등이 있었다. 강담사는 민간에 전해지던 이야기를 많이 기억하고 있다가 남에게 들려주는 사람, 강독사는 거리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책인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는 사람으로, 흔히 전기수라 했다. 또, 강창사는 어떤 이야기를 ‘창(唱)’에 얹어 구현하는 사람으로, 흔히 판소리 광대, 판소리 소리꾼이라 불렸다.
조선 후기에는 소설이 매우 유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자가 많았고, 책값이 워낙 비싸서 책을 빌리거나 사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면, 시골 사랑방에서 목청 좋은 사람이 부채를 살랑살랑 부치며 소설을 낭독하고, 동네 사람들이 일하면서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전기수는 주로 동대문 밖에 살았다. 한글로 된 소설을 잘 읽었는데, 「숙향전」, 「소대성전」, 「심청전」, 「설인귀전」 같은 것들이었다. 매달 1일은 초교(종로 6가) 아래에서, 2일은 이교(종로 5가) 아래에서, 3일은 이현(배오개) 시장에서, 4일은 교동(낙원동) 입구에서, 5일은 대사동(인사동) 입구에서, 6일은 종각(보신각) 앞에 자리잡고 소설을 읽곤 했다.
‘워낙 재미있게 책을 읽는 까닭에 구경하는 청중들이 빙 둘러싸고 있다. 그는 읽다가 아주 긴박해서 가장 들을 만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문득 읽기를 딱 멈춘다. 그러면 청중들은 하회(下回)가 궁금해서 다투어 돈을 던진다.(조수삼의 추재집』)’
‘종로거리 담뱃가게에서 소설을 듣다가 영웅이 뜻을 이루지 못한 대목에 이르러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연초(담배)를 썰던 칼을 들고 앞으로 달려들어 책 읽는 사람을 쳐서 그 자리에서 죽게 하였다.(정조실록)’
한국국학진흥원과 문화체육관광부가 3월 1일까지 ‘제9기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를 모집한다. 이들은 세대를 뛰어넘는 정서적 교감과 교육적 효과가 큰 것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이야기할머니가 세대간 따스한 정을 나눌 예정이다.
우리의 일생은 이야기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들려주시던 옛날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성장하면 친구들과의 수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이용한 채팅, 그리고 게임 속의 스토리 등 우리네 일상은 늘 이야기가 함께 하고 있다. ‘전기수’가 다시 나타나 내 앞에서 ‘조근조근’ 이야기책을 낭독해 주면 정말 좋겠다. /이종근(문화교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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