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추천을 따라가다 보면 천변 도로변에 3개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그 중간에 있는 게 평리마을(쥐엽정)이다.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과거에 급제해 삼례에서 남원으로 가는 길목에서 잠깐 소개되는 마을이기도 하다. 들 가운데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에서 평리로 불리지만 원래는 '주막젱이', '주막정이'로 불렀다고 한다. 1950년대 콩과식물 주엽나무가 있어 ‘쥐엽정’으로 통하는 이곳의 이도령다리는 1970년대 중반 새마을사업으로 인해 길이 더욱 넓혀졌다.
전주문화원이 전주천의 역사를 처음으로 조명한 ‘전주천의 역사와 문화’를 펴냈다. 간간이 전주천을 소개한 책자는 있었지만 역사와 문화를 통시적으로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완주군 소양면 황운리 소양초등학교 옆 ‘국회의원유범수건교기공비’는 1969년 가을에 세워졌다. 당시 완주군 국회의원 유범수씨가 명덕리다리를 놓는데 공적이 있다고 해서 지역 주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완주군 상관면 산정리 입구 유범수공적비를 통해 다리군수 유범수와 지역 사람들이 협심해 1964년 6월 5일 산정교를 세웠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불과 수십년전만 하더라도 전주천 냇물의 양편에 반듯한 돌들을 배열해 놓고 여기에 여인들이 앉아 맑은물에 빨래를 씻으며 방망이질을 하던 풍경이 흔하게 보였었다. 대규모 빨래 집단이 모여들자 매곡교(지금의 남부시장다리)부근과 다가교 부근에는 전문적으로 이를 쌂아주는 업종이 생겨 톡톡히 재미를 봤다. 다가교는 삼마솥다리, 대궁교, 사마교, 삼하교, 사정다리, 신한교(해방 후), 신흥교로 불리우는 등 전주의 다리 가운데 가장 명칭이 많이 변경됐다는 연구 결과도 내놓았다. 신한교는 해방 후 재산을 관리한 신한공사, 또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의미로 사용됐을 것이란 해석을 달았다.
전주신사가 완공된 뒤 사마교는 신사를 왕래하는 일본인들의 참배 통로였으며, 1920년 홍수로 유실되어 버리자 박기순이 1만원을 기부해 철근콘크리트 교각에 나무 상판을 얹은 다리가 새로 놓였다. 하지만 나무 상판을 얹은 이 다리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현재의 다가교는 이어 1981년 2월부터 9월까지 확장했다.
다가교를 지나 도토릿골교(1999년), 구 진북교(1975년), 쌍다리(어은1교, 1962년) 어은교(어은2교, 1990년), 진북교(1996년), 서신교(1996년), 백제교(1991년), 사평교(2007년), 가련교(1997년), 추천교(2000년)가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바, 전주천 모든 다리의 역사도 반추했다.
목차는 전추천의 물길, 전주천의 발원지와 남관지역, 남천교 부근의 역사와 문화, 서천교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전주천 주변의 특이한 나무와 물고기들, 그리고 전추천의 다리로 구분됐다.
책자는 새전북신문 이종근 문화교육부 부국장을 비롯, 송권, 이용엽, 유종권, 김진돈 등의 공동 작업으로 이뤄졌다.
나종우 전주문화원장은 “이번 책자는 전주천을 따라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담았다”면서 “마을과 사람 그리고 생태에 대한 스토리 조사물로, 전주천을 이해하는 안내서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승수 전주시장도 “천변을 따라가면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는 다리들이 많은 바, 그 이름에 대한 설명과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면서 “특히 작은 하천에 대한 소개가 자세히 기록된 가운데 다양한 생활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문화원은 이외에 전주기접놀이과 호남제일성 130호(2015년 하반기) 등도 펴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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